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과 내실
오래 전 소림사(少林寺) 여행을 갔을 때, 소림사 무술공연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의 소년들이 펼치는 무술은 가히 그 현란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무술공연을 보면서 한 편으로 정말 실전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의문이 요즘 조금 풀린 것 같습니다. ‘쉬샤오둥’이라는 39세 중국인 남성은 격투기 광인(狂人)입니다. 그는 지난해에 ‘태극권’의 최고고수에게 도전장을 냈는데, 상대는 1분도 안되어 무참하게 얻어맞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시 그는 올 3월에 쿵푸로 잘 알려진 ‘영춘권’에 도전장을 냈지만, 이 시합 역시 싱겁게 끝났습니다. 영춘권 고수는 계속 도망만 다니며 얻어맞기만 했다고 하네요.
지금 중국에서는 전통무술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백학권, 장풍, 경공, 화염장, 금강권 등은 굉장히 요란한 중국 무술들이지만 실제 대결해 보면 다 허풍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지요.
중국 무술이 언제부터 이렇게 종이호랑이가 되었을까요?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 무술이라 할 수 있는 ‘태극권’은 문화혁명 이후론 단지 호신술용이나 건강 체조로 개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림무술’은 독특한 기교가 많아서 인기는 높지만 처음부터 공격을 하지 않고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국 무술은 이렇듯 진정한 내공보다는 실리적인 외공에 치우친 것입니다. 중국의 허풍은 무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고전소설들은 허풍과 차원이 다른 권모술수의 총집합체와 같습니다. ‘수호전’은 도둑과 강도들을 충절(忠節)로 각색했고, ‘삼국지연의’는 전쟁의 처참함을 영웅들의 패권 무용담으로 채색해 놓았을 뿐입니다.
중국뿐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얼마간 허풍이 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은 포장에 능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허풍의 포장지를 뜯고 ‘나’라는 존재를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인생에서 허풍보다 내실을 기하려면 자신에게 정직을 그리고 세상의 신뢰가 진정한 내공일 것입니다.
노자(老子)의《도덕경(道德經)》은 세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우아한 방법이라 합니다. 그《도덕경》에서 허풍을 버리고 인생의 내실을 기르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봅니다.
첫째, 수성(守城)입니다.
노자는 ‘채우기’를 경계합니다. 그릇이 비어있어야만 채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금은보옥이 방에 가득하면 지킬 수가 없습니다. 부귀하면서도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이 남습니다. 돈은 끊임없이 흘러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것이나 쌓아두지 않고, 빠르고 끊임없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노자가 알려주는 인생경영의 요체입니다.
둘째, 치세(治世)입니다.
노자는 ‘검소와 절약’을 강조합니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아끼기 때문에 일찌감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준비하는 것을 두텁게 덕을 쌓는다고 합니다. 두텁게 덕을 쌓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 세상이치는 모두 양면적입니다.
어려움에서 쉬움으로, 이로움에서 해로움으로, 화에서 복으로,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도의 모습이며 세상 이치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볼 때는 항상 양면적으로 봐야 합니다.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 될 수 있고, 험한 길이 편안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빠른 길이 느린 길이 되고, 편안한 길이 위험한 길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물이나 사건의 한쪽만을 봐서는 안 됩니다. 양면으로 바라보면서 준비해야만 세상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넷째, 공(功)을 세웠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혀를 기분 좋게 하는 음식은 오장육부를 녹이고 상하게 만듭니다. 쾌락의 극치는 양기를 쇠하게 만들고, 과다한 음욕은 육체를 병들거나 노쇠하게 만듭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것 같이 공을 세우고도 내려 올 줄 모르면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부지런함에 빼어남이 깃들어 있습니다.
배우려는 자는 스승보다 갑절이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또 부지런해야 합니다. 장량과 황석공의 사례를 보면 장량이 비서(秘書)를 얻고자 오밤중에 나와서 아예 밤을 새면서 기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정한 배움의 자세는 인내로부터 나온다는 말입니다.
여섯째,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녹입니다.
부드러움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덕이며, 딱딱함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재앙입니다. 그래서 부드러움이 필요할 때에는 부드러움을 베풀고, 딱딱함이 필요할 때에는 딱딱함을 시행합니다. 약함이 필요할 때는 약함을 보여주고, 강함이 필요할 때에는 강함을 써야 합니다.
일곱째, 크게 얻고자 한다면 먼저 크게 베풀어야 합니다.
군사를 일으키고자 하는 나라는 반드시 먼저 병사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푸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공세를 취하고자 하는 나라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쉬게 하며 백성들의 힘을 키우는 일에 주력합니다. 적은 병력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평소에 두루 은혜를 베푼 덕입니다.
여덟째, 작은 이익을 챙기려면 혼자 가고, 큰일을 하려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유방은 항우보다 세력이 약했지만 최종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방 주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전쟁이나 사업의 도는 간단명료합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내실을 튼튼히 하고 있으면, 저절로 승기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이 어찌 이 여덟 가지 방법 밖에 없겠습니까? 한 마디로 욕심을 버리고 널리 베풀고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우리는 인생에서 승리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우리 허풍을 버리고 내실을 길러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되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6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