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이민숙 기자]오페라 ‘투란도트’는 고치의 대본을 바탕으로 푸치니가 최후의 작품으로 작곡했지만,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고 끝낸 유작이다. 이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60대 이전까지의 작품들과는 다른 창작 세계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작곡하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과 자신의 음악적 창조성에 대한 회의에 끊임없이 부딪친 흔적들이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카를로 고치의 투란도트에서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1801년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가 개작한 투란도트에서는 왕자는 진지한 사랑으로 기꺼이 공주에게 승복하고,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 역시 사랑에 눈 떠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이 쉴러 작품에 감동받은 푸치니가 다시 각색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했다.
푸치니는 낯선 문화권의 이질적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남성적 드라마의 선 굵은 성격을 살리기 위해 그는 당시 ‘신음악’이었던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적 리듬과 불협화음을 차용했다. 또 1920년 런던 여행 때 알게 된 중국 음악을 바탕으로 중국제 뮤직박스(오르골)에서 들었던 멜로디와 중국의 5음 음계를 작품에 삽입했고, 두 대의 실로폰과 서양의 징에 해당하는 공과 탐탐 등 중국전통 악기를 빈번히 등장시켜 관현악에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다른 여주인공들, 라보엠의 미미나 토스카, 나비부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는 않지만, 대신 또 하나의 여주인공 류가 푸치니의 전형인 ‘희생적 여인상’을 보여준다.
류는 나라를 잃고 구걸을 하면서 떠도는 눈먼 왕 티무르를 극진히 돌보는 노예로 왕자 칼리프가 보여준 단 한 번의 미소에 반해 그에게 절절한 사랑을 품은 순정녀이고, 어떻게든 결혼을 피하려고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티무르를 고문하게 되고 류는 왕자를 위해 자결한다. 사랑을 모르는 냉혹한 투란도트에게 보상을 원치 않는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조용한 새벽 장면, 무대에서 모두 물러가고 남자 주인공인 테너 칼라프 왕자 혼자 나타나, 마치 이제 눈과 귀를 집중할 시간이니 모두가 주목하라는 듯 관객들의 시선이 한 인물에게 모이고, 기다렸다는 듯 짧은 전주에 이어 칼라프의 노래가 시작된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잠들지 말라/그대 또한, 오 공주여/차디찬 침실 속에서/사랑과 희망으로 떠는/별들을 보고 있으리!/그러나 내 비밀은 내 안에 있어/아무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아무도, 아무도! 날이 밝으면/그대 입에 대고 이야기하리라!”
수수께끼를 통과한 칼라프가 만용을 부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놓고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유명한 아리아를 호기롭게 부른다.
푸치니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투란도트’ 작곡에 의욕적으로 매달렸지만,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류가 죽는 장면까지 작곡을 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세기의 명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의 의뢰로 푸치니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칼라프가 마침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던 날, 토스카니니는 ‘류의 죽음’까지만 연주 한 뒤 “푸치니 선생님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숙연하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투란도트 역에는 “더 이상의 투란도트는 없다”는 극찬으로, 세계 제1의 투란도트로 불리며 카리스마 있는 연기력과 화려한 소리로 대중은 물론 무대를 장악하는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죠반나 카졸라와 폭 넓은 레파토리와 영혼을 사로잡는 파워풀한 목소리로 세계무대에 한국 성악가의 위상을 올리고 있는 드라마틱 소프라노 이승은이 더블 캐스팅됐다.
칼라프 역에는 루벤스 펠리짜리와 신동원이 함께하고, 류 역에는 발레리아 세페가, 티무르 역에는 Bass Elia Todisco, 핑 역에는 바리톤 손동철, 퐁 역에는 테너 Nicola Pamio, 팡 역에는 테너 Paolo Antognetti가 출연한다.
연출은 지난 2007년 CLOS 국제무대디자인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스타 무대 디자이너 겸 연출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국제적인 연출가 안젤로 베르티니가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붉은 색과 황금색 그리고 짙은 회색톤을 주조로 세련되면서도 가장 중국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투란도트의 원작인 카를로 고치의 우화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 황금색과 희색 그리고 회색과 붉은 색을 적절히 조화시켜 캐릭터에 맞춰 재현한 의상에서 더욱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무대와 의상 뿐 만 아니라 출연진, 연출진 그리고 기술진까지 한국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와 이탈라에서 맛볼 수 있는 오페라의 진수를 국내 오페라 애호가들에게도 보여준다. 웅장한 스케일,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대형오케스트라의 편성과 화려한 색체감과 매머드급의 합창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름 돋는 전율로 오페라 ‘투란도트’는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휘는 김해시립합창단 상임 지휘자로 베아 오페라 예술대학 오페라와 주임교수로 경북대 인제대 외래교수인 박지운이 맡았다.
한편, 이번 공연은 창단 11주년을 맞는 솔오페라단이 새로운 10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세계적인 오페라 페스티벌인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 페스티벌과 또 한 번의 걸작 오페라를 공동으로 기획됐다.
오는 4월 8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