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프로스랩
[연합통신넷=이민숙 기자]연극 ‘날 보러와요’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지난 1996년 2월 극단 연우무대에 의해 문예회관소극장(現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된 바 있다.
연극의 시작은 극장 천정에서 빗줄기가 퍼부우면서 빨간 옷에 우산을 펴들고 가는 가는 여인을 괴한이 덮쳐 강간 한 후 여인을 살해한다. 암전되면서 영상으로 화성연쇄사건의 신문기사기가가 확대되어 투사된다.
장면이 바뀌면서 태안경찰서의 내부로 바뀐다. 무대 정면에는 형사들의 주 활동 공간인 수사본부로, ㄷ자 형식으로, 무대의 왼쪽에는 시를 좋아하는 지적인 김형사의 책상이, 정면에는 과격하고 다혈질인 조형사와 지역 토박이인 박형사가, 오른쪽에는 자원해 온 김반장의 책상이 놓여있다.
수사본부의 왼쪽으로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소파 두 개가 놓인 쑥다방이, 무대의 조금 앞쪽으로는 작품의 처음과 끝에 김반장과 박기자가 만나는 작은 벤치가 놓여있다. 무대 오른쪽엔 형사들이 용의자와 팽팽한 기 싸움을 하는 취조실이 있다. 장면전환과 함께 시를 쓰는 신임 경찰과 그를 촬영하는 여기자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전개되고, 새로 이 경찰서에 부임하는 반장도 자리잡는다. 그러면서 연쇄살인사건은 비가 내리는 날 저녁 무렵에 발생하고, 모차르트의 진혼곡 <레퀴엠>의 음율과 함께 빨간 색 옷을 입은 여인이 피살된다는 괴담도 소개된다.
이 때 용의자가 잡혀오고 어눌한 용의자는 사건설명을 하다가 결정적인 범행을 저지른 대목에 가서는 그때 꿈을 꿨다고 횡설수설하고, 다른 살해사건과 연관된 남자 증인도 등장하지만 신통한 증거를 대지 못할 뿐 사건을 점점 미궁으로 빠질 뿐...범죄수사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퇴근한 경찰서에 시를 쓰는 경찰이 홀로 남아있다. 그 때 경찰서의 사물함이 열리면서 범인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 “너는 어디 있어”라고 묻자“나는 네 가슴 속에 있어”라고 말한다. “너는 가짜야!”라면서 “날 느껴봐”라면서 사라진다. 시를 쓰는 경찰이 “아니야! 아니야!”하면서 울먹이면서 암전과 함께 첫 장면이 다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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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공연의 무대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갈대로, 들판에나 있을법한 갈대가 수사본부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주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수사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이 꿈인지, 생시인지, 용의자로 붙잡혀 온 사람이 정말 범인이 맞는지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앞서, 지난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그해 대종상 최다부문을 수상했고, 530여 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감독 봉준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이 영화는 연극 ‘날 보러와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연극 ‘날 보러와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기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다른점이 눈에 띤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작품 속 배경으로, 연극 ‘날 보러와요’는 공간적인 한계 때문에 대부분 경찰서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는 다양한 배경이 등장한다. 주요 사건 발생 지역이기도 한 논두렁은 물론이고 주인공 박두만의 집, 약국, 술집, 공장, 기찻길 등 많은 공간이 배경으로 쓰인다.
또 사건의 상황을 대사로 전달하는 연극과 달리 사실적인 사건현장을 시시각각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연극은 영화가 가진 시각적인 자극은 없지만 배우의 연기와 대사를 통해 상황을 전달하고 남은 여백은 관객이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의 비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날 보러와요’는 김반장, 김형사, 박형사, 조형사, 미스 김, 박기자 등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저마다 사연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한 작품을 위한 퍼즐 조각이 되어 움직인다. 반면 ‘살인의 추억’은 박구만과 서대운이라는 두 인물의 주도하에 작품이 진행된다.
두 작품 모두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끝나지만, 범인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차이점이 있다. ‘날 보러와요’에서 범인은 단 한명의 배우가 맡는다. 이름만 바뀐 채 똑같은 얼굴을 하고 경찰 앞에 앉아 있지만, 경찰은 범인이 같은 얼굴이라는 것을 인지 하지 못한 채 심문을 한다. 이 설정은 작품이 가진 주제인 ‘진실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각각 다른 배우들이 용의자로 연기한다. 영화의 특성상 같은 배우가 여러 역할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난 뒷모습과 손만 등장한 채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범인마저도 세 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연기했다. 범인을 특정 짓지 않고 1%의 가능성이라도 열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살인의 추억’은 ‘날 보러와요’에 영감을 얻어 탄생됐고, ‘날 보러와요’는 ‘살인의 추억’의 흥행에 힘입어 무대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몇 가지의 차이점을 갖고 있지만 두 작품이 가진 메시지가 모두 범인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김광림 연출이 밝혔듯이 어딘가 범인이 존재한다면 공연장에 이 연극을 보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은 제목인 ‘날 보러와요’와 이러한 잔인한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는 의미가 담긴 영화 ‘살인의 추억’속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는 각 작품에서 범인에게 남기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