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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싸움’ 의 범위를 부동산업까지 침범한 변호사들..
사회

‘밥그릇 싸움’ 의 범위를 부동산업까지 침범한 변호사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6/01/13 07:46

‘10억원 아파트 중개수수료 최대 99만원! 법정 중개수수료와 비교해 보세요. 매매 시 888만원, 전세 계약 시 778만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런 파격적인 슬로건을 내건 부동산 중개업체가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영업에 들어갔다. 한 발 더 나아가 매물 1,000건까지는 중개 수수료를 무료로 해주는 개업 이벤트까지 진행 중이다. 업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놀라운 건 이 업체가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변호사들로만 구성됐다는 것이다.

변호사 2만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영역에 눈을 돌리고 있다. 법무사ㆍ변리사ㆍ세무사 등 유사 직업군과 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최근에는 부동산중개업까지 진출하면서 ‘밥그릇 싸움’의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본업을 침범 당한 공인중개사들은 벌써부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변호사 10여명으로 구성된 ‘트러스트 부동산’이 이달 5일 문을 열었다. 트러스트는 변호사들이 매물 등록부터 알선, 계약, 거래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종합서비스를 표방한다. 언뜻 보면 기존 부동산중개업소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흡사한데 이에 대해 트러스트 대표인 공승배 변호사는 “공인중개사들이 하는 모든 업무에 더해 권리분석 등 변호사들만이 할 수 있는 법률자문을 추가시킨 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가령 세입자나 공인중개사가 등기부등본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근저당 외 선순위로 잡히는 권리들, 즉 집주인의 체납 세금이나 우선 변제금 등을 미리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 체계는 집값에 비례해 커지는 법정 중개수수료와 완전히 다르다. 전ㆍ월세 3억원 미만 및 매매 2억5,000만원 미만이면 45만원, 그 이상이면 99만원을 받는 이원화 구조다. 10억원짜리 집을 매매했을 때 중개수수료는 최대 900만원인데, 이 업체에선 10분의 1 수준인 99만원만 받겠다는 것이다. 공 변호사는 “우리가 말하는 중개수수료는 실제로는 계약서 작성 등 법률자문에 대한 보수인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만 부동산용어로 한 것”이라며 “공인중개사와 같이 매물 알선은 하지만 그에 대한 수수료는 전혀 받지 않고 변호사로서 품을 들인 것만 대가를 받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트러스트가 알선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여 년 전 한 변호사가 거주 구청에 부동산중개업소를 등록ㆍ신청했다가 반려 당하자 소송을 제기했고 2006년 대법원은 “돈을 받고 부동산 거래를 주선하는 알선은 공인중개사만 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례를 기준 삼아 ‘알선 비용 0원, 법률자문 최대 99만원’인 변종 보수 체계를 내놓은 것이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 환경에 막강한 새 경쟁자까지 등장하자 공인중개사들은 바짝 긴장하면서 반발하는 모습이다. 조원균 공인중개사협회 홍보과장은 “트러스트의 업무는 본질적으로 공인중개사와 다르지 않은데 알선과 법률자문 비용을 나눠 한쪽에 대한 대가만 받겠다는 것은 작위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법적인 대응에까지 나설 태세다.

변호사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분야는 비단 부동산중개업만이 아니다. 최근 변호사들이 세무사만의 고유 영역인 ‘세무조정계산서’의 작성 권한을 모든 변호사에게 부여해 달라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고, 법무사 영역으로 분류되던 ‘아파트 등기 업무’를 변호사들이 수수료를 낮춰가며 싹쓸이해 가면서 법무사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분쟁을 자초하면서까지 변호사들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데는 포화상태에 이른 변호사 시장의 한 단면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말 1만2,607명이던 변호사는 지난해(11월말 기준) 2만395명으로 4년새 60% 넘게 급증했다. 반면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사건수임은 2011년 2.8건에서 2014년 1.9건으로 크게 줄었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로스쿨 도입 이후 한해 배출되는 변호사가 1,800여명에 달해 앞으로도 사건 수임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변호사들이 다른 직업군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점점 더 늘어나면서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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