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전 국회의원 별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가 최근 남긴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이기택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24일 고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 비견할 수 없는 탁월한 공을 세우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기택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주의를 숭앙하는, 모든 국민들이 이 분들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더 성숙한 그런 국가로 발전되어 나갈 것을 빌어 마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 전 총재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서도 야당 외길을 걸었고, 야권의 두 거목인 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어깨를 견주며 한국 정치사를 써나갔지만 양김의 그늘을 벗어나진 못했고, 양김과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대립하곤 했다.
고인은 1967년 30살에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7대 국회에 들어와 76년 39살에 당 사무총장직과 부총재직에 잇따라 오르면서 정계 지도자로 떠올랐다. 1979년 5월 제1야당인 신민당 총재 경선에 도전해 1차 투표에서 이철승, 김영삼에 이어 3등을 하고, 2차 투표에서 YS 지지를 선언해 김영삼 총재 당선에 기여했다. 고향은 포항이지만, 부산이 지역구였던 이 전 총재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후보와 관련한 양김의 갈등 국면에서 이 전 총재는 YS 를 지원했다. 그는 민주계로 분류되면서 신민당 사무총장 및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국회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때 YS의 권유에도 민자당으로 따라가지 않은 이 전 총재는 노무현 홍사덕 이철 당시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해 총재로 선출됐고, 이듬해 DJ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제1야당 민주당의 단독 대표가 되고 당 총재 자리까지 오르며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DJ가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고, 이 전 총재는 이때 DJ와도 결별한다. 이 전 총재는 민주당 간판을 유지하면서 1996년 15대 총선과 1997년 포항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패배한 뒤, 그해 15대 대선 과정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 평생 야당이었던 이 전 총재가 양김과의 갈등 속에 여당으로 옮기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1998년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지만, 2000년 16대 총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윤환·김광일 등 중진의원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부산 연제구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낙선했고, 그해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이어 2002년 대선과정에선 과거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천년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다시 야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이 전 총재는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맡지 못했고, 4.19 세대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현실정치와는 멀어지게 된다.
이처럼 참여정부 5년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이 전 총재는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고려대 상대 및 고향 후배인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그리고 2007년 17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고, 민주평통수석부의장까지 지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에 차려지며, 발인은 24일, 장지는 4.19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이경의 여사, 세 딸인 이우인 지인 세인씨와 아들 승호씨가 있다.
이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측근들이 전한 이 전 의원의 마지막 활동은 자서전 탈고였다. 이 전 총재는 생전 6~7년 동안 공을 들여온 자서전 탈고를 마쳤다. 별세 전날에도 밤늦게까지 자서전 ‘우행(牛 行·가칭)’ 탈고 작업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가 민주당을 이끌 당시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던 박계동 전 의원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했다. 박 전 의원은 “어제(19일) 밤 총재님이 여의도 사무실에서 지난 6년간 준비해온 자서전 원고의 탈고작업을 마치고 나오며 ‘아…큰일을 마쳤네’라고 흡족하게 말씀했다고 들었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이어 “그렇게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와 오늘 아침 늦게까지 주무셨고 식사 때문에 총재님을 깨우러 방에 들어가 보니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며 상황을 전했다. 이 전 총재는 향년 79세의 나이였지만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