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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험지를 텃밭으로 설 명절, 이것만 보면 ‘정치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6/02/08 11:04
험지를 텃밭으로 설 명절, 이것만 보면 ‘정치 얘기’에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불꽃 튀는 대결 예고한 20대 총선 빅매치 지도

선거를 앞둔 설 명절은 ‘여론의 용광로’다. 나이와 지역, 직업을 가리지 않고 뒤섞이고, 녹아들어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정치 관련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놓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설을 앞두고 주요 격전지와 후보들을 살펴봤다.

 

전통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어김없이 총선 빅매치가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현역 정세균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후보군인 박진, 오세훈 전 의원.


‘정치 수다’ 꽃피는 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4·13 총선 결과, 최근 야권 분열과 맞물려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180석은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에 구애받지 않고, 특정 정당이 안건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신속처리 대상 안건’ 의결정족수(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다. 개헌이 가능한 200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전 대표는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하겠다”며 결기를 보이고 있다. 가칭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하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 가져가는 일은 막겠다”고 말했다.

‘정치 1번지’ 종로구가 어김없이 ‘빅매치’를 예고하고 있다.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등 전직 세 명의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거쳤던 지역구다.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누구나 거쳐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더민주의 전신인 통합민주당 대표 출신 정세균 더민주 의원이 ‘지역구 수성’에 나섰다. 정 의원은 19대 때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를 2.4%포인트 차로 꺾고, 12년 만에 ‘정치 1번지’ 주소지를 범민주당 쪽으로 되찾아왔다. 잠재적 대권 주자인 정 의원으로선 종로를 수성해야 ‘대선길’이 열린다.

새누리당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박진 전 의원이 먼저 출사표를 냈다. 종로에서 3선을 지내 ‘종로 터줏대감’으로 꼽힌다. 박 전 의원 입장에선 본선만큼 어려운 예선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종로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 역시 배수진을 치고 있다.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를 내준 오 전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실패하면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새누리당에선 정인봉 현 종로 당협위원장도 당내 경선에 나선다. 녹색당에서는 하승수(변호사·전 제주대 교수) 공동운영위원장이 “대변되지 않는 지역과 소수를 위한 정치”를 내걸고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 1번지 ‘종로’, 안철수 지역구 ‘노원병’ 등 관심 


안철수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도 이번 총선에서 최대 관심 지역 가운데 하나다. 다른 정당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안철수라는 ‘대어’를 낚을 경우,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 일정에 확실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안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탈당파’라는 시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 의원의 부산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 의원은 “탈당 발표 뒤, 처음 방문한 곳이 우리 지역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다. (노원병 출마에) 변경 사항이 없다”며 이 지역에서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안 의원의 유력한 경쟁자는 ‘젊은 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다. 그는 1월24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을 향해 “신당부터 만들고 오시라. 국민의당이 제3당의 모습을 제대로 가질지 우려스럽다”며 도발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출마 자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당초 노원병에서는 노회찬(정의당) 후보가 노원병 출마를 선언해 이들과 더 뜨거운 선거전을 예고한 바 있다. 19대 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로 노원병에서 당선됐던 노 후보는 이후 삼성의 ‘떡값 수수 검사’ 명단을 실명 공개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노 후보의 빈자리를 차지한 안 의원에게 원래 자리를 되돌려받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월1일 정의당 전국위원회가 노동자 밀집 지역인 창원·성산 출마를 요구하자, 이를 수용해 선거구를 급선회했다.

서울 마포갑은 새누리당에서 안대희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관심 지역으로 급격히 부상했다. 전 대법관이자 한때 총리 인사청문회까지 거친 인물이다. 안 후보는 지난해까지 고향인 부산 출마를 노려왔다. “나는 부산 사람이다. 부산 사람이 서울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최근 김무성 대표의 ‘험지 출마’ 권유를 받아들여 지역을 마포로 선회한 것으로 알라졌다. 마포 출마 선언 직후, 김 대표가 안 후보를 새누리당에 두 명뿐인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해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상대는 노웅래 더민주 의원이다. 노 의원은 이 지역에서 17·19대 총선에서 두 차례 당선됐다. 부친인 노승환 전 국회 부의장에 이어 마포에서만 ‘2대째 국회의원’을 지내는 토박이 정치인이다.

대결이 현실화한다면, 이번 총선 이슈를 모두 빨아들일 만한 ‘블랙홀급 승부’가 부산 영도에서 펼쳐질 것이다. 현역 지역구 의원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이곳에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의 출마가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백의종군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상황에서, 더민주 혁신위가 문 전 대표에게 “부산에서 총선 승리 바람을 일으켜달라”는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영도는 문 대표의 모친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자, 지난해 말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와 <국제신문>이 이 둘의 가상 맞대결을 조사했다. 김 대표가 51.4%의 지지를 받아 문 전 대표(21.4%)를 두 배 이상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무성 대표는 마포을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김 대표는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하며 정청래 더민주 의원의 ‘저격수’로 나서주길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맞짱’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김 대표를 겨냥해 “비겁하게 심약한 김태호에게 마포를 권하지 말고 본인이 나와라. 편하디편한 부산 영도 버리고 험지 중 험지인 마포을 정청래에게 도전하라. 멋지게 한판 붙어보자”며 김 대표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험지 출마’ 권한 김무성, 몸소 나설까 


지역주의 벽은 두껍다. 그러나 철의 장벽은 아니다. 범민주당의 텃밭 호남에서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남 순천·곡성, 왼쪽)이 재선을 노린다. ‘대구의 강남’ 수성갑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전삼기’도전에 나선다.

‘지역주의 벽을 깨려는 도전’도 주목할 만하다. 대구 수성갑은 ‘대구의 강남’ ‘새누리당 텃밭 중 텃밭’으로 불리는 곳이다. 더민주 김부겸 후보의 대구 선거사무실에는 이 지역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파란색 걸개’(더민주의 상징색)가 오랜 세월 걸려 있다. 그는 대구에서 2012년 국회의원,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이어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2012년 국회의원 후보로 40.3%, 2014년 대구시장 후보로 40.3%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보이고도 패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일전을 치른다. 김 전 지사가 김무성 대표의 ‘험지 출마’ 요구를 거부하고 선택한 곳이 대구 수성갑이다. 김부겸 후보가 오차범위를 벗어나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와 <대구 MBC>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김 후보가 15%포인트 이상 차이로 김 전 지사를 앞선다. 이 때문에 한때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차출론이 나오기도 했다.

호남은 야당 텃밭이다.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소속으로 20년 만에 ‘호남 지역 타이틀 방어전’에 나선다. 그는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지역 장벽을 깨고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이 전신 한나라당 시절 등을 포함해 18년 만에 호남에서 얻은 의석이다. 전남 지역만 따지면, 1988년 13대 총선 이후 28년 만의 일이었다. 이 의원의 고향이 전남 곡성이다.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나 홀로 유세’로 표심을 사로잡았다. 야권에서는 보궐선거 때, 이 의원에게 패했던 서갑원 전 의원을 비롯해 더민주 비례대표 출신의 김광진 의원, 노관규 전 순천시장 등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구희승 전 광주지방법원 판사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 정치권에도 있다.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하는 더민주 우상호 의원과 새누리당 이성헌 후보는 정치권에서 ‘영원한 맞수’로 잘 알려졌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다섯 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이 둘은 연세대 81학번 동문이다. 58년 개띠인 이 후보가 우 후보보다 4살 위지만, 이 후보가 가정 형편 때문에 군에 다녀온 뒤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격동의 1980년대 대학에서 이 후보는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우 의원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딴 것도 똑같다. 이후 나란히 30대 때 정치권에 입문했다. 우 의원은 민주당 대변인과 최고위원을 지냈고, 이 후보는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했다. 2000년 이후 15년 넘게 선거 때마다 얼굴을 맞대고 있다. 앞선 네 차례 대결에서 2승2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16대 총선에서 이 후보가 1.8%포인트 차로 이겼고, 17대 때는 우 의원이 2.3%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18대 때는 이 후보가, 19대 때는 우 의원이 이겼다.

 

영남의 아들과 호남의 아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횡성)과 더민주 조일현 후보는 선거전 끝에 정들게 생겼다. 나란히 강원도 홍천 태생의 지역 토박이인 이들은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 이 지역에서 진검승부를 펼쳐왔다. 이번 총선을 포함하면 무려 다섯 번째다. 황 의원이 30대 중반께 조 후보와 첫 대결을 했는데, 50살을 넘긴 올해에도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역대 전적은 2승1무1패로 황 의원이 앞섰다. 첫 승부였던 16대 때, 두 사람이 나란히 낙선했다. 17대 때 조 후보가 먼저 금배지를 달았고, 최근 두 차례 총선에선 황 후보가 연승을 달리고 있다.

서울 도봉을에선 더민주 유인태 의원이 새누리당 김선동 후보와 세 번째 대결을 벌인다. 앞선 두 차례 대결에서는 1승1패로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유 의원은 14·17·19대 의원을 지낸 관록의 노장이다. 김 의원은 18대 대선 때 유 의원을 꺾고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친박’ 대 ‘친노’ 대결이란 점도 흥미롭다. 유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첫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김 후보는 박근혜 대표 시절 대표 부실장을 지내는 등 새누리당에서 대표적인 ‘친박’ 인사 중 하나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중진들이 ‘정치 신인’에게 빼앗긴 의원직을 되찾기 위해 설욕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의 3선 출신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19대 총선에서 ‘정치 신인’이던 신경민 더민주 의원에게 빼앗긴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 탈환에 나선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남도지사를 지냈던 김두관 더민주 경기 김포갑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자신에게 석패를 안겼던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과 뜨거운 리턴매치를 펼친다.

경북 경주에서 후보로 나선 김석기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처럼 논란을 털지 못하고 선거전에 나선 인물들도 있다. 김 전 사장은 서울경찰청장 시절,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을 과잉 진압해 6명이 사망(철거민 5명·경찰 1명)하고 24명이 부상을 당했던 ‘용산 참사’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 모임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경주 현장에서 ‘공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방송인이자 전 국회의원인 강용석씨는 서울 용산에서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강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자 의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또 2010년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성적 비하 발언을 해 아나운서 단체에 고소당하는가 하면, 최근엔 유명 여성 블로거와의 불륜 논란 등 각종 구설에 휘말려왔다. 새누리당에서 당적을 잃어 재입당 형식으로 여당 후보 자격을 얻으려 하고 있다. 김용태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은 “강 전 의원의 서울 지역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에 대해 당을 아끼는 분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섯 번 맞대결… 선거하다 정들겠네 

더민주의 신기남, 노영민 의원은 최근 당 윤리심판원에서 각각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총선 출마가 불가능해진 경우다. 신 의원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학교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노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시절 산하기관에 시집 강매 논란을 빚었다.

이밖에 이번 총선에서 진기록 달성이 기대되는 인물도 있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이다. 6선인 이 의원은 최근 네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다른 당적으로 당선된 진기록을 갖고 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2004년 자민련, 2008년 무소속, 2012년 자유선진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번엔 새누리당에서 ‘5연속 다른 당적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진기록 경신을 노린다. 그의 별명은 ‘불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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