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 대선길 분수령 될 총선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4·13 총선 결과는 2017년 12월 대선을 마음에 품은 여야 주자들에게 커다란 관문이자 ‘예비고사’다. 20대 총선 뒤 19대 대선까지는 1년8개월의 시간이 남지만, 총선 결과는 이들의 운명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현행 의석(156석)을 뛰어넘어, 스스로 공언해온 180석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당·청 지지율 고공행진에다 ‘야권 분열’이란 외부 호재까지 얻은 터라 부담이 커졌다. 하지만 총선에서 이기더라도 김 대표의 공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선거의 중심에 나섰고, 여권 내부에서도 친박근혜계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는 박근혜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박 대통령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보다 높은 상황이어서 총선 승리를 김무성 승리로 귀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총선에서 당내 ‘친박’이나 ‘진박’에 맞설, 김무성 대표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얼마나 당선되느냐가 김 대표 대선 행보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권을 꿈꾼다면서 텃밭으로 가느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대구(수성갑)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반드시 이겨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수도권 험지에서 멋진 승부를 펼쳐 의회에 진입하면 잠룡으로 조명받을 가능성도 있다.
지형이 흔들리고 있는 야권은 좀더 복잡하다. 홍형식 소장은 “문재인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총선이 곧 대선을 향한 준결승”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안철수에게 총선은 야권 헤게모니를 둘러싼 쟁탈전이고, 둘 가운데 패자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택수 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100석 이상을 건져 제1야당 자리를 지키면 긍정적 평가를, 80~100석이면 선방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그러나 80석 이하로 떨어지면 안철수 신당이 40~50석을 가져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대선 주자로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선 판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학규 더민주 전 고문은 총선 결과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총선에서 ‘박원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울 ‘박원순 키즈’를 통해 대중의 호응도와 위력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석·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박원순 사람들’의 총선 성적표가 박 시장의 대권 위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몸을 낮추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은 총선에서 더민주가 참패할 경우 구원투수로 차출돼 등판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박원순의 사람들 잇단 출사표 왜?
박원순 서울시장 측근들의 4.13총선 출마선언이 줄 잇고 있다.
정당출신으로는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동작구와 서대문구에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다가 본선진출이 무산돼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했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권오중 전 비서실장이 재도전에 나선다.
기 전 부시장은 아직 출마지를 확정짓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뇌물수수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계륜 의원의 지역구인 성북구 출마가능성이 우선 흘러나오고 있다.
노원구는 '박원순 저격수'를 자임하는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기 전 부시장의 정치스승인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 인재근 의원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다면 도봉구에서도 새누리당 후보와 일전을 겨뤄볼만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대문구에서 '중량급'인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의 진검승부를 선언한 권 전 비서실장은 박 시장이 이례적으로 새해 첫날 자신의 지역 내 해맞이 행사를 찾을 만큼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어 출마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박 시장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천준호 전 정무보좌관, 민병덕 변호사 등이 이미 출마 채비를 마쳤다. 이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금배지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박 시장은 물론 야권 유력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하승창 씽크카페 대표는 비례대표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평구에서 이명박 정권의 2인자이자 새누리당 중견인 이재오 의원과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는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박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되기에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국회의원 재선에 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그는 19대 총선 이후 사실상의 정치적 휴지기를 박 시장과 보냈다.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세대 선두주자라는 간판 대신 이번에는 박 시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생활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서울시의원 시절 9호선 민자사업 투자 문제점을 파헤치는 등 박 시장 재선에 기여한 강희용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등도 동작구 출마를 선언했다.
총선을 100여일 앞둔 시점에서 어림잡아 1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박 시장과의 인연을 자산 삼아 총선 출마를 가시화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출마 러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안철수 탈당'이라는 변수로 인해 당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명을 바꾸기 전부터 이미 '박원순 마케팅'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총선전략의 중심에 놓은 상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시장의 총선 지분은 다섯 자리 안쪽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안 의원 탈당 이후 제3신당 창당이 가속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공학적으로는 안 의원쪽 몫의 지분이 붕 떠버린 상태가 됐다. 김한길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이 현실화되면 인물난도 대두된다. 총선전략과 맞물려 박 시장이 자연스럽게 이 같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시사평론가 A씨는 "박 시장이 당 잔류를 선택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몸값이 이전보다 크게 뛰었다고 봐야한다"며 "박 시장이 만약 안 의원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를 생각해보라.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사이에서 평형수 역할을 하고 있는 박 시장 쪽에 더 많은 공천티켓이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박 시장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재선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박 시장에게는 그동안 국회 내에 확실한 우군이 없었다.
시민사회 출신으로서 당내에 자기 지분을 만들만큼 정치적 입지가 탄탄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계파 만들기에 무관심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여기에 송호창 의원 등 박 시장과 같은 편으로 묶였던 시민사회 출신들은 원내 진입 뒤 대부분 '각자도생'의 길을 택해 정치적으로는 소원한 관계가 됐다.
지난해부터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서울역 7017프로젝트), 청년활동지원비(청년수당) 등 주력사업 추진 과정서 정부 여당과 극심한 마찰을 빚어 어려움을 겪은 박 시장으로서는 국회의원들의 지원이 절실하다. 가정법의 세계지만 대권후보로 나선다면 더할 나위없는 큰 우군이 된다.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시사평론가 A씨는 "현실적으로 절박해진 더불어민주당은 박 시장 측근들을 서울지역 본선무대에 대거 내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친노 주류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구까지 내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이름만 올리게 하고 헛심만 쓰게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지난 대선때 안철수처럼 박 시장 브랜드를 불쏘시개로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달 안으로 서울시 비서·정무라인에서 4~5명이 사직서를 내고 총선에 나서는 박 시장 측근들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