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읽어온 책 중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이 책에서는 사회가 눈부시게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주기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는 원인을 토지 사유제라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지대를 징수해 최우선적인 방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최근 헌법개정안에 명시된 토지공개념이 잘 설명돼 있으며 사회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추천한다.
헨리 조지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이다. 그는 지공주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지공주의의 주된 내용은 개인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지만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그의 불평등 사상이 들어 있는 대표적 저서 진보와 빈곤은 산업화된 경제에서 나타나는 경기변동의 본질과 빈부격차의 원인,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서 토지가치세를 제시하고 있다.
헨리 조지 Henry George 1839~1897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1879년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 중에서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의 표지.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19세기에 출판되어 100년 후에도 읽히고 있는 책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과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뿐이라고 말하였다.
돈벌이에 밝은 어떤 사업가에게 물어보자.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10년 후에는 큰 도시로 성장하여 마차 대신 기차가 다니고 전기가 양초를 대체하게 된다.
기계와 기술이 발전해 노동의 효율이 엄청나게 높아진다고 하자.
그러면 10년 후에 이자율이 높아지겠는가?" 돈벌이에 밝은 사업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임금수준이 오르겠는가?
노동력 말고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쉬워지겠는가?" 돈벌이에 밝은 사업가는 다시 엃게 대답했다.
"아니다!"
"그렇다면 이자도 오르지 않고, 임금도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업가의 대답은 이러했다. "바로 지대, 즉 토지가치이다. 당신도 토지를 구입해서 보유하도록 하라!"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이 충고를 따른다면 다른 할 일이 없어진다.
가만히 앉아서 담배나 피우고 있으면 된다.
나폴리나 멕시코의 거지처럼 누워 있어도 좋다.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든지 구멍을 파고 땅속에 들어가도 된다.
아무일도 하지 않고, 사회의 부에 손톱만한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10년 후에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그 새로운 도시에서 당신은 호화주택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공공건물에는 빈민구호소가 있을 것이다. '왜 도시의 노동자는 시골의 지주보다 더 가난할까?"
헨리 조지의 해답은 명쾌합니다.
바로 토지의 독점적 점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시골의 땅값이 낮다면 시골 지주의 재산은 별볼 일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과 노동력으로 하는 생산활동에는 세금이 붙는데다가, 노동자들은 벌어들인 돈의 상당량을 토지소유자와 독점사업자들에게 방값과 같은 경제적 지대로 바쳐야 하지요.
게대가 토지에 대한 접근성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지 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최진기,<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 '진보와 빈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은 “너만의 몸을 위하고 너만의 영혼을 구제하라”가 아니라 “모두가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입니다.
이는 “각자는 자기만을 위해, 꼴찌는 악마에게”라는 태도를 경계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두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이 서로 형제 됨의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부유하고 힘센 자, 지위 높은 성직자와 통치자가 기독교를 불과 칼로 박해한 이유였습니다.
가난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도적질 하지 말지니라 中
*'분단하여 통치하라.' 이 말 속에 모든 지배자들의 교활함이 표현되어 있다.
민족적 적개심과 국민과 국민 사이의 증오와 지역적 편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국민을 다른 국민과 항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귀족제와 독체제는 구축되며, 또한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해방시키지 않으려는 욕망을 가진 자는 그들로 하여금 증오심을 초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은 결코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곳의 창문 너머에 코뚜레를 한 커다란 소가 묶여 있다.
풀을 뜯는 동안 소는 자신이 묶여 있는 밧줄을 말뚝에 감아버려 풍성하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곯고 있으며, 어깨로 덤벼드는 파리를 쫓기 위해서 머리를 흔들지도 못 한 채, 마치 수감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소는 자유로워지려고 몇 번이고 몸부림쳤지만 그럴 때마다 슬픈 울음소리를 내고는 곧 조용해져 가만히 괴로움에 빠져든다.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한 지각은 없기 때문에 풍부한 풀 속에서 배고픔에 괴로워하며 비참하게도 약하기 그지없는 생물의 희생이 되고 있는 소의 모습이 내 눈에는 마치 노동계급의 상징처럼 비친다.
여러 나라에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풍부한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가난에 괴로워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문명이 새로운 사상적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지금, 그들은 그저 동물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마치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도 인도에 어긋나는 불공평함을 의식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들이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보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때로는 투쟁하기도 하고 항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결과를 원인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한, 또 자신들이 왜 이런 굴레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한 그들의 투쟁과 항의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소의 울음소리처럼 허무한,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허무한 것이 된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가서 쉿, 쉿 소리를 내서 소를 몰아 말뚝에 감긴 밧줄을 풀어준다.
하지만 인간인 노동자들은 누구도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하질 않는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성을 이용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통치형태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정치권력은 실질적으로는 대중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모든 국가에서 대중을 노예화하고 있는 것은 왕들도 귀족들도 아니며, 그리고 지주들이나 자본가들도 아니다.
대중을 노예화하고 있는 것은 대중 자신들의 무지이다. 내가 분명히 하고자 노력해 온 그 진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결코 숨겨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지들이 발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수고를 할 사람들, 고난을 받을 사람들, 필요하다면 죽기까지 할 사람들. 이것이 진리의 힘이다.
헨리 조지는?
산업혁명을 목격한 애덤 스미스나 데이빗 리카르도는 자본주의적 진보가 모든 계급을 더욱 풍요롭게 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계급은 더 빈곤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자본가들이 생산수단 즉 자본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1839~1897)는 '진보와 빈곤: 부의 증진에 따른 산업불황과 빈곤 증가의 원인에 대한 조사(1879)'라는 책에서 같은 질문에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조지에 의하면 사회가 진보할수록 대중은 더욱 빈곤해지는 이유는 바로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남북전쟁(1861~65)이 막 끝난 당시의 미국은 철도 붐과 서부개척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왔고, 땅값은 급속하게 상승했다.
특히 1869년에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면서 서부의 여러 도시들에서는 광적인 토지투기가 일어났다. 철도회사들은 철도를 운영하여 정상적으로 이윤을 획득하려 하지 않고 주식거래, 국유토지의 불하, 현금 보조금을 비롯한 갖가지 특혜로부터 불로소득을 얻었다. 정부는 철도회사들에 광활한 면적의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함으로써 투기를 조장하였다. 이렇게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철도왕으로 불렸던 밴더빌트(1794~1877)이다. 하지만 그 대신 자급자족하면서 건전한 삶을 유지해 오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토지로부터 내쫓기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대중은 더욱 빈곤해지고 생활조건은 더욱 가혹해졌다. 조지는 이 모든 것이 토지에 대한 독점적 소유 때문이라고 보았다.
독학으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한 조지는 스미스가 그랬듯이 생산물의 가치는 지대와 이윤과 임금으로 나뉜다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지대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윤과 임금은 줄어든다. 불황과 빈곤의 원인은 바로 토지의 독점적 소유와 그로 인한 높은 지대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헨리 조지가 내놓은 것은 토지의 몰수가 아니라 토지단일세이다. 굳이 토지를 몰수하지 않더라도 토지로부터 나오는 지대를 전부 정부가 세금으로 환수한다면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경제학자들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나 시드니(1859~1947)와 베아트리체 웹(1858~1943) 부부와 같은 영국의 페이비안 사회주의자들―오늘날 영국 노동당의 모태가 된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요즘 빈번히 논의되고 있는 '토지 공(公)개념'이나 개발이익을 환수하여 공공복지를 위하여 사용하는 정책 등도 모두 헨리 조지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부가 증가되는데, 왜 빈곤은 계속되는 것일까.’
1877년 조지가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머리 속에는 이 생각만으로 꽉 차 있었다. 1839년 영세한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14세 때부터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금광업자, 육체노동자, 신문 기자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살았다.
비참할 만큼 가난했던 그는 이런 가난의 원인을 토지의 대물림에서 찾았다. 당시 미국은 건국 후 이어진 땅 투기 열풍으로 뜨거웠다. 땅이 부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지는 “문명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심화되는 이유는 땅의 사적 소유에 있다”고 말했다. 생산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액에 머무는 이유는, 생산력 향상보다 더 큰 비율로 지대가 상승함으로써 임금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지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 소유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이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전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책 《진보와 빈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이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이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조지가 말하는 건 결코 토지의 국유화는 아니었다. 토지의 매매도 허용하고, 유증, 상속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사유 재산 그대로 둔 채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진보와 빈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토지를 환수할 필요는 없고,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 이미 우리는 지대의 일부를 조세로 걷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조세의 방법만 약간 바꿔 지대 전체를 걷으면 된다. 지대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자. 단, 토지가치 이외의 대상에 부과하는 모든 조세를 철폐하자.’
결국 그가 제시한 대안은 토지 사용의 대가인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 단일세(land only tax)’였다. 땅에서 파생되는 불로소득을 전부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 그는 “토지단일세를 도입해 땅 투기가 사라지면 지대가 내려가고 하락한 만큼 임금이 상승하며, 나아가 환수된 지대가 사회 전반에 재분배되면 그만큼 빈곤도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생산 활동에 부과되던 다른 조세가 감면됨에 따라,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크게 증대될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