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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정문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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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정문입설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5/16 08:55 수정 2018.07.05 09:06
스승과 제자 사이는 무조건 신뢰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사진: 前 원불교 문인회장 김덕권칼럼니스트

정문입설

어제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과연 이 시대에 스승의 도가 살아있을 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 역시 젊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아오다가 천만 다행하게도《일원대도(一圓大道)》의 기연(奇緣)을 만나 비로소 스승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한 번 사제(師弟)의 연(緣)을 맺은 이상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신(信)을 바쳤습니다. 그로부터 심지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며 스승님의 명에 따랐습니다. 그랬기에 ‘인생의 도’를 알았고, 진리가 무엇인지 깨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정도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송사(宋史)》<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는 ‘정문입설(程門立雪)’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이 말은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지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던 ‘양시와 유초’는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정호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정이(程頤)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지요.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고,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지요.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제 간의 사이에는 완전한 신뢰가 바탕 되지 않으면 진정한 ‘사제의 도’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나 스승을 구하는 소망을 가져보지만 스스로 제자로써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사제의 연을 맺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우려는 사람이 엉덩이에 뿔이 나서 얄팍한 지식으로 스승을 검증 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을 찾아 헤매고 스승은 제자를 찾아 헤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는 무조건 신뢰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지극한 믿음이고, 공경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인생에 스승이 안 계시면 그 인생이 고달프기 쉽습니다. 스승을 찾으면 사제 간에 사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 사이를 없애는 방법은 신(信)만 돈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 스승의 허물이 눈에 뜨일 때에는 스스로 박복함을 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의혹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직접 고하여 해혹(解惑)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스승의 법(法)이 제자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스승이 사약(死藥)을 따라서 마시라 해도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제 간에는 완전한 사랑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스승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진정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도를 구하고자 스승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은 몇 십 년을 죽어라 일만 시키네요. 참다못해 젊은이가 따졌습니다. 어서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떠나가 버리겠다고 했지요. 스승은 이 젊은이를 그냥 보내면 자기가 땡초라는 것이 알려질 것 같아 젊은이를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에게 저기 있는 벼랑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라 했습니다. 뛰어 내리면서 꼭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했습니다. 그러면 도를 얻는다고 말이지요. 이 순진한 젊은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뛰어 내렸습니다. 그러자 진짜 관세음보살님이 그 젊은이를 품에 안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는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스승에 대한 확실한 믿음, 그것은 곧 자기 믿음이 아닌가요? 자기의 믿음이 곧 자기를 살리고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스승 찾기도 힘들지만 아마 제자 찾기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럼 부처님이 말씀하신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는 어떤 것일까요?

<제자의 도>

첫째, 스승을 존경하여 항상 찬양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이합니다.

둘째,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하고 스승을 시봉하기에 힘씁니다.

셋째,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집중합니다.

넷째, 배운 대로 기억하고 삼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합니다.

다섯째, 언제나 스승님의 어려움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스승의 도>

첫째, 진리를 가르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제자에게 모범을 보입니다.

둘째, 열심히 가르치고 자신의 배운 바를 제자가 남김없이 이어받게 합니다.

셋째, 제자가 묻는 것을 잘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넷째, 좋은 친구들과 사귀도록 하고 그 이름을 드날리게 합니다.

다섯째, 아는 것을 다 가르치고 무슨 일에나 정당하게 대처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 다섯 가지 도를 잘 지켜 행한다면, 스승과 제자 사이는 길이길이 정의(情誼)가 건네고 대도를 성취하게 되지 않을까요? 스승은 스승답게, 제자는 제자답게 저마다 도를 행하면, 사제의 도가 바로 서 세상은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계를 이룰 것입니다.

스승의 날! 한 없이 고마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정문입설’의 자세로 스승을 찾아 나서 봅시다. 제자가 배워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우리 이왕이면 인류의 큰 스승으로 우뚝 서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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