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폭행…충격의 녹음 파일
“무섭다기보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면서 사람 이하의 개나 동물로 취급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 선 남성의 표정은 단호했습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경남의 대표 향토기업인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의 차를 몰던 운전기사였습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40대 가장이 겪은 지난 석 달 동안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라이터로 때릴 때도 있고 주먹으로 때릴 때도 있는 데, 보이는 데는 다 때립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때립니다.”자신이 모시는 70대 회장님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겁니다. 발로 급소를 차여 정신을 잃기도 했고, 운전 중에도 머리를 맞아 큰 사고가 날 뻔도 했습니다. 이유는 사소했습니다. 김 회장이 가라는 길로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빨리 안 간다는 이유로 맞았습니다. 한때 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사업에 실패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맞았습니다. 폭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방법 또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선풍기가 돌아가면 그 앞에다 수박을 던집니다. 그러면 수박이 확 튀잖아요. 그거를 맞고 있어야 해요.”
남성은 증거로 회장의 폭언이 담긴 20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공개했습니다. 녹음 파일에는, 도저히 회장님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심한 욕설과 폭언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차를 주차하지 않았을 때나 “당구장에 대라고 했지, 카페 앞에 대? 개00아” 입고 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씨0 옷도 제멋대로네. 회장을 모시면서 복장이 그게 뭐냐, 나들이 가나? 00같은 00”어김없이 폭언과 욕설이 날아들었습니다.
■회장님은 ‘부재중’
사실 확인을 위해 취재진은 가장 먼저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통화가 성사됐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것은 뜻밖에 한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전화기를 넘겨받은 듯 중년 여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신한테 전화가 왔잖아요? 여보세요 회장님이 저한테 전화를 돌리네요." 취재진은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김 회장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회장님 안 계십니까?" 그러자 여성은 "회장님 여기 안 계십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취재진은 어쩔 수 없이 김 회장의 부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폭행 의혹에 관해 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뿐이었습니다. 질문을 계속하자 나중에는 답변을 회사 직원에게 떠넘겼습니다.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랑 통화해보세요. 제가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취재진은 몽고식품 창원 공장으로 찾아가 두 시간 넘게 김 회장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물론, 회장의 대답을 대신할 누구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후 거듭된 통화에서도 김 회장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여직원에게 전화를 떠넘기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전화를 넘겨받은 여직원은 “회장님 전화로 연락하지 말고 회사 관계자와 통화하라”고만 답했습니다. 회장님의 궁색한 변명이라도 듣길 바랐던 취재진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왜 사과를 받지 않았나?
김만식 회장의 폭행 의혹에 대한 첫 보도가 나간 것은 지난 22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3일 오후 김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폭행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기자면 “어깨를 툭툭 치는 정도였고, 경상도식으로 '인마'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폭행 의혹을 부인한 바로 그 날, 온라인상에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갔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김 회장의 폭행 소식은 빠르게 번져갔고, SNS와 댓글 등을 통해 김 회장의 행동을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했습니다. 분노한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불매운동’을 하자는 성토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회사 홈페이지에는 난데없는 게시 글이 하나 올라옵니다. 김 회장의 아들인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었습니다. 회사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김만식 회장이 사태를 책임지고 명예회장직에서도 사퇴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곧바로 운전기사에게 전화해 사과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싫다’고 했습니다. 폭행 의혹을 부인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입장을 180도 바꿔,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사과하겠다는데, 과연 그 사과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언론 보도가 나가기 전 수차례 회사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회장님이 직접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만 한다면 모든 것을 접겠다. ” 하지만 끝끝내 김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가 나오고 불매 운동 움직임이 일자 뒤늦게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국민들이 분노한 까닭은?
석 달 동안 회장으로부터 잔혹한 폭행과 참기 힘든 수모를 겪고도 왜 가만히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운전기사는 담담하게 ‘생계’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몽고식품’은 그 가장의 소중한 밥벌이였던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존심을 짓밟히고, 열정을 착취당하는 우리시대 수많은 ‘을’이 처한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올해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 사건에 이르기까지. 두 사건 모두, 대중들이 분노했던 건 폭행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조 전 부사장과 김 회장이, ‘을’의 비루한 현실을 볼모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대우에도,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는 ‘을’의 처지를 악용해 ‘갑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을’은 때리고 욕해도 돈만 주면 될 거라는 생각, 권력과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우리 사회 상류층, 지도층들의 오래된 악습과 부도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회장님은 돈만 있으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배가 고파도 밥상을 엎을 수 있는 것이 사람" 입니다. 분노하는 우리 시대 ‘을’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운전기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을’들은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합니다. SNS를 통해 많은 이들이 몽고 식품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세무조사를 하라는 요구도 빗발칩니다. '을'의 처지를 악용한 회장님의 도 넘은 '갑질'은 110년 전통의 국내 최장수 기업 ‘몽고식품’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