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질의 끝
며칠 전, 5월 25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종각 앞에서 또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 질’과 관련해 회장 일가의 퇴진을 촉구하는 연이은 촛불집회를 열고 행진까지 벌였습니다. 재벌(財閥)이 도대체 무엇인데 대한항공 직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을까요?
기부 왕 ‘척 피니’라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는지요? DFS(Duty Free Shoppers)라는 면세점체인을 경영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입니다. 현재까지 전 재산 8조 중에 20억을 제외한 전 금액을 아틀란틱 재단에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돈이 자신이 기부했다는 것조차 밝히지 않고 수십 년간 살아오다가 15년 전 코넬대학에서 자금의 출처가 검은돈이 아닌지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하네요.
조사결과 대부분 이 돈은 전 세계 암 관련 연구, 베트남 교육 및 의료, 남아공 의료개선, 미국내 비 보험 어린이를 위한 의료보험 지원 및 모국 아일랜드 평화 대학기금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엄청난 부자는 지금도 15불짜리 카시오 시계를 차고 다니고, 본인 명의의 집과 자동차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는 이코노미만 탑니다. 그 척 피니 회장을 기리기 위하여 올해 아일랜드의 모든 대학이 합동으로 그에게 명예 법학학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현재 그의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피니 역할은 조지 클루니가 맡는다고 합니다. 아! 정말 대단한 분 아닌가요?
지난 5월 20일, LG 구본무 회장이 별세했습니다. 1995년부터 23년간 이어진 LG의 3세 경영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것이지요. 엘지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으로 시작돼, 올해 71주년을 맞았습니다. 구인회 창업회장과 아들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LG를 전자 · 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으로 키웠다면, 손자인 구본무 회장은 전자 · 화학에 통신서비스를 더해 3대 사업 축을 완성했습니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 · 2차전지 등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래 신 성장사업으로 키웠습니다. 구 회장은 2003~2005년 GS · LS 등과 대대적인 계열분리를 하고도 30조원에 그쳤던 매출을 160조원으로 5배 이상 성장시켰습니다. 특히 해외매출을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늘려,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으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의 진면모는 이런 사업적 측면보다 다른 총수와 차별적인 모습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벌의 갑 질과 거리가 먼 총수였다고 합니다. ‘이웃집 아저씨’ 구 회장을 가까이서 접한 재계와 LG 인사들은 “구본무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소탈함과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를 꼽았습니다.
“외부행사가 끝난 뒤에는 수행원이 있는데도 운전기사에 직접 전화를 건다. 행사장 앞이 복잡하면 차를 멀찌감치 대라고 한 뒤 수백 미터를 손수 걸어가 탄다.” “구 회장은 직원들에게 격의 없는 농담을 잘한다. 상대방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다. 잘못한 직원을 나무랄 때도 있지만, 갑 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LG 전직 임원)
“주말에는 비서 없이 혼자 일을 보고, 해외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은 한명 뿐이다. 재벌 회장들에게는 당연시되는 요란한 공항 의전도 일절 금한다. 일반인들은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하지만, 총수 중에는 명함을 내밀면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자기가 먼저 명함을 내밀며 인사한다. ‘구 회장은 재벌의 황제경영’이라는 말을 제일 질색한다.
재벌들이 잘난 척하는 것도 싫어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재벌 갑 질’과는 거리가 먼 분이다.”(LG 임원). LG에서 분가한 GS의 한임원은 “옷도 평범하게 입고 다녀, 사람들이 못 알아볼 때가 많다. 정말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구 회장의 깊은 배려 심은 2003~2005년 동업자 · 형제와의 계열분리를 별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 지은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구 회장은 계열분리를 하면서 정유 · 유통 · 건설 등 현금수입이 많은 사업을 양보했다. 구 회장은 평소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타협이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LG 전직 임원)
한국 재벌사에서 경영승계나 재산분리를 둘러싼 ‘골육상쟁’은 다반사(茶飯事)였습니다. 10대그룹만 봐도 삼성 · 현대 · 롯데 · 한화 · 두산 · 한진 등 대부분이 분쟁을 겪었습니다.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은 “엘지의 기업이념인 ‘인화(人和)’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구 회장의 ‘아름다운 이별’은 한국 재벌 역사에서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런 LG 구본무 회장은 본받지 못할망정 요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 질은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닌가요?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의 안하무인식의 갑 질에 이어 그들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둘째 딸 조현민 막가파식의 갑 질도 지금 여론의 심한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마침내 당국의 조사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 질을 넘어 그들의 밀수와 탈세 혐의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관세청은 며칠 전 대한항공 본사와 조현민 전무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21일에는 조 회장과 조 전무 등 조 회장 3남매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있었습니다.
관세청은 조 회장 일가의 조직적 밀수와 탈세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개인 카드 해외 결제 내역과 관세 납부내역, 출입국 기록 등을 분석하고 있다 합니다. 또한 대한항공의 10년 치 물품 수입내역도 관세청의 조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 하네요. 이와 같이 조 회장 일가의 갑 질과 패악 질은 정말 ‘갈 데까지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저지른 ‘갑 질의 끝’은 어디일까요?
‘갑 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을 말합니다. 자기 아래 사람에게 지나치게 엄책(嚴責)하는 것도 갑 질입니다. 증애(憎愛)에 끌리는 바가 없이 훈계하였다면 그 말이 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끌리는 바가 있었다면, 법(法)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지의 이치도 더위나 추위가 극(極)하면, 변동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처사하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극하면 뒷날의 쇠(衰)함을 불러들이는 것이 ‘갑 질의 끝’이 아닐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