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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소현세자빈 강씨, 어쩌다 인조 독살사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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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소현세자빈 강씨, 어쩌다 인조 독살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나?

이상윤 기자 입력 2018/06/29 10:46 수정 2018.09.20 01:06
사진 : KBS

[뉴스프리존=이상윤 기자] 1일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소현세자빈 강씨를 조명한다.  

“상이 궁중의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하였기 때문에 양궁의 왕래가 끊겼으므로 어선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인조실록, 인조 24년>

1646년 인조 24년, 궁중은 발칵 뒤집힌다. 누군가 조선의 국왕 인조를 살해하기 위해 전복구이에 독을 탄 것인데. 수많은 궁인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놀랍게도 인조의 의심이 닿은 곳은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의 빈(嬪) 강씨였다. 

결국 이로 인해 강빈은 폐출되고 사사되기에 이르는데. 소현세자와 혼인 후 슬하에 3남 3녀의 자식을 두었던 강빈. 후손을 이을 왕손이 중요했던 조선에서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며느리 감이었는데. 어쩌다 강씨는 시아버지 인조 독살사건의 용의자가 된 것일까?

▶ 병자호란, 조선 왕실을 갈라놓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이 온전히 회복되기도 전, 명을 따른 조선을 응징한다는 이유로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조선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조선의 국왕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는데. 이후 소현세자와 강빈은 청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시작한다. 아버지 인조 대신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강빈의 청나라 생활은 어땠을까?

▶ 그들은 왜 환영받지 못했나?

“세자가 돌아왔고 청나라 사신도 함께 서울에 들어왔다.” <인조실록, 인조 23년>

8년간의 청나라 생활 후, 그리워하던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와 강빈. 이들의 환국을 축하하기 위해 신하들은 환영식까지 제안하지만, 정작 인조의 반응은 냉담했는데. 왜 인조는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던 소현세자와 강빈을 반기지 않았을까?

▶ 비극의 시작, 세자의 죽음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 인조 23년>

조선에 돌아온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그의 죽음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인조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후 남겨진 강빈과 그녀의 자식들에게도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주인공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빈 강씨의 이야기는 7월 1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소현세자빈 강씨, 시아버지 인조를 독살하려 했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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