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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교만과 인색..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칼럼] 교만과 인색

김덕권 (원불교 문인회장)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8/23 09:14 수정 2018.08.25 09:31
베풀기를 꺼려하는 인색과, 잘못을 고치는 일에 인색한 경우를 설정한 것이지요.

교만과 인색
교차인(驕且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논어(論語)》제 8편 <태백(泰伯)> 제11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 不足觀也已!

 자 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린 기여 부족관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주공과 같은 훌륭한 재능을 지녔다 해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나머지는 보잘 것이 없다.”」

《논어》<태백편>을 보면, 그렇게 훌륭한 ‘주공(周公)’의 지능이나 기예(技藝)의 극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驕且吝)’하다면 그 나머지야 볼 것이 없다면서 교만하고 인색한 인간의 잘못됨을 질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인색하면 세상에 해악만 끼칠 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교만(驕慢)’은 잘난 체하는 태도로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을 말합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긍지만 높아 자기 잘남에 도취된 상태이지요. 그리고 ‘인색(吝嗇)’은 재물 따위를 지나치게 아낌입니다. 하지만 ‘인색’은 어떤 뜻인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은 독특한 해석을 내립니다.

‘인색’이란 ‘색시(嗇施)’라고 풀이하여 베풀기에 인색함을 뜻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개과천선(改過遷善)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베풀기를 꺼려하는 인색과, 잘못을 고치는 일에 인색한 경우를 설정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공자(孔子)가 바라던 인간상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지능과 기예의 탁월함을 지녔다 해도, 베풀기에 인색하고 잘못을 고치는 일에 인색하고는 인격자가 될 수 없노라고 확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은 ‘자랑하지 말라’입니다. 옛날,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 선생님이셨습니다. 참으로 아는 것도 많은 어른이었으나 남에게 자랑하다 큰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지요. 선생님은 어느 날 아테네 성을 들어가시기 위하여 배를 탔습니다. 뱃사공은 턱수염이 짙은 50대 장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뱃사공이 열심히 배를 젓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농담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거저 죽지 못해 삽니다.” 선생님은 뱃사공에 대하여 흥미가 갔지요. “아저씨! 철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무식한 뱃사공이 그런 유식한 말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더욱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철학도 모르면서 살고 있습니까?” 뱃사공은 노에 힘을 줄이더니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요. “선생! 선생은 그렇게 유식하신데, 수영을 하실 줄 아십니까?” “난 물과는 잘 사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뱃사공은 그만 배를 엎어버렸습니다. 뱃사공은 배를 다시 바르게 하고 몸을 날려 배에 올랐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물에 빠져 살려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주제에 철학이 뭐고, 인생이 뭐요? 건방지게 철학만 알면 다요?” “아저씨! 제발 잘못했으니 한번만 용서해 주시오. 아이 구! 사람 좀 살려 주시오.” 뱃사공은 선생님을 건져 주었습니다. 배에 오른 선생은 물에 빠진 쥐 모양 움 추리고 앉아서 말했지요.

“내가 미처 몰랐습니다. 내 자신을 몰랐습니다. 아저씨는 나의 또 한사람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배에서 내려 아테네 성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이 들어가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지요.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청년들아! 너희들 자신을 알아라.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를 잘 알아야 되는 법이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소크라테스는 결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매사에 조심하면서 살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인색’에 대한 예화도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화입니다. 요즘 이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 측근들이 ‘주군(主君)’을 보호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불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명박의 인색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즉, 이익은 자신이 다 챙기고 측근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측근들은 이명박이 얼마나 사익을 취했는지 다 아는데, 이익을 공유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사이가 금 간 것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명박은 고립무원(孤立無援),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이명박은 인색함으로 인하여 측근도 잃고 돈도 명예도 다 잃게 생긴 것이 아닌지요.

어떻습니까? 사람이 교만하고 인색하면 안 됩니다.《논어》를 읽어보면 공자께서 사모하고 숭배하면서 따르려 했던 사람이 세 분이 있습니다. 요(堯)와 순(舜)이 최고라면 요순과 똑같이 여겼던 사람이 주공(周公)입니다. 오죽했으면 평천하(平天下)의 꿈에 부풀어 천하를 경륜(徑輪)하려던 젊은 시절에는 밤마다 꿈에 주공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주공과 같은 대성인(大聖人)에게도 교만과 인색함이 있다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공은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벼슬하지 않는 선비에게 폐백(幣帛)을 가지고 찾아가 스승의 예를 갖추어 만난 사람이 12인이나 되었습니다. 궁벽한 마을의 가난한 집으로 찾아가 만난 사람이 49인이었습니다. 심지어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주느라 먹던 밥을 입에서 세 차례나 뱉고, 머리를 감다가 세 차례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사람을 만나주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주공의 겸손함은 가히 성인이라 하겠습니다.

교만과 인색으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조금은 바보 같고,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는 것이 도인(道人)이고 성인(聖人)이 아닐까요? 저 역시《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해 한참 정열을 불 사를 때,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과 정산(鼎山) 종사님을 자주 꿈속에서 뵈었습니다. 오매불망(寤寐不忘)! 그 시절이 그립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8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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