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 취득·직업훈련·인턴 경험 등과 같은 ‘스펙쌓기’에 나서고 있으나 정작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업들이 청년 채용에서 ‘대학간판’이나 전공, 성별 등을 더 중시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여전히 능력보다 학벌 위주의 채용관행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6일 한국고용정보원 최기성 부연구위원이 쓴 보고서(대졸자 첫 일자리 고용의 질 측정 및 결정요인 분석)를 보면, 청년 대졸자가 좋은 일자리를 얻는데는 ‘대학간판’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고용형태, 시간당 임금, 복리후생, 노동시간, 직원 수, 노조·사회보험 가입 여부 등을 따져 일자리의 질을 0~14점 구간의 점수로 환산했더니, 4년제 수도권 대학을 나온 청년들의 일자리 질이 9.3점으로 비수도권 대학 출신(8.6점)보다 크게 높았다. 조사대상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한 4년제 대졸자 6779명과 전문대 졸업자 2871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문대 졸업자(7.7점)보다 4년제 대졸자(8.9점)가, 여성(8.6점)보다 남성(9.2)이 더 좋은 직장을 구했다. 전공분야에 따른 일자리 질의 편차도 컸는데, 의약(9.8점)·공학(9.8점)·교육(9.5점) 전공자가 인문학(8.3점)·예체능(7.5점) 전공자를 압도했다. 이런 결과는 고용시장에서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학벌·성별·전공 사이의 채용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건 자격증 취득이나 인턴·직업훈련 경험 등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데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다. 직업훈련을 받은 청년의 일자리 질 점수가 8.3점인데 반해 ‘받은 적이 없다’는 대졸자는 이보다 높은 8.9점으로 조사됐다. 인턴·아르바이트 등 일자리 경험이 있는 대졸자와 그렇지 않은 청년의 일자리 질 점수는 8.9점으로 같았다. 정부가 청년 고용을 위해 직업훈련 강화, 인턴 경력쌓기 등과 같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한 달 평균 10만원 이상의 비용과 일주일 평균 8시간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 조사결과)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직무능력을 보고 청년을 채용하기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를 도입했으나 활성화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엔씨에스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보고서는 “능력 위주의 채용이 이뤄지려면 직업훈련·취업 경험 등이 실제 좋은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도록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기성 부연구위원은 “청년고용난의 핵심은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우선은 기업이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정부 역시 기업들이 채용해서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턴이나 직업훈련 등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