정부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복지예산이다. 올해 예산 375조4000억원 가운데 복지·고용 예산은 115조7000억원으로, 30.8%를 차지한다. 내년도 예산안(386조7000억원)에는 7조2000억원 늘어난 122조9000억원을 복지예산으로 편성, 비중(31.7%)이 더 늘었다.
이처럼 역대 정권마다 복지예산을 늘렸음에도 국민들은 복지와 소득 재분배를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정책 체감은커녕 각종 지표에서 드러나듯 불평등만 더욱 깊어졌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설계자료가 되는 소득·불평등 실태조사부터 미흡하다고 말한다. 부실한 통계를 기반으로 정책을 내놓으니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불평등의 경제학>을 쓴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소득실태 조사는 조사대상이 한정돼 통계적 대표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통계청 조사의 경우, 도시 2인 이상 노동자 가구의 소득만을 집계해 농어촌이나 자영업 등의 실상은 생략된다. 또 가구소비실태 조사 등은 조사 주기(5년)가 길어 최신의 경향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자연스레 정책 정합성의 문제를 낳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 집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은 지니계수를 구할 때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를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면세점(과세 미달자로, 주로 저소득층) 이하의 소득자가 아예 빠져 있는 데다 8000가구 정도만 소득 표본으로 삼는다. 게다가 선정된 표본 가구가 자신의 소득정보 등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거나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고소득층은 원래 소득보다 축소해 집계될 수 있다.
이러한 지표의 불확실성을 감안하지 않고 정책을 입안할 경우 현실과 정책의 괴리는 커 체감도는 더 떨어지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6위라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9월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과세 미달자를 포함한 통합소득 현황' 자료를 보면, 정부의 기존 소득·불평등 지표에 크나큰 허점이 드러났다. 이번 자료는 과거의 소득 자료들과 달리 과세대상이 아니어도 정식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모두 조사해 통계를 산출했다. 소득과 불평등 실태에 가장 근접한 통계로 평가된다.
홍 의원은 국세청에 4년간 요청한 끝에 해당자료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실태 왜곡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세청 측은 "관행적으로 과세 미달자를 제외하고 공개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소득세 대상자는 총 1996만9000명으로, 정부가 그간 소득 통계 대상으로 삼은 1490만3000명보다 476만6000명이나 늘어난다. 또 정부가 발표한 중위 소득자(전체 인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울 때 중간에 있는 소득자)의 월 소득액은 기존 219만6000원에서 162만원으로 대폭 낮아진다. 통상 중위 소득자의 50~150%를 중산층으로 분류한다는 점에서, 중산층의 기준 자체를 새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과세 미달자가 통계에 포함되자 소득 불평등도 한층 심각해졌다. 전체 근로 소득자의 3분의 1가량(33.6%)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2013년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 4860원을 연간 소득(주 48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1218만원으로, 661만명의 근로자 소득이 이보다 적었다. 홍 의원은 "저소득자의 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을 뿐 아니라 소득 양극화가 극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소득 재분배 역시 정부의 공식발표와 달리 미흡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전체 가구의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는 0.302였지만, 과세 미달자가 포함된 지니계수는 0.445로 무려 0.143이나 높았다. 더구나 2007년 이후 지니계수가 0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과세 미달자가 포함된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에 대해 통계청 관계자는 “소득 실태는 통계청에서 전담해 조사한 후 국세청과 보건복지부 등에서 자료를 받아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다만 금융정보 등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까지는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정확한 소득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