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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왜 '보수 정당'을 찍을까?..
정치

가난한 사람이 왜 '보수 정당'을 찍을까?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12/26 21:21
[김윤태 칼럼] 복지 태도의 변화와 새로운 복지 정치


정치권이 급변하고 있다. 내년 총선 민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유권자는 박근혜,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에 의해 좌우되는가? 지도자에 대한 지지는 단지 개인적 신뢰감을 보여주는 것인가? 사회학자들은 유권자의 정치 성향과 투표 행위에 미치는 원인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한다. 1940년대 이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라자펠트 사회학 교수가 직업, 소득, 계층 등 사회학적 요인이 투표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1960년대 미시간대학의 서베이조사센터와 컨버스 교수는 투표 행위가 사회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정당 일체감과 정치적 태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계급이나 계층도 정당 일체감도 복지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연구를 보면, 한국 저소득층은 복지 확대에 큰 관심이 없는 데 비해, 오히려 고소득층이 복지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2007년 정부가 발표한 '복지인식 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김영순과 여유진의 연구는 대중의 이해 관계가 복지 태도와 불일치하는 '비일관성'을 보인다고 평가했다('경제와사회' 91호, 2011년). 중산층과 노동자의 복지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직종이 미치는 영향도 적다. 다만 교육 수준에 따른 상이한 태도가 나타나는데, 고학력자가 상대적으로 친복지적 태도를 가진다는 연구도 있다.


가치와 태도

저명한 미국 정치사회학자 세이머 마틴 립셉은 자신의 저서 <미국의 예외주의>에서 사회의 구성원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가치(value)와 태도(attitude)를 구별했다. 사회학에서 '가치'는 역사적 과정과 사회적 제도를 통해 확고하게 형성되고 문화적으로 결정된 감성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태도'는 훨씬 유동적이고, 우연적 경향을 가지며, 특정한 사건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한다. 태도는 경제적 사건, 정치적 사건을 반영하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유지한 가치와 다른 모순적인 성향을 나타낼 수 있다. 

유럽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국가는 대중의 정치적 지지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제도적 분석만큼 국민의 복지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복지 태도(welfare attitude)'는 주로 '국가의 복지 제공 책임에 대한 지지의 정도'로 정의된다. 유럽과 미국 학자들의 연구는 복지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계급과 계층 등의 사회경제적 변수 및 교육 수준, 성별, 연령 등의 변수를 꼽는다. 다른 한편, 정치 성향과 도덕관 등 가치 체계가 복지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계급 배반 투표는 왜 발생했는가?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복지 태도는 복지 확대를 바라면서도 조세 인상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특히 저소득층의 복지 태도가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왜 복지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이 복지에 소극적인가? 이는 자신의 계급 이익과 모순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는 '계급 배반 투표'와 연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서민층은 복지 확대와 조세 인상을 요구하는 진보 정당보다 정반대의 공약을 제시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영국의 노동 계급 가운데 보수당을 지지하는 투표 결과와 1990년대 이후 미국 남부 노동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과 유사하다. 미국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캔자스 주 등 남부의 노동자들이 사회경제적 요구보다 낙태와 동성애 결혼 등 도덕적 이슈에 더 관심을 가지며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례를 치밀하게 분석했다.

이와 같은 계급 배반 투표 성향이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첫 번째 원인은 반공주의와 지역주의 정치 구도로 인해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조세와 복지 이슈보다 이념 논쟁, 지역 갈등에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정치적 대표 체계가 소선거구제와 다수제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주로 지역 개발 공약이 선거 이슈로 부각되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전 계층적 복지 이슈보다 임금 인상을 노동 운동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복지 제도는 잔여적인 극빈층에 대한 시혜에 그쳤기 때문에 복지 정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선거권 획득에 머물고 사회 경제적 민주화는 뒤로 밀려났다. 복지는 언제나 정치권에서 '찬밥' 신세였다. 공약으로 제시해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죽은 개'로 간주되었다. 

정치의 역동성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대로 최근 한국의 복지 정치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한국인의 복지 태도에 주목할 만한 특성이 나타났다. 내가 다른 학자들과 발표한 논문에서 2007~2011년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의 여론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2010년 이후 소득 수준에 따른 복지태도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한국학연구' 45집, 2013년). 이는 2010년 지방선거 전후 복지 논쟁을 둘러싼 '정치적 기회(political opportunity)'의 구조적 변화가 대중의 복지태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중의 복지 태도는 단순히 '복지 확대' 여부만 아니라 개별 제도에 대한 상이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나와 서재욱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등 개별 복지 제도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분석했다('동향과 전망' 90호, 2014년). 이 결과를 보면, 빈곤층 생활 지원과 아동 가족 지원은 전반적으로 지출을 확대하자는 응답률이 높은 데 비해, 실업 대책 및 고용보험과 주거 지원은 상대적으로 지출을 확대하자는 응답률이 낮았다. 특히 저소득층과 불안정 근로자 근로자의 복지 확대 요구가 대체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복지 제도가 주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를 위하여 설계되어 저소득 근로자들을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중산층 이상 인구의 경우, 대부분의 복지 제도에 대해 지출 확대에 대한 지지도가 낮았지만, 아동 가족 지원에 대한 지지도는 다소 높았다. 특히 중산층의 교육에 대한 공적 지출의 확대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는 중산층의 공교육 강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에 대한 불만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 태도의 변화가 발생했는가?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최대의 정책 이슈가 되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모두 복지 확대를 지지하고 선거 경쟁에 뛰어들었다. 바야흐로 복지국가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런 가운데 복지국가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제3 후보의 지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이 주요 국가의 최대 정치 쟁점이 된 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비록 박근혜 정부가 집권 이후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면 사실상 복지 공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복지는 정치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기초연금이 확대되고 아동보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국민들은 과거와 다른 '보편적 복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최근 다시 학계에서 한국인의 복지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런 점에서 2013년 정부가 출간한 '한국 복지패널 복지인식 부가조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12년 대선의 복지국가 논쟁이 국민의 복지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자료를 분석한 김영순과 여유진은 2007년과 달리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복지 태도의 '일관성'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한겨레신문 2015년 4월 28일). 자기 이해에 따라 저소득층과 미숙련 블루칼라 노동자 등 낮은 계급에서 복지 확대에 적극적인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중산층은 복지 확대와 조세 인상에 여전히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 최근 복지사회학연구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나와 서재욱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 수준뿐 아니라 자산 수준과 직종의 위계가 낮을수록 복지 태도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2015년 11월 5일 한겨레신문). 

그러나 아직도 보수, 중도, 진보의 정치 성향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했다. 다른 한편 소득 수준, 자산 수준, 직종도 정치 성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연령이 정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층은 보수 성향이 강하고 청년층은 진보 성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치에서는 여전히 지역과 연령만큼 계급과 계층의 변수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성향의 특징은 계층 또는 계급을 대표하며 복지를 뚜렷한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정당과 정치 세력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적 기회를 창출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한계가 대중의 관심을 복지 이슈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3년 복지패널 복지인식 부가조사' 자료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복지 제도를 통해 계층 또는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정당과 시민사회 운동은 대중이 원하는 복지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보험, 공공부조, 교육 등 개별 복지 제도에 대한 계층별 선호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교육, 보육, 훈련 등 사회 투자와 주거 복지를 강조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셋째,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부자/외부자 격차를 시정하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제도의 시행과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시민권을 가진 전 국민을 위한 보편적 국민보험을 시급하게 확대해야 한다. 

한국 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동력은 바로 대중의 정치적 지지이다. 한마디로 복지는 정치다.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복지 정책과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대중을 설득하지 않으면 복지정치가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복지 태도는 인구 사회학적 요인에 의해 저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역학 관계와 정치적 기회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강한 나라에서 복지 제도가 더욱 발전했지만, 사회의 다양한 정치 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정치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비례대표제, 다당제, 합의민주주의 등 선거 제도, 정치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정치권에서 전 국민적 지지를 이끌 수 있는 광범위한 '복지 연합'의 구축이 시급하다. 셋째, 비정규직, 청년실업, 최저임금, 교육훈련, 주거복지, 기초연금, 일하는 여성 지원, 조세 개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야당의 분열은 단순히 선거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위협하고 있다. 공천 갈등이 사회경제적 민주화 공약을 몰아낸다면 야권 지지자는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선거 연대를 통해 정부의 복지 공약 취소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복지 논쟁을 주도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헌신적이고 강력한 정치 지도자 집단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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