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측의 첫 단계는 과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2016년 트렌드는 2015년의 결핍에서 찾을 수 있다. 시민들은 2014년 세월호,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불안과 불신을 경험했다. 취업난과 실직, 불확실한 노후 등 먹고사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불안은 일상이 됐다. 저성장시대에 경기침체까지 맞물렸다. 불안은 201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불안<지속적 자기계발> - 고용·취업 절벽 앞에서…믿을 건 ‘자기 자신’
한국 사회의 불안감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리서치 회사 마크로밀엠브레인의 2015년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대상 1000명 중 77.7%가 일상생활에서 불안감을 경험했다. 각 항목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국내 경제 상황’이 불안하다는 응답자가 79.7%로, 이 부문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다. 고용·취업에서 불안감을 느꼈다는 응답자는 64.1%였다. 2012년 55.8%보다 증가했다.
저성장시대를 맞아 고용·취업에서 오는 불안감은 심화되고 있다. 불안감은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20대 청년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대기업들조차 불황을 이유로 극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직장인과 취업준비생들 앞에는 좁은 문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마크로밀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꼽는 사람이 71.4%였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불안감 불식을 목적으로 한 자기계발의 유행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불안 산업 - 고령·여성·1인 가구 증가…보안 산업이 뜬다
국민연금공단은 2014년 폐지를 실은 손수레와 여행용 가방을 그린 포스터를 제작했다. 포스터 중단에는 “65세 때, 어느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를 넣었다. 불안감을 불러일으켜 연금 가입을 권유한 불안 마케팅의 전형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 등이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6>은 불안감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넘어 불안을 불식시키는 산업이 2016년 발전할 것으로 봤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치안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2012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여성·1인 가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안전에 대한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감시용 폐쇄회로(CC)TV, 차량용 블랙박스, 무인 전자경비 시스템, 출입통제 시스템 등 보안영역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여성 사이에서는 1시간에 2만~5만원을 지불하고 밤길 귀가 등에서 남성과 동행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이 지갑을 대체하는 것도 불안 산업 입장에서는 호재다. 보안산업은 스마트폰 해킹,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 가성비 <가격 대 성능 비율> - 최고 품질 아니어도 가격 적합하면 ‘OK’
저성장은 소비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할인 판매를 하지 않았던 샤넬과 구치는 두 달 간격을 두고 차례로 세일에 돌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트렌드 코리아 2016>은 이 같은 현상을 ‘브랜드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브랜드의 빈자리는 가성비가 채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샤오미는 저렴한 제품가를 바탕으로 한국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오픈마켓 11번가 집계에 따르면 2015년 8월까지 샤오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23% 증가했다. SK텔레콤의 스마트폰 ‘루나’ 역시 저렴한 가격으로 성공을 거뒀다. 소비자들은 이들 제품이 최고의 품질은 아니더라도 가격에 적합한 품질을 갖추고 있음에 만족했다.
가성비 시대의 배경으로는 소비자의 정보력 향상이 꼽힌다. 온라인을 통한 제품 구매의 경우, 어렵지 않게 다른 소비자의 제품 이용 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정보 수집을 통해 꼼꼼한 가성비 진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 집에서 놀기 - 얇아진 지갑·고단한 삶…‘집이 가장 편해요’
일상의 불안감과 얇은 지갑은 사람들의 귀가를 재촉한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이 펴낸 <2016 대한민국 트렌드>는 휴식 공간으로서 집의 역할이 재조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81.9%는 ‘집에 가만히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답했다. 바쁘고 복잡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집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다.
취미 활동도 집에서 해결한다. 성인용 색칠공부 책 <비밀의 정원>은 인터파크의 ‘2015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2015년 하반기에는 나만의 글꼴을 만드는 캘리그래피 관련 책들이 집중적으로 발간됐다.
집에서 방향제나 향초 등을 만드는 것도 취미생활로 자리를 잡았다.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키덜트족은 레고보다 작은 초소형인 나노블록을 조립하며 시간을 보낸다. 집 안에 텐트를 설치하고 야외용 랜턴 등을 비치하는 홈 캠핑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 홈퍼니싱<집 꾸미기> - 여가로 즐기는 인테리어…‘온라인 집들이’ 활발
삶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다보니 집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를 여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셀프 인테리어의 과정과 결과물을 공개하는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젊은층은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가구 재배치에 집중한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커튼 및 블라인드 시공, 벽 및 천장 도배, 천장 조명 시공, 마루 및 장판 교체 등 돈이 드는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셀프 인테리어가 관심을 끌면서 관련 제품 매출도 증가했다. 소셜커머스 티몬의 지난해 상반기 셀프 인테리어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벽지와 페인트 상품 매출은 29% 증가했고, 바닥재 상품은 252%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전동드릴, 안전장갑 등 공구 매출도 256% 증가했다.
■ 집밥 -“내가 요리사”…익숙한 재료와 맛을 찾아서
요리연구가 백종원씨는 2015년을 뜨겁게 달군 인물이다. 그의 레시피는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주를 이뤘다. 기존 요리방송이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트러플 버섯, 로즈메리 허브 등 이색 식재료를 꺼내던 것과는 구분됐다.
‘집밥’이 주류 트렌드로 떠오르자 식품 및 유통 기업들도 레시피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들이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외식 메뉴를 선정, 요리 과정을 영상물로 제작했다. 롯데슈퍼는 요리책 <집밥이 좋다>를 제작하고, 광고 전단에도 요리법을 담았다.
집밥의 의미는 ‘집에서 해먹는 밥’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외식에서도 집밥 같은 먹거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전국적으로 3곳에 불과하던 한식 뷔페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100여곳으로 늘었다. 한식 뷔페의 인기에는 익숙한 재료와 함께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이미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1인 미디어 - 세분화된 대중 취향 저격…방송·기업도 활용
비주류로 분류되던 1인 방송은 2016년 주류 콘텐츠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1인 방송 인기의 중심에는 역설적으로 ‘소통’이 있다. 실제로 1인 방송 시청자들 중 30%는 1인 방송을 보는 이유로 ‘누군가와 얘기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극세분화된 대중 취향을 1인 미디어가 저격하면서 BJ(브로드캐스팅 자키) 인기도 치솟고 있다. 지난해 누적 시청자 수 1억명을 넘긴 BJ 김이브나 아프리카TV 시청자 96만명을 보유한 BJ 양띵 등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프티 셀렙(petit celebrity·작은 유명인)’이 등장했다.
1인 미디어가 확산되면서 기존 산업과의 합종연횡도 늘고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1인 방송의 형식을 지상파에 가져왔다. KBS와 SBS, 지상파 DMB 종합편성 TV채널 QBS는 뉴스에도 1인 미디어 콘셉트를 차용했다.
기업은 마케팅 분야에 1인 방송인을 활용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BJ 대도서관과 ‘먹방’ 광고를 아프리카TV에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 코딩 - 프로그래밍도 조기교육 시대 오나?
2013년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15년 후 우리는 읽기, 쓰기와 동일하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칠 것이고 왜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딩은 컴퓨터의 알파벳인 코드를 조합해 완성된 문장을 만드는 과정이다. 스마트렌즈, 웨어러블 기기 등 컴퓨터공학이 거의 모든 산업에 접목되는 만큼 코딩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02만명에 머물던 미국 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는 2022년까지 22%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세계 각국은 코딩 교육을 정규 교과 과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영국에선 유치원부터 10학년(만 16세)까지, 호주에선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 코딩 교육이 의무다. 미국 역시 고등학교 교과에서 코딩을 다룬다. 한국도 2018년부터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당장 코딩 교육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의무 교육 이전에 자녀에게 코딩 조기 교육을 시키려는 학부모들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힙스터 -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개성만 있다면!
힙스터는 1940년대 재즈 마니아를 지칭하는 속어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을 힙스터라 부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힙스터를 유명 레스토랑보다는 숨은 맛집과 허름한 수제버거집을 찾고, 수제 에일맥주를 마시며 비브랜드 아이템을 멋스럽게 매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힙스터의 핵심은 개성이다. 때문에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취향 비즈니스도 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향수 전문점 ‘데지레 퍼퓸’은 브랜드나 로고가 없는 향수를 판매한다. 서울 서촌의 향수가게 ‘로매지크’도 같은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 고객은 오로지 자신의 취향에 의존해 향을 선택한다.
홍대 서점 ‘땡스북스’는 특정 취향을 노리는 서점이다. 서가를 백화점식으로 진열하는 대신 특정 주제를 정해 해당 책들을 전시, 판매한다. 이 서점은 한 달에 한 번 주제를 바꾼다. 이 같은 전략은 자신의 취향이 대중화됐다고 판단하면 다른 취향으로 갈아타는 힙스터의 까다로운 성향에도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