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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처럼, 사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신영복선생..
사회

처음 처럼, 사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신영복선생

[시사] 김현태 기자 입력 2016/01/16 00:32
"사회 운동, 이제 새로운 부대를 창설할 때"

내 전문 인터뷰어 경력 15년 동안 딱 두 번 거절당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도농간 농산물 중개를 하는 분이었다. 두어번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그때마다 퇴짜를 놓더니 서면질의서를 '팩스'로 먼저 보내주면 검토해보겠노라고 했다. '뭐 굳이 그렇게 까지…'하면서 그만뒀다.
  
두 번째는 신영복 선생이었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신영복 선생은 인터뷰를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인터뷰이의 의사를 매우 존중하는 사람이니까…'하면서 순순히 물러났다. 그래도 자존심이 안 상했다고 할 순 없었다. 이번 인터뷰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을 기념하는 분위기를 타고 마련됐다. 그동안 그가 내놓은 책이 늘어나는 바람에 인터뷰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최근 내가 읽은 책은 물론 <청구회의 추억>이다. 천생 선생님, 그것도 아주 좋은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 선생은 2년 전 성공회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이제는 같은 자리에서 석좌교수로 있다. 마침 매주 목요일에 있는 교육대학원 수업이 개강하는 날이었다. 그의 과목은 사회과학 특강인데 다른 학과생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지만 역시 일선학교 교사들이 주를 이룬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우리시대의 스승인 그가 학교선생님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오히려 교사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며 말을 시작한다. 참, 그도 고3수험생을 둔 학부모이다.
  
  "교육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이가 없습니다. 대부분 학부모이고 학생이니까요. 아파트나 증권문제 이상으로 전문가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학교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학생중심으로 이야기하자고 해요. 지금 중·고등학생들, 교실에서 앞줄 몇 명 빼고는 공부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가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중고등 학생시절 6년을 그렇게 학교교실에서 자야 되고 학원을 뛰어다녀야 하는 게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입시평준화문제 보다도 학생을 중심으로 두는 일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언젠가 서울대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그릇을 키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학시절을 취직시험 공부, 토플토익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의 앞에 펼쳐질 인생을 더 큰 안목으로 바라보며 준비해야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거 뭐 거시기에 털이 난다 했던가? 혹 이런 속설을 진실로 믿거나 그런 짓이 체신 머리 없다고 여기는 양반들이 있다면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될 위험한 책이 출간됐다.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사반세기, 무기력한 청춘이라 손가락질 받던 이 땅의 대학생들이 보란 듯이 광화문을 점령했던 날, 2011년 6월 10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서점가에서는 또 하나의 심상찮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내 청춘의 감옥>. 그 가공할 위력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계산이었을까? '청춘'과 '감옥'이라니 쯧쯧. 진부하기 그지없는 두 단어를 버젓이 제목으로 달고는 허허실실 등장한 한 권의 책. 이 책이 소리 없이 시중에 깔리는가 싶더니 연일 별 다섯 개의 리뷰를 양산하며 심상찮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당장 인터넷 서점의 서평과 댓글을 찾아보라. 하나같이 하는 말이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 "웃음이 터져 창피해서 혼났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눈물 나게 웃다 또 감동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 웃음 뒤에 얼마나 큰 아픔이 있었을지…." 사람들이 울다 웃다 이상하다.

그런데 이 책의 분류는 '정치'로 되어 있다. 그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양심수의 사상적 여정과 관련이 있나? 그런데 대한민국의 양심수 이야기와 정치사상 관련 책이 이렇게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 할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역시 무언가 수상하다!

이 심상찮은 책의 저자는 이름도 경력도 비범한 '이건범'이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요건 범(this is tiger)' 또는 '하늘 호랑이(건범)'라고도 불리는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호랑이(비범). 그가 날아다니는 호랑이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꽤 유별난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광주의 피바람이 몰아친 후 3년도 채 되지 않던 1983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다. 당시 저자는 똘망똘망 깎아 놓은 밤톨 같고, 얼핏 보면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닮은 듯도 한, 운동(체육을 말함)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요즘으로 치면 '엄친아'에 해당하는 서울 날라리였다.

하지만 그 시절 대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이 날라리 이건범도 역사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했고 결국 골수 운동권의 일원이 되고 만다. 당시는 살벌한 군사 정권 치하였고, 운동권이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낙인을 찍고 존재를 갈아타는 환승역"일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저자는 10년을 고스란히 투쟁의 불구덩이 속에서 수배, 도피, 투옥을 반복하며 살아야 했고, 지지리 운도 없어 남들은 한 번도 가기 어려운 감옥을 두 번씩이나 들락거려야 했다. <내 청춘의 감옥>에는 1986년 1차 투옥과 1990년부터 2년 4개월 동안 계속된 2차 투옥의 경험이 한국의 현대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아로새겨져 있다.

당연히 참담해야 할 감옥의 경험들이 배꼽 잡게 웃기는 일화들로 묘하게 어울려져 있다. 그럼 이 책은 과거의 기억을 억지웃음으로 가공하고 포장한 심심풀이 땅콩용 후일담일까? 조금만 더 가보자.

1992년에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이건범의 발길은 노동 현장이나 진보 진영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 청춘의 감옥>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야 어렴풋이 이해될 만한 조금 난해한 부분이다. 하여튼 가진 재산도 없던 그는 어찌 어찌하여 교육용 멀티미디어 콘텐츠 회사를 창업했고 10년 만에 연매출 100억 원대의 전도유망한 회사로 성장시킨다.

성공한 386 출신 기업가로 잘 나가는 시절도 잠시. 그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말 그대로 폭삭 망한다. 책에는 그 파산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감옥의 일화와 그의 이후 행적은 책 속에서 예고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웬만한 '인생역정'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보았을 진부한 이야기네. 이것만으로는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더 들어가 보자.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단어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이다. 이 병은 어린 시절부터 고도근시였던 그에게서 그나마 남은 형태와 색깔의 세상을 앗아갔고 이제 그는 거의 앞을 분간하기 힘든 1급 시각 장애인이다. 이쯤이면 조금 숙연해지는 바가 있다. 파산한 맹인.

그를 이렇게 부르면 너무 잔인한 표현일까? 그래도 할 수 없다. 사실이 그러하니…. 그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파산한 맹인이다. 그럼 이 책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한 가련한 인생의 허무와 좌절, 구원에 대한 이야기인가?

좀 맥이 빠지지만 모두 다다. 이 책은 한 386의 후일담이며, 한 예사롭지 않은 개인의 인생 역정이며, 실존적 인간의 좌절과 구원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다. 정말 웃기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고 정말 가볍지만 결코 얄팍하지 않은 놀랍고 비범한 삶의 이야기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한 386의 인생 역정을 통해 투명하고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역사의 잔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감성과 욕망을 자유롭게 꽃 피울 수 없었던 한 개인의 내면의 소리이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이 땅의 굴곡 많은 현대사를 드러내는 데도 개인의 불운한 인생역정을 그려내는 데도 있지 않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역사 앞에서 결코 비겁하지 않았던 또 그 역사를 가볍게 감당하고, 유쾌하게 뒤엎었던 한 자유로운 실존의 빛나는 비범함에 있다. 유쾌한 혁명을 부르는 비범함.

유쾌한 혁명을 부르는 비범함?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파산한 맹인에게 그런 비범함이 아니 비범함은 고사하고 무슨 희망이라도 남아 있단 말인가? 예단은 금물이다. 우리의 '이 날아다니는 호랑이'는 그 어떤 진부한 예측도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다. 이 호랑이는 이미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늦은 나이에 낯선 업종인 출판업계에 투신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아 <좌우파사전>(위즈덤하우스 펴냄)이라는 무시무시한 책을 기획, 공동 집필, 편집하여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거머쥐고 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여기에 또 한 권의 책 <내 청춘의 감옥>이 버젓이 그의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물론 예측 불허다.

<내 청춘의 감옥>에 나오는 일화들은 징역, 파산, 장애의 끔찍한 불운 앞에서 그의 비범한 재능이 얼마나 눈부시게 작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건 상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읽어 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감을 잡을 수 없다. 독자들이 읽는 내내 배꼽잡고 웃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기발함. 인생의 불운을 통쾌하고 가볍게 비틀어버리는 그 천재성. 그것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

그의 이 비범함은 타고난 것일까? 또 그만의 재능으로 끝나는 것일까? 그의 비범함은 시대가 만든 것이며 또 그 시대를 함께 해온 그의 동지, 동료, 친구, 가족들이 함께 일구고 공유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 광화문을 대차게 점령한 이 땅의 새 청춘들도 바야흐로 그의 재능을 공유하려 하고 있다.

이 날아다니는 호랑이가 책 중간 중간 아들과의 대화를 빌어 하는 말. 함께 날자는 것이다. 이 말은 단지 아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청춘에게 하는 말이다.

그의 재능을 공유하기 위해 서문과 서평에 나오는 단어들을 믿지 말라. 저자도 평자들도 그 재능의 진짜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재능의 결과와 그 재능을 키운 힘은 다르기 때문이다. 재능의 결과 그는 가벼움과 의리를 값지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니며 그는 의리보다 소중한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가벼움과 의리를 가능하게 만든 힘은 따로 있다. 날아다니는 호랑이의 진정한 재능. 그것은 그의 행동 속에 그의 삶 속에 있다. 책 속에 있는 사소한 일화들 속에 형체도 없이 녹아 있다. 우리가 그의 재능을 따라잡는 방법은 오직 그 말과 행동 속에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일화들과 함께 울고 웃을 때, 당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재능은 변형 바이러스처럼 당신에게 전염된다.

이 책을 열 번만 깊은 감동으로 읽어 낼 수 있다면 당신도 날아다니는 호랑이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사반세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이 땅의 참담한 현실을 가볍게 비틀고 유쾌하게 뒤집어엎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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