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은 동일 사안에 대해서도 정반대 평가를 한다. 한 예로 정부는 재벌 총수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지켰다고 자평한다. 반면 참여연대는 497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을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사면복권한 사례를 들며 공약 파기라고 맞선다.
결국 최종 평가는 국민의 몫이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관련법 재개정 같은 형식적 조처보다 실제 경제민주화의 목적을 달성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강자가 횡포를 부려 공정거래를 해치는 것을 막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취지다. 일례로 가맹점주 권리 보호 강화, 하도급 분야의 부당특약 금지 등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일부 제도 개선이 이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되고, ‘갑의 횡포’로 인한 ‘을의 눈물’이 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정책의 일관성 상실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대선 출마 때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라며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고, 그 덕에 대선에서 이겼다. 하지만 집권 반년도 안 돼 경제살리기를 핑계로 경제민주화를 헌신짝 취급 했다.
경제민주화만 되면 한국 경제의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년간 경제민주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본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날렸다. 이는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야당의 발목잡기로 인해 경제살리기를 위한 골든타임을 낭비한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죽은 자식’ 취급한 박근혜 정부가 느닷없이 ‘귀한 아들’이라며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급격한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바로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전 의원 영입이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 조항을 포함시키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내걸어 당선되는 데 1등공신이었다. 정작 집권 이후 경제민주화는 실종됐고, 김 전 의원은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런 그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경제민주화는 초보단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총선에서 불평등을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경제민주화 죽이기’가 4월 총선과 내년 대선에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는 것 같다. 죽었던 김종인(경제민주화)이 산 박근혜를 과연 잡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