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사람냄새 나니까 나가" 회장님 '갑질'에 우는 수행기사들..
사회

"사람냄새 나니까 나가" 회장님 '갑질'에 우는 수행기사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6/01/23 19:52
[집중취재] 기업 회장·사장 등 수행기사들의 직업세계를 엿보다
"저보고 차 안에서는 절대 대기하지 말랍니다. '사람 냄새' 난다고요…."
"출근 3일째에 갑자기 잘렸습니다. 이유요? 사장 말하길 '느낌이 그냥 좋지 않다'고…."
"어떤 양반(재벌 3세)은 한 대에 10만 원씩 주겠다며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습니다."

수행(운전)기사 상습 폭행·폭언 등 기업 오너들의 '갑질' 논란이 화제다. 지난해 12월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수행기사 폭행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은 가운데, 최근 주류기업 (주)무학 최재호 회장도 갑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부모님 제삿날도 운전을 시켰다"는 등 전 수행기사 주장에 무학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 수행기사 상습 폭행·폭언 등 기업 오너들의 '갑질' 논란이 최근 화제다(사진은 재연화면).


회장·사장 등 기업 임원의 차량을 운전하며 하루 중 대다수 시간을 그들과 보내는 수행기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임원과 가까운 업무 특성상 '그림자' '손과 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 세계에도 나름의 애환과 고충이 있다. 63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수행기사 카페, 현직 기사들 증언 등을 통해 수행기사들의 세계를 살펴봤다.

"우리가 모시는 대장은 갑,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우리는 을"

승용운전직은 보통 수행기사와 업무사택기사 등으로 나뉘지만, 이중 수행기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출·퇴근이 비교적 일정한 기업 소속 업무기사에 비해 수행기사는 업무 강도가 높고 개인 시간은 적은 편이다. 보통은 30~40대 남성 기사가 많으나, 카페에서는 종종 20대 후반·50대 초반도 발견됐다. 극소수지만 여성 기사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 채용공고나 소개소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한다.

수행기사도 하나의 직업군인 만큼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한다. 본인이 수행하는 임원을 'ㄷㅈ(대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임원과 오래 같이 일할 때를 '롱런(long-run)', 수행 임원이 뒷자리에서 이리저리 지시하며 운전 참견을 하는 경우를 '리모컨질'이라고 표현했다. 그 외에도 '오티(OT, 시간 외 근무수당)' '보초(기다리는 시간)' 등이 있었다.

수행기사 일도 여느 직업과 같이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전·현직 기사들이 쓴 글을 통해 살펴본 이들 직업의 고충은 깊었다. "우리가 모시는 대장은 갑,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우리는 을(ju0****)"이라는 의견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가족들 생각하며 참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못 그만뒀다"는 등 기사들의 발언은 이 직업도 '생계형'임을 짐작하게 한다.

▲ 수행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노예', '머슴', '집사' 등 자조적 뉘앙스의 단어가 자주 보였다.
 

이들의 고충은 주로 모시는 '대장(임원)'에 따른 것이었다. 일부 임원들의 경우 폭언은 기본이고 뒷자리에서 기사를 때리는가 하면, 심한 경우 "차에서 사람 냄새가 나서 싫다"라면서 기사에게 대기시간마다 차량 밖에서 있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사 중에는 차량 주차를 하다가 발가락 골절상을 입거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람, 허리디스크 통증을 호소하는 등 아픈 기사도 많았다.

전·현직 수행기사 31명 증언을 통해 만들어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방송에 따르면, 재벌 2~3세 임원들을 위한 'VIP 수행매뉴얼'이 따로 존재하며 여기에는 운전방식과 행동지침, 심지어 운전대를 잡는 방식까지 기술돼 있었다. 실제로 여기에는 "VIP가 냄새에 민감하니 옷에 늘 섬유탈취제를 뿌리라"는 등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 기사는 "(VIP만을 위한) 진짜 0.0001% 될 만한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라고도 말했다.

▲ 수행(운전)기사 상습 폭행·폭언 등 기업 오너들의 '갑질' 논란이 최근 화제다.

'노예 취급', 심한 경우 부모 욕까지... 수행기사들의 고충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 탓인지 수행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노예" "머슴" "집사"라는 자조적 뉘앙스의 단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전·현직 수행기사들이 올린 글이다.

"결국 사직서 냈다, 쌍욕과 막말은 기본에 과속·신호위반 요구…. 부모 욕까지 하는 대장 탓에 더 있다가는 스스로 망가질 거 같아 먼저 나왔다."(saso***)

"술만 먹으면 대장이 답이 없어진다, 얼마 전엔 술 취한 채 내게 손을 들어서(맞아서) '내가 노예냐'고 말한 상태다."(tree***)
"하루 근무시간이 기본 15시간이다, 이쯤되니 내가 운전 기계인가 싶다."(2ska***)
"주 6일 근무, 휴일수당 없이 거의 4년을 일하다가 휴일수당 달라고 했더니 그만 일하라네요. 지금까지 머슴이었나 봅니다."(1977***)

수행기사는 대개 임원의 출퇴근과 이동을 책임지기에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 출근은 보통 오전 6~7시이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이다. 하지만 야간수당 등 법으로 규정된 시간 외 수당을 챙겨주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휴일근무 없음, 6시 퇴근"이라고 쓰인 온라인 채용공고는 대부분 실상과 달랐다. 정규직·계약직 등 근무형태도 '대장 마음'에 따라 달라졌다.

좋은 점도 있다. 중간에 대기 시간이 있다 보니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행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통해 살펴본 결과 이 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자격증 공부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은 대장'을 만나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쉴 때마다 공장에 가서 작업을 돕는다"라거나 "선산 잡초제거 등 잡무 담당" "골프할 때 옆에서 캐디 역할"을 한다는 기사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상황별 안전 운전 요령·항시 단정한 복장 착용' 등 수행기사들 나름의 자부심이 담긴 게시글들도 올라왔다. 운이 좋으면 '뽀지(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살펴본 결과, 수행기사의 생활은 누구를 '대장'으로 모시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다. 몽고식품 회장에게서 상습적 폭언폭행을 듣다 이를 제보한 A씨(45)는 "숱한 운전기사들이 비슷한 일을 겪는다, 사람을 동물처럼 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수행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
▲ 순한소주 '좋은데이'로 알려진 주류기업 무학은 최근 최재호 회장(가운데)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수행기사 폭언 등 '갑질 논란'에 휩싸인 무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2년간 수행기사로 일한 B씨(43)는 본인이 수행했던 최재호 무학 회장과 관련해 "더 근무했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 그만뒀다"라고 토로했다. 전 운전기사들이 줄줄이 폭행 사실을 폭로한 몽고식품 김만식 전 명예회장은 결국 회장직을 사퇴했고, 21일 담당 경찰서로 소환돼 조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수행기사 폭행·폭언 등 일부 임원들의 '갑질'이 불거진 후 온라인에서는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등 동정론이 거세게 일었다. "한 인격체를 모독한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몽고식품 전 수행기사의 말이 더는 가볍게 들리지 않게 됐다. 이제 수행기사들 처우에 관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다음은 한 수행기사(39세)가 카페에 남긴 글 중 일부다.

"대장이 오늘 새벽 0시 저 퇴근시키며 하는 말이, 식구들 모두 김포공항에 가야 하니 새벽 6시까지 나오랍니다. 연휴 마지막 날 공항에 데리러 오라는 보너스까지. 제주도 놀러 간다고 좀 미리 얘기했으면 우리 가족, 일찌감치 계획 포기라도 했을 텐데….

안쓰러워하는 집사람 두고 새벽 4시 40분에 집에서 나오려니 오늘따라 괜히 좀 비참해지네요. 이럴 땐 차라리 내게 명절 같은 특별한 날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간, 쓸개 다 내놓고 일하는 직업이라지만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남깁니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