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확정 발표했다. '브리지 플랜 2020'으로 명명된 3차 계획은 과거 양육 지원에서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통해 만혼·비혼 대책으로 전환한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지난 2014년 기준 1.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15한국사회동향'을 보면 에코세대(1979~1992년생) 2명중 1명은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결혼을 하기 어려우니 안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기업·국민 모두 합심해 저출산 고령화의 시한폭탄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공유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육아휴직제도가 없어서 못쓰나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데, 제도가 있어도 못쓰는 게 현실이죠."
정부가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대책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일자리와 주거를 저출산문제를 푸는 열쇠로 꺼내 든 데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지만 ▲청년일자리 창출 ▲신혼부부 임대주택 공급 ▲육아휴직 확대 등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고용안정'이라는 핵심을 비켜갔다고 비판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누가 육아휴직 쓰나요"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대책의 핵심은 만혼·비혼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된 일자리 문제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근로시간 단축 ▲고용관계 개선 등의 노동개혁으로 향후 5년간 37만개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은 늘어나지 않는다"며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닌 질"이라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일자리의 질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있으며 비정규직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정부 노동개혁에 따라 일자리를 만든다고 해도 얼마나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에, 소득이 없으니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것"이라며 "저출산문제의 근원은 노동시장의 양극화인데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고용불안을 우선 해소하지 않으면 ▲자동육아휴직제 ▲난임휴가제 ▲아빠의 달 확대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직장인들이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것은 제도가 없어서가 아닌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꺼리는 것"이라며 "노동권 보장이 없으면 정부 정책들은 보기에만 좋을 뿐 현실성은 낮다"고 말했다.
◆자동육아휴직제, 되레 여성 고용 꺼리게 만드는 요인
다시 말해, 고용이 불안한 상태에서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을 자동으로 이어 쓸 수 있게 강제하는 자동육아휴직제는 되레 여성의 고용을 꺼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일자리와 공공주택을 강화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일자리 창출을 일부 대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나서 교육·사회서비스·보건·의료복지 부문 등 공공일자리를 만들거나 양질의 중소//중견기업을 키우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신혼부부 전용 전월세 임대주택을 앞으로 5년 동안 13만5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정부 대책에 대해서도 "민간기업형 임대주택으로만 하지 말고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서라도 부족한 재원을 매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여러 부처에서 마련한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아 문제 해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기존 정책 '백화점식'으로 열거…문제 해결 어렵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수는 "고비용 혼례문화, 호화혼수 근절 같은 대책은 중상층 이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국민은 단일 집단이 아닌 만큼 계층이나 상황을 고려한 수요자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교수는 "결혼과 출산이 어느 정도 개인의 선택이고 청소년 부모와 한부모 가족의 차별을 없애자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혼과 비혼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짚고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대책을 마련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마련한 저출산 대책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출산이 아닌 양육이 더 큰 문제인 상황에서 정부 대책은 조삼모사에 불과할 뿐'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저출산 문제야말로 한국사회가 가진 총체적인 찌꺼기들이 쌓여 나온 이슈다. 집·결혼·직장·교육 등 하나만 해결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사회가 애 키우기 좋은 사회로 가야 하는데…"라면서 말 끝을 흐렸다.
B씨는 "임신했을 때가 아닌 출산 후부터가 문제"라며 "무슨 조삼모사도 아니고 진료비 지원해준다고 애를 다 갖나. 아이는 키우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가 왜 결혼해 애 낳았는지 후회스럽다"
C씨는 "현재 월세 살고 있는데 아이를 셋이나 낳으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이 나라는 답이 없다"며 "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후회할 따름"이라고 팍팍한 현실을 토로했다.
D씨는 "양육에 대한 지원은 줄이고 출산 지원만 몰두하다니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건가. 양육 부담으로 고민중인 워킹맘으로서 기가 막힌다"고 썼다.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정책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E씨는 "현재 여성 육아휴직도 못 지키는 마당에 무슨 남성인가. 정부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글을 올렸다.
F씨는 "사회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신청하기에 엄청 눈치가 보인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를 출산하면 강제로 회사에 못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고용주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고 월급은 매달 나가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며 정부의 권장·장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교육이 망해가는데 부모는 야근…애는 언제 보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G씨는 "정부가 돈 안 줘도, 맞벌이를 안 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면 다 낳는다. 온통 비정규직 투성이에 해고도 쉽고 주택 매매값·전셋값은 치솟아 있다. 공교육이 망해가는데 부모는 야근이고, 이게 애를 키울 수 있는 나라인가"라고 썼다.
H씨는 "일단 부동산 거품부터 없애야 한다. 집 마련하느라 세월 다 보내고 바로 노후대책 들어가야 하는데 결혼과 출산은 언제 하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