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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한결같은 마음..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한결같은 마음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8/30 07:58 수정 2018.08.31 07:25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마음을 한문으로 ‘항심(恒心)’이라고 씁니다. 변함없이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을 이름이지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의 정성(精誠)을 말하지 않을까요? 그럼 정성은 또 무엇일까요? 정성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 되고 성실한 마음이 정성입니다. 정성은 내가 하늘에 드릴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정성이 우리의 영혼에 배이면 지우려 해도 지울 수가 없고, 누가 훔쳐가려 해도 훔쳐 갈수 없습니다. 마치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처럼 정성스러운 사람에게서는 인격의 향기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좋은 향기가 퍼져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성인 것이지요.

무릇 뜻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지만 정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하늘의 뜻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사람의 정성스러움입니다. 정성스러움이 몸에 배이면 말 한마디에도,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도, 마주잡은 손길 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성이 배어나올 것입니다.

《참전계경(參佺戒經)》제 35사(事)는 <방운(放運)>입니다. 여기서 ‘방(放)’이란 정성된 뜻을 본받는 것이고, ‘운(運)’은 정성의 힘을 움직이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방운’이란 정성된 뜻을 본받아 움직이는 것을 말함이지요. 이렇게 정성된 뜻을 본받아 쉬지 아니하면 캄캄한 밤에 밝은 달이 드러나는 것과 같고, 정성된 힘을 쉼 없이 밀고 나가면 한 손으로 삼십만 근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중용(中庸)》제20장에「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6장에서는「정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가 가게 되는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성됨이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며, 도는 누가 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발휘된다는 뜻이지요. 정성됨은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의 근본이므로 이것이 없다면 만물은 이미 존재의 의미를 잃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정성됨은 자기 자신을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만물을 이루게 하는 묘약(妙藥)입니다.

그래서《중용》제 24장 <至誠如神章>에 공자님께서도 정성이 신과 같다(至誠如神) 하신 것입니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孽;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至誠如神.」

「지성의 도를 구현한 사람은 세상일을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 수가 있다. 국가가 장차 흥하려고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며, 국가가 장차 망하려고 하면 반드시 요망스러운 재앙의 싹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길흉의 조짐은 산대점이나 거북점에도 드러나고, 관여된 사람들의 사지 동작에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禍)나 복(福)이 장차 이르려고 할 때, 지성의 도를 구현한 자는 그 원인이 되는 좋은 것도 반드시 먼저 알며, 좋지 않은 것도 반드시 먼저 알아 계신(戒愼)한다. 그러므로 지성은 신(神)과 같다고 할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는 그래서 이 ‘지성여신’을 <지성여불(至誠如佛)>로 고쳐 부릅니다. 저의 서원이 ‘성불제중(成佛濟衆)’이니 앉으나 서나 죽으나 사나 저의 목표는 부처이이고 제중이기 때문에 그리 고쳐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 무사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 무사는 검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수련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사가 하는 것이라곤 고작 목검으로 사람 배꼽 높이만 한 바위를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내리치기 한 가지 동작만 반복했습니다. 부러진 검의 높이만큼, 굳은살의 두께만큼, 무사의 마음은 더욱더 단단하고 강인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힘껏 목검을 내리치는 순간 그 바위는 양쪽으로 쫙 갈라졌습니다. 그 무사의 항심(恒心)은 바위도 갈라지게 할 만큼 집중된 힘이었습니다. 그 힘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되어 훗날 그를 최고의 무사가 되게 했습니다.

이렇듯 단단한 바위도 갈라지게 할 만큼의 집중력과 일관된 마음이 바로 <지성여불>의 정신입니다. 그깟 바위뿐이겠습니까? 흔히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 충신의 혈죽(忠臣血竹), 효자의 죽순(孝子竹筍)’ 등의 옛 이야기가 다 이런 진리의 감응(感應)을 나타낸 결과가 아닐까요?

성공의 비결(秘訣)은 참 단순합니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비법(秘法)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어려워할까요? 먼저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목표로 지극한 정성을 들여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원을 이루기 위한 성스러운 작업을 시작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기본 실행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은 어려운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 어려운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누구도 이 명제(命題)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진실, 즉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묘하게도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둘째, 우리의 미래모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동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결정의 총합(總合)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현재와 다르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셋째, <지성여불>의 정성으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가로막는 장애는 거의 없습니다. 장애가 있다 해도 대부분 우리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서원을 향한 지극한 정성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우리 서원을 크게 세우고 <한결같은 마음> <지성여불>의 정신으로 달려가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8월 3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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