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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대통령 김대중, 김영삼 떠나고 3김중 김종필만 구순잔치..
정치

前대통령 김대중, 김영삼 떠나고 3김중 김종필만 구순잔치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입력 2016/01/12 23:58
김영삼이 떠나면서 3김 중에는 김종필만 남았다.

김종필 구순, '팔할은 바람' 풍운아 같은 역정,. 약 50년 전 김종필. 반 세기가 흘러 김종필 씨가 구순을 맞았다.

김종필 씨 구순 80명 축하객


'마지막 3김' 김종필 씨가 구순을 맞았다. 김종필 씨는 구순 생일잔치를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89년을 살아왔는지 궁금하다며 생일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김종필 씨는 구순을 맞아 비교적 정정한 모습으로 후회 없는 생을 살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종필 씨는 행정·입법부 등을 두루 거치며 경험과 경륜이 깊은 정치인이다.

김종필 씨는 구순을 맞아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보행이 불편하고 행동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비교적 넓은 활동 범위를 보이고 있다. 

김종필 씨는 구순을 기념해 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김종필 씨는 구순을 맞아 "내 나이가 90세인데 ‘구십이지 팔십구비’(九十而知 八十九非), 내 나이가 90세가 됐지만 지난 89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격정의 세월을 회고했다. 

이날 김종필 씨의 구순 잔치에는 새누리당의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정우택 의원, 신경식 대한민국헌정회장, 정진석 새누리당 충남 공주 당협위원장,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난을 보냈다. 

 
김종필 씨 구순 잔치

신군부 행위 김종필 씨 구순 잔치에서도 회고

세계일보는 김종필 씨가 구순 생일잔치에서 "미운 사람 죽는 것을 확인하는 게 승리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 다 잊어버렸다"고 운을 뗀 뒤 "한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밝혔다.

또한 "그 사람(전 전 대통령)은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부정축재자로 몰아세웠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김종필 씨는 구순 좋은날에도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치욕스러운 조사과정을 거쳐 재산을 뺏기는 수모를 잊지 못한 듯 했다. 1980년 봄 대학가 학생들은 막혔던 물꼬가 터지듯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왔다.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시위의 양상은 과격해졌다. 수도 서울엔 서울역광장과 남대문 일대 차도가 학생 시위대로 뒤덮였다 경찰 차량 한 대가 불에 탔고 시위대가 파출소를 습격했다. 전경대원 한 명이 시위 중에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3김은 자제하기 시작했다. 김영삼과 김대중 양 진영도 손을 잡았다. 16일 김영삼 총재가 동교동 김대중 자택을 방문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계엄해제와 정치일정 연내 완결 등 시국수습 9개 항을 발표했다.

 
김종필 씨는 구순 잔치에서 전두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언급했다.

신군부는 속죄양이 필요했다. 3김이 속죄양이 된 것이다.

김종필은 이때의 억울한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다음은 중앙일보에서 회고한 증언록이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갇혀 있던 46일 동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1980년 6월 18일 계엄사가 발표한 부정축재 조사 결과를 수사관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였다. 내가 216억 4648만 원을 축재한 것으로 돼 있었다. 운정(雲庭)장학재단에 출연한 농장·목장까지 내 개인 재산에 포함시켜 부풀렸다. 

제주도 감귤농장과 서산 삼화축산은 나의 오랜 꿈과 땀이 녹아 있는 결정체였다. 그것이 한꺼번에 부정축재로 매도돼 무참히 짓밟혔다. 도대체 무엇이 부정축재란 말인가. 나는 살아오면서 운 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울었고, 얼마 전 내 아내가 세상을 떴을 때 울었다. 

80년 6월 서빙고 분실에서의 울음은 내 꿈과 야망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분노와 허탈, 회한과 좌절이 뒤범벅된 눈물이었다. 35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감귤농장과 서산목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필 씨는 구순 잔치에서도 전두환에 대한 원한에 대해서는 잊지 못하겠다고 꼭 집어 말했다. 

 

김영삼이 떠나면서 3김 중에는 김종필만 남았다. 김종필 씨 구순 불구 휠체어 타고도 활동

김종필 씨는 사실 정치적으로 많이 배신을 당하고 산 정치인이다. 사실 김종필 씨 인생사에서 순탄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혁명동지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낙인찍혀 2인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신군부 시절에는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DJP연합을 하고도 자신의 일생의 꿈이었던 내각제를 이루지 못하고 무산시키는 아픔을 목도해야만 했다. 

김종필 씨가 구순을 맞아 회한을 드러낸 것도 풍운아 적인 삶의 일단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종필 씨는 얼마 전 한진그룹 창립식에 참가해 휠체어에 탄 채로 단 위에 올라 축사했다. 

김 전 총리는 대한항공 초기, 자신이 총리 시절 고 조중훈 회장과 함께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에어버스를 구입할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조중훈 회장은 남다른 애국심을 가지고 수송보국을 실천했고 민간외교활동도 활발히 전개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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