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내의 대표적 원로 인사인 권 상임고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60여년 정치 인생 처음으로 몸 담았던 당을 저 스스로 떠나려고 한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권 고문은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 정권교체의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한 정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며 "이제 제대로 된 야당을 부활시키고 정권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미력하나마 혼신의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토록 몸을 바쳐 지켰던 당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며 "당 지도부의 꽉 막힌 폐쇄된 운영방식과 배타성은 이른바 '친노패권'이란 말로 구겨진지 오래 됐다"고 문재인 대표 등 친노 진영을 겨냥했다. 이어 "참고 견디면서 어떻게든 분열을 막아보려고 혼신의 힘을 쏟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저에게는 없다"며 "저는 평생을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하며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어왔지만, 정작 우리 당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 많은 분이 떠났고 이제 저도 떠나지만 미워서 떠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늘 회견에는 권 고문만 나섰지만, 권 고문과 함께하는 김옥두,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10여 명도 함께 탈당계를 제출했다. 권 고문은 기자회견 후 동작동 국립현충원내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동교동계는 다만 탈당 후 곧바로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지 않고 한동안 제3 지대에서 야권 통합을 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핵심 관계자는 "제 세력을 한데 묶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5일께에는 정대철 상임고문 등 전직 의원 40여명도 탈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61년 김 전 대통령의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권 고문은 2009년 8월18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50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머무르며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불려왔다.
60년 정치인생에서 한때 권력의 최고 핵심부에 있었지만 부침도 적지 않았다. 2000년12월 정동영 당시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내 쇄신파의 2선후퇴 요구에 밀려 '순명(順命)'이란 말을 남기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8일 문 대표와 만나 '문 대표가 사퇴해 2선 후퇴하고 비대위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자 호남 민심 악화 등을 고려해 탈당 결심을 굳혀간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표는 지난 5일에도 권 고문을 만나 탈당을 만류했지만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동교동계의 이번 탈당은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불편한 동거관계를 유지해온 동교동계가 친노와 결별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동교동계가 DJ의 공고한 지지층인 호남 민심을 일정 정도 대변한다고 본다면 더민주의 양대 지지층인 호남과 친노 중 호남이라는 한 축이 더민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최원식(인천 계양을) 더민주 의원도 12일 탈당과 함께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13일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이후 더민주를 탈당한 현역의원은 안 의원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되고, 더민주 의석수는 안 의원 탈당 전 127석에서115석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