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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뼈만 남은 손가락…’ 이럴 땐 꼭 신고하세요..
사회

[취재후] ‘뼈만 남은 손가락…’ 이럴 땐 꼭 신고하세요

진 훈 기자 입력 2016/01/21 20:15
⑤ [종합] 취재후 ‘뼈만 남은 손가락…’ 이럴 땐 꼭 신고하세요
1. 2015년 12월12일.

빌라 2층 세탁실 쪽창에서 한 아이가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작은 창문을, 그보다 더 작을지도 모르는 몸을 구겨 빠져나와, 벽에 붙은 가스관에 매달린 지 몇 분. 땅에 닿은 발에 신발은 없었습니다. 무릎까지도 안 오는 바지를 입고 한겨울 골목을 걷던 소녀의 머리에 무엇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골목 모퉁이 슈퍼마켓 앞에서 발길이 멈췄습니다. 거죽만 남은 몰골로 제 몸집만 한 바구니를 든 아이는 꿈에서나 먹던 빵이며 과자들을 집어 담습니다. 가득 넘칠 정도로 먹을 것을 쌓은 노란 바구니를 두 손 깍지 껴 들더니 휘청거리던 아이. 놀라 달려온 가게 주인이 깔아 준 박스 위에 주저앉아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과자 포장을 벗겨내고, 눈길도 돌리지 않고 입에 가져갖다.

11살 소녀가 2년 동안 겪은 끔찍한 학대는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2. 나이 11살, 키 120cm, 몸무게 16kg.

필사의 탈출 끝에 구조된 A양의 상태입니다.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 수 있도록 극단적인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07년 북한에 사는 11살 여아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126㎝에 25.2㎏였습니다. 참고로 북한에서도 열악하기로 소문난 동북부 지역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북한에서 가장 못 먹고 자란 아이들도 A양보다 6cm 크고, 무려 10kg 가까이 살이 쪘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의 또래들과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는 수치인데 구조 당시 A양의 몸무게인 16kg은 한국 상황으로 따지면 4살 여아 수준밖에 안 된다.

경찰 조사에서 A양은 감금이 시작된 2년 전부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버지가 온종일 게임만 하다 일주일 넘게 밥을 주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배가 고픈 나머지 남은 음식을 찾아 먹으면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며 아버지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폭행은 일상이었습니다. 쇠파이프로 맞기까지 했습니다. 구조된 A양의 갈비뼈엔 금이 가 있었고 팔과 다리 곳곳에도 멍이 든 상태였습니다. 잔인한 학대에도 A양이 집 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감히 하지 못했던 것도 실패했을 때 찾아올 폭행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3.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1살짜리 소녀가 겪었을 아픔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더욱 끔찍한 사실은 A양이 당한 일들이 아동 학대의 전형적인 모습 자체라는 겁니다. 지난해 일어난 아동학대 가운데 82%는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부모였습니다. 또 학대의 86%가 피해 아동이 사는 가정 내에서 벌어졌습니다.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동 학대의 가장 큰 비극이다.

이 같은 학대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10,027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0년 전인 2004년 3,891건보다 2.5배 넘게 높은 수치입니다. 소풍 가고 싶다던 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이나 8살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다른 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 '칠곡 계모 사건'등 엽기적인 학대 사건이 최근 들어 잇따르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4. 다시 A양의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실 구조할 기회는 몇 차례 있었습니다. A양이 학교를 아예 가지 않았던 지난 2012년 2학기. 학교를 찾아온 친할머니조차 손녀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에 담임 선생님은 A양의 실종 신고를 하러 경찰 지구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교사는 친권자가 아니고, 부모와 함께 이사를 갔다며 실종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경기도 부천에서 인천으로 이사 간 A양의 아버지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고, 11살 소녀는 사회에서 증발했습니다. 주소를 모르니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어디에서도 학대를 알 수 없었고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A양의 주변에는 아버지의 동거녀와 그의 친구도 있었지만 신고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두 사람도 감금과 학대와 폭행에 동참했다.



5.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던 한국 사람들이 정작 옆집의 학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15,000여 건 가운데 이웃과 친구, 친인척이 신고를 한 경우는 12% 정도인 1,700여 건에 불과했다.

반면 이번 인천 아동학대 사건처럼 경찰이 학대를 신고한 경우는 22%인 2,204건 이었습니다.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들의 신고는 이보다 많은 34%, 3,486건이나 됐습니다. 이 밖에도 교사나 의료인 등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들은 1년 동안 4,358건의 학대를 신고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이들 직업이 아동학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직군이긴 합니다. 그래도 학대 아동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과 친인척들의 신고 수준은 아쉬운 수준이다.

학대를 목격한 사람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흥미로운 조사가 있습니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아동학대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가장 많은 30% 정도의 사람들이 '심각한 학대라고 생각되지 않아'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학대를 보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23%나 됐습니다. 아동학대가 '가정문제라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해 못 본 척한 사람들도 23%를 차지했다.



6. 약한 처벌도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올해 아동학대 사범 기소율은 25% 정도 였습니다. 아동학대범 4명 가운데 1명만 법정에 선 셈입니다. 그나마 기소되더라도 실형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올 상반기 판결이 내려진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 116건 가운데 징역 등 자유형이 선고된 경우는 17%인 20건에 그쳤습니다. 반면 집행유예와 재산형을 받은 경우는 79건으로 전체의 68%를 차지했습니다. 아동학대범 10명 중 7명은 실형을 살지 않고 풀려난 셈이다.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는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가해자가 주로 부모라는 아동학대의 비극과 연결돼 있습니다. 부모가 수감되면 양육을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를 감안해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현재 감옥에 간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볼 '학대 아동 쉼터'는 현재 전국에 37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쉼터를 계속 확충하고 있지만 피해 아동의 수와 비교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피해 어린이를 가해 부모에게 되돌려보내는 건 너무 가혹하고,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7. 다른 나라들은 아동 학대에 어떻게 대처할까요?

어린이 대상 범죄에 엄격한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혼자 두고 외출한 부모가 옆집 신고로 수갑을 찼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요. 실제로 많은 주가 부모가 만 8~16살 이하의 미성년자를 집에 혼자 있게 할 경우 처벌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방치하는 것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또 학생이 결석을 하면 반드시 사유를 학교에 신고해야 합니다. 결석이 잦으면 부모에게 '지방 검사에게 소환당할 수 있다'는 섬뜩한 문구의 경고 편지가 날아갑니다. 학교들은 이런 규칙을 매우 잘 지키는 편인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소송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이나 학대 당사자인 아동이 직접 부모를 신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행범이면 경찰이 바로 개입하지만, 혐의가 있으면 일단 가정-아동 복지국에서 나와 조사합니다. 이후 학대 사실이 드러나 부모가 양육권리를 박탈당하면 아이는 보호시설로 보내지고 부모의 접근은 금지된다. 만일 허가 없이 아이를 데려가면 친부모라 하더라도 유괴 시 뜨는 앰버 경보가 발령이다.



8. 취재 결과 아동학대 예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당국의 관심과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다음 달 초 '아동학대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하고 서울시가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무단결석하거나 3개월 이상 장기 결석한 초등학생들을 조사하기로 했다는데요. 일회성 대응이 아닌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 국민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신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학대를 의심해 신고를 해야 하는지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공지하고 있는 몇 가지 징후를 참고할 만하다.

① 아동의 울음소리, 비명, 신음소리가 계속되는 경우
② 아동의 상처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이 모순되는 경우
③ 계절에 맞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는 경우
④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⑤ 나이에 맞지 않은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이 같은 상황이나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을 보게 되면 112로 신고를 하면 됩니다. 신고를 한 사람의 신분은 아동복지법에 의해 보장되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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