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대표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스타’ 진보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금 위치가 아닌 앞으로 가야할 길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그는 명문대 졸업식 대신 그가 앞으로 함께할 노동자들이 있는 직업학교 졸업식에 갔고 금뱃지를 버리고 다시 맨손인 채로 거리에 섰다. 직업학교 졸업식을 가장 기쁜 인생의 한 컷으로 기억하는 노회찬 대표, 그의 목소리로 이 한 지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화되기도 한 일본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른 구성을 보여준다. 기존 작품들이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다면,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범죄의 은폐 방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참신하고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 듯하다.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이가 범인이라는 창조적 결말이 바로 그것이다.
노회찬의원이 가 ‘안기부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실명 공개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안기부 X파일’은 1997년 대선 즈음,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사장이 대선후보와 검찰 인사들의 추석 떡값에 대해 논의한 상황을 도청한 녹취록이다. 안기부가 도청한 280여개의 테이프는 2005년 존재가 알려졌고, 건국 이래 최대의 정·경·검·언 유착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결국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대신 X 파일을 보도한 기자와 수사를 촉구한 국회의원이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이제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려 한다.
새 정부의 각료 인선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여러 후보자들에게서 탈세, 투기, 편법 증여, 판공비 유용 등 개인의 이익에 몰두했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가계곤란 장학금 수령, 세금 부당환급, 미국국적 자녀의 건강보험 적용 등의 깨알같은 재치도 인상깊다. 염치없음이 놀랍긴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늘리려고 했을 뿐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큰 염려가 들지는 않는다. 후보자들의 다른 공통점은 이른바 ‘전관예우’ 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공직에서의 지위를 바탕으로 사적 집단의 이해관계에 복무했던 그들이 이번 공직을 마치고 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인재로 대우받을 것이다. 사익을 위해 헌신했던 그리고 헌신할 이들이 공적 기구를 책임지는 상황은 국가의 운영이 사기업의 파견근로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아 걱정스럽다.
그런데 불행히도 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노회찬 판결에서 사법부는 삼성과 검찰의 유착관계가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공적 관심사를 공론장의 의제로 정의내린다면, 재판부의 판단은 지극히 합당하다. 그 사안은 언론에서도 의회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둘의 유착 관계가 공적 사안으로 다뤄지지 않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를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어느 순간부터 사기업과 국가의 운명이 동일시되는 곳에서, ‘공’에 대한 ‘사’의 지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제 사적 이익에 맞서 공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이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는다.
소설의 X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현실의 X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삶을 헌신한다. 그럼에도 X가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은 공적 기구를 자신의 도구로 변신시키는 X의 능력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촉발된 관심은 X의 공화국을 우리의 것으로 되찾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 교실에서 거리로, 명문대생에서 노동자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을 연장하고, 군사력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초헌법적 조치를 취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유인물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학생운동권이 돼있었다.
▲ 당시 마음을 움직인 책이 있다면?
= 반정부ㆍ반독재 월간지였던 「사상계」, 「다리」와 함석헌 선생님의 「씨o.ㄹ의 소리」, 김지하 선생님의 시를 많이 읽었다. 또한 중3 국어교과서에서 오천석 선생이 소개한 볼테르의 “당신의 견해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자유를 나는 존중한다”는 언론의 자유에 관한 글에 큰 감명을 받았다. 비판할 권리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던 유신이 잘못됐다고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활동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 저임금, 노동탄압으로 유명한 경동산업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근로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그 곳에서 잘린 손가락만 한 바구니가 넘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당시 87년 8월에 파업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했을 때 발견된 그 회사 상무의 일기에 “오늘도 사원들을 채용했다. 왜 이런 형편없는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용자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끔직할 정도로 피부에 다가왔었다.가장 잊을 수 없는 때는 전국의 억압받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노동자본을 만들고 단결했던 사건이 많이 벌어졌던 87년 7, 8, 9월이다. 인천에서 특히 많이 발생했다.
▲노동자들의 연대가 전체의 이익에 손실을 끼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극히 일부 사용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이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민주주의 발전과 더불어 더 보장되고 더 확대된다. 우리 나라에서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는 노동자는 전체 10%밖에 되지 않지만 프랑스 등 선진국들에서는 30~40%수준이며, 가장 높은 복지수준을 누리는 스웨덴의 경우는 90% 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단결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함으로써 일반 서민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내수 경기의 활성화를 가져온다.
◇ 거리에서 국회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 17대 국회에서 민노당 의원으로써 왕성한 원내활동을 보였다.
= 그 학습능력과 활동량의 근원은?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그 기득권에 맞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명분과 논리가 앞서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법률, 제도, 권력도 갖고 있는 저들에 맞서 법률이 잘못됐고, 제도에 문제가 있고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수정당과 관련된 사람들보다 대체로 공부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 노동운동가의 이미지를 가지고도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는데,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요인을 평가한다면?
= 토론회에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이 거듭되면서 주목받게 됐다. 정신적 측면에 따른 실력차도 요인 중 하나다. 보수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이기면 일하지 않고, 선거에서 떨어지면 다음 선거 때까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직위가 아니라 진보정치를 뿌리내리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아닐 때도 열심히 한다. 그 속에서 다듬어졌다고 생각한다.
▲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 나는 민노당 일부 동지들이 분당만이 답이라고 말했을 때 동의하지 않았고, 일부 동지들이 탈당했을 때에도 최대한 막으려고 했다. 진보정당이 두 개가 되는 상황은 진보정치의 발전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 필요성은 분명했고, 그 최소한의 조치로서 혁신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당한 것이 아니라 분당당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다.
▲ 당시의 위치와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걱정은 없었나?.
= 왜 없었겠나. 나는 민노당이란 이름으로 이 지역에서 한창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당을 만들면 그 당을 알리는 것도 촉박하기 때문에 선거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혁신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때문에 남는 것이야말로 구태의연한, 그야말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분당해야한다고 봤다.
▲ 민노당에서 “명망가들만의 정당으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정당은 뿌리가 튼튼해야 살아남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진보신당이 명망가들만으로 이루어진 정당인가.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으로 온 사람은 40%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60%는 민주노동당과 헤어짐으로써 새롭게 참여한 사람이다. 이 당은 이미 어느 한 두 명의 정당이 아니다. 정당의 뿌리가 튼튼해야 살아남는 말도 맞지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서 혁신하자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뿌리가 튼튼한 당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 그렇다면 진보신당의 상임대표로서 뿌리 깊은 당을 만들기 위한 계획은?
= 국민들은 새로운 진보를 바라고 있는데 낡은 진보의 틀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진보신당은 서민대중들이 바라는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재구성하기 위해 평등, 평화, 생태, 연대라는 진보적 지향을 분명히 하되 국민들과 소통하는 당을 계획하고 있다.
▲ 민노당의 집권 가능성이 100%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진보신당의 집권 가능성 또한 그런가?.
= 유럽에 있는 진보정당 중에 집권하지 못한 당이 없다. 진보정당이라서 자동적으로 집권한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대중노선을 걷고, 견지하면서, 서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활동을 제대로 해 낸다면 집권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100%라는 것은 변화, 혁신하는 진보정당의 길을 걸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 노회찬이 바라는 우리 사회는?
=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는 사회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병든 사회 아닌가. 사실 나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허허허.
▲ 앞으로 촛불집회에서 진보진영의 역할은?
= 촛불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마감도 자연스럽게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촛불을 엄호하고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진보정당이 맡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쇠고기 재협상 이슈를 끌고 갈 동력을 진보진영이 계속 확보해야 한다. 쇠고기뿐만 이명박 정부의 시장중심, 강자중심의 정책노선을 바로잡는 일들을 진보진영이 계속해서 계승해 나가겠다.
◇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
▲ 개인 사무실이 아직도 노원구에 있다.
= 사람인 이상 결과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나를 지지해 준 40%의 노원주민이 있다. 이 지역을 떠난다는 것은 그분들에게 도리가 아니었고, 많은 분들이 이 지역에서 다시 도전하기를 희망하시는 데다가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다. 한번 출마했다고 해서 끝까지 그 지역구에서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정치적 이해에만 기반해 변덕이 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
= 늘 쉬고 싶은 생각에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총선을 치르고 나서도 딱 하루 쉬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시간 여건이 안될 때는 가고 싶은 곳을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굉장한 효과가 있다.
▲ 노무현 정부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 ‘그래도 노무현이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가?.
= 개인에 대한 평가라 조심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은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었지만 못한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권을 넘기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잘했던 정치, 사회분야에서는 잘못하고 있고, 잘못했던 경제분야에서는 더 잘못하고 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는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본다.
▲ 나아질 것 같진 않은가?.
= 나도 나아지기를 참 바라고 있지만 자신이 없다. 이는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 기본 노선의 문제다. 다시 태어난다면 몰라도 과연 가능하겠느냐.
▲ 촛불집회라는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소년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 촛불집회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책임과 잘못이 크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스럽다.어떤 초등학생이 등에 ‘각오해라, 방학이 얼마 안 남았다’라는 글씨를 붙이고, 연설에서 ‘지난 총선 때 노회찬 지지했다’고 하더라. 투표권도 없으면서. 허허허. 촛불집회는 개인보다는 사회의 공공선을 위했고, 비폭력 노선도 거의 관철됐다.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이것을 지켜봤던 청소년들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 자라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민주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 청년들에게 할 말은 없나?.
= 주문할 것이 너무 많다. 청년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고, 당장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가장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시기이며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시기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열정과 기백으로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이 결국에는 자기 삶을 규정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렇게 늘어나는데 혼자서만 그 힘든 정규직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는 것도 문제 아닌가.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탓할 수 없지만 주변 사회조건의 문제를 함께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개인도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행복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나온다.
때문에 당장의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이 행복하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것을 찾는데 5년, 7년이 걸리더라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노회찬 대표 자신은 빨간색 중에서도 우아한 빨간색이 되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본 노회찬 대표도 빨간 사람이었다. 노동자들과 같은 땀을 흘리기 위해 용접공이 되고, 노동자들의 진한 땀방울을 위해 그의 생애를 바친 사람. 이 세상 어느 빨간 이보다 ‘맑게’ 빨간 그가 있기에 우리 나라 진보의 미래는 밝다.[= 2008년 7월, 노회찬의원의 인연을 생각하며,. 편히 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