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이 20일부터 지역 청년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한 '성남사랑상품권'이 곧바로 인터넷에서 액면가의 70~80%에 현금으로 할인 거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돈은 이 시장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자기 계발을 통해 취업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청년 배당 정책에 따라 지급됐다. 올해는 성남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1만1300여명이 지급 대상이다. 21일까지 이 중 75.3%인 8512명이 10억6000여만원어치를 받아갔다.
보건복지부와 경기도는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이 정책 도입을 반대했지만 이 시장이 밀어붙였다. 하지만 상품권을 나눠준 지 하루 만에 인터넷에 '상품권을 20~30% 할인해 판다'는 글이 수십건 올라와 청년 지원이라는 애초 취지가 선심성 현금 살포로 변질되고 '상품권 깡(불법 현금 할인)' 업체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우려했던 대로 청년층의 도덕적 해이를 낳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상품권 깡으로 확보한 현금을 호프집 같은 주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광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청년 배당 정책의 애초 취지가 취업 지원인데, 상품권으로 지급해 불법 현금화가 이뤄지면 용처가 불분명해진다"며 "그 예산으로 청년들에게 취직 정보를 제공하고 컴퓨터나 기술 등 각종 취업 교육을 하는 데 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성남시는 21일 오후 상품권 깡이 문제가 되자 할인 판매 글이 올라온 인터넷 사이트 운영진에 관련 게시물 삭제와 금지어 등록을 요청했다. 성남시가 청년 배당 정책에 따라 성남사랑상품권 지급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후부터 인터넷 포털의 한 유명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는 상품권을 20~30% 할인해 팔고 산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21일까지 수십건의 이런 글이 올라왔다. '성남사랑상품권 (액면가의) 75%에 삽니다' '(1만원권) 상품권 9장 6만원에 팝니다' 같은 제목이 달렸다.
올해 성남시가 지급하는 청년 배당은 1인당 연간 50만원이다. 1분기에는 그중 25%인 12만5000원이 성남 지역에서 사용되는 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지급 대상이 1만1300여명(만 24세), 총액으로는 14억여원이다. 이 상품권을 인터넷에서 할인해 팔면 12만5000원짜리 상품권은 현금 8만5000~10만원이 된다. 차액 2만5000~4만원이 정책 취지와 무관한 계층이나 상품권 깡(불법 현금 할인) 업체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상품권 깡은 인가받지 않은 사설 금융업자들이 폭리를 거두면서 세금을 탈루하는 불법 거래다.
이날 오후 5시 18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성남사랑상품권 8만5000원에 삽니다'는 게시물을 올린 대학생 A씨는 본지 통화에서 "글을 올린 지 2시간 만에 상품권을 팔겠다는 전화가 3건 왔다"고 했다. 성남시의 한 상품권 판매업자도 "청년 배당으로 받은 상품권을 팔겠다는 문의 전화가 적잖다"고 했다.
이 시장은 이날 '상품권이 현금 할인 거래되고 있다'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오자 '그럼, 현금으로 줄까? 상품권은 어찌 됐든 성남 골목 상인들에게 사용된다'는 반박 글을 달았다. 성남시는 이날 오후 들어 사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 사이트 운영진에 상품권 할인 판매 글 삭제를 요청했다. 2분기부터는 상품권 대신 전자카드로 지급하겠다는 대책도 발표했다.
청년 배당 정책은 이 시장이 정부의 반대에도 강행하고 있는 3대 무상 복지(청년 배당, 무상 교복, 산후 조리 지원) 정책 중 하나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전 협의 권한을 가진 보건복지부는 타당성이나 다른 자치단체와의 형평성, 재원 조달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 3대 무상 복지 정책 모두에 대해 불(不)수용 또는 재협의를 통보했다.
그러나 성남시는 받아들이지 않고 관련 예산 194억원을 편성해 집행에 들어갔다. 성남시는 무상 교복과 산후 조리비 지원도 하고 있다. 무상 교복은 이미 중학교 신입생 8900명에게 15만원씩 지원했다. 산후 조리비는 산모의 신청을 받아 25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3대 무상 복지 정책 중 청년 배당은 특히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재산·소득·취업 등과 상관이 없이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는 이 정책에 반대하는 중앙정부가 지방교부금을 삭감할 것에 대비해 그 절반인 50만원씩만 집행한다. 이 사업에 배정된 올해 예산은 113억원이다.
성남시는 '선심성으로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청년 배당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현금 대신 성남시 관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 화폐로 지급했다. 전통 시장과 영세 상점을 살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성남사랑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7100여개로 음식점·소매점이 대부분이다. 청년들은 한 술 더 떠 유흥업소나 음식점 등에서 쉽게 쓰기 위해 상품권 깡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