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김현태, 심종완기자] 친박(親朴)계 핵심 인사가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현역 의원 40여명의 '물갈이'를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26일 비박(非朴)계에서 나왔다. '물갈이' 대상으로는 이재오(서울 은평을), 유승민(대구 동구을),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김용태(서울 양천을) 의원 등이 거론됐다.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본지 기자와 만나 "김무성 대표의 측근이 25일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김 대표가 친박 핵심으로부터 현역 의원 40여명의 물갈이 요구 명단을 받았으며 거기에 정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측근은 "김 대표는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도장'을 찍어주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정 의원은 전했다.
역시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김용태 의원(서울시당위원장)은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택에 머물렀다. 김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어제(25일) 내가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야기를 김 대표 측근으로부터 듣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며 "이런 (물갈이) 시도가 실제 시행된다면 나는 결연히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두언·김용태 의원은 대표적 비박(非朴)계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과 '진박(眞朴) 마케팅' 등을 비판해 왔지만 이들의 지역구는 야당세가 강한 '험지(險地)'로 당내 경쟁자가 없다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김 의원은 "명단을 만든 (친박계) 사람들이 '선거는 져도 좋다'고 말했다고 들었다"며 "나는 저들(친박)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지역구인) 신월동 주민들 손에 죽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내가 서울시당위원장인데, 대구에서 유승민을 자르면 (전체 유권자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서울에서 선거를 못 한다"고도 했다. 유승민 의원도 전날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한 측근도 '살생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저쪽에서 '물갈이' 요구가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 "누가 들고 왔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명단에는 이재오·정두언·김용태 등 비박계뿐 아니라 친박계 인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친박계가 이른바 '논개 작전'을 기획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친박계 스스로 자파(自派) 중진 인사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이들과 함께 유승민·정두언·김용태 등 비박계 인사를 쳐내려 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정작 김 대표 본인과 친박계 핵심들은 본지의 확인 요구에 '살생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김 대표는 "나는 그런 명단을 받은 적이 없다"며 "지금 그런 명단을 주고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친박계 측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양측이 반목하는) 지금 상황에서 친박계 핵심 인사가 김 대표를 만나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느냐"며 "살생부라는 것은 있을 리 없고 당 내부를 이간질을 시키려는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현재 진행 중인 시·도별 공천 면접 심사가 끝나는 대로 후보 부적격 심사, 우선 추천 지역 선정 등을 통해 공천에서 배제할 현역 의원을 골라낼 예정이다.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는 당헌·당규에 명시된 부적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대부분의 현역 의원에게 경선 기회를 보장한다는 방침이지만, 친박계는 대규모 현역 교체를 통해 이른바 '진박'을 전진 배치하고 당의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현역 의원 물갈이는 시대적 과제"라며 "19대 국회는 국민의 분노의 대상인데 그 사람들을 그대로 공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현재 공천 방식으로는 현역 물갈이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공천제도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직권상정에 野 2012년 재도입된 '무제한토론'으로 맞서
여야, 기준 합의했지만 획정위서 선거구 재조정 지연
새누리, 공천면접…영남 친박·비박 치열한 경쟁
더민주, 현역 물갈이 본격화에 의원들 거센 반발
4·13총선을 40여일 앞둔 정치권은 이번 주 여야간 쟁점법안인 테러방지법 처리를 놓고 격돌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 들어갔다. 여야는 대치 속에서도 물밑 접촉 등을 통해 조율에 나섰지만, 입장 차가 커 돌파구를 찾는데 실패했다.
4·13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도 '여야의 대리전' 성격을 띤 선거구획정위에서 선거구 획정 작업이 지연되면서 애초 여야가 목표로 했던 26일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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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여야는 각각 공천 일정에 본격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공천 신청자를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이어가며 부적격자들을 솎아내는 자격 심사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국회의원 평가 하위 20% 물갈이 대상을 확정한데 이어 추가적인 정밀심사에 들어갔고, 국민의당도 공천관리위원회 인선을 마무리했다.
◇ "쓰러질 때까지 간다"…野, 필리버스터 닷새째 = 정 의장은 지난 23일 테러방지법의 처리 지연을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하고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이에 더민주는 1973년 폐지됐다가 지난 2012년 5월 국회법 개정으로 부활한 필리버스터를 처음으로 요구해 강행하고, 27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토론에는 국민의당과 정의당 의원들도 동참하면서 27일 오전까지 17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더민주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 정의당 박원석 의원 9시간 29분간 각각 발언을 이어가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5시간 19분 본회의장 연설과 신민당 박한상 의원의 10시간 15분 법사위 발언 등 역대 국회 최장시간 발언 기록이 모두 깨졌다.
새누리당은 "국회를 볼모로 한 선거운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본회의장 앞에서 '국회마비 ○○시간째' '테러방지법도 못 만드는 국회'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맞불시위를 벌였다.
◇ 출구 없는 선거구 '공백사태' =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23일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을 토대로 한 선거구 획정안 기준에 합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넘겼다.
그러나 여야가 추천한 획정위원들로 구성된 획정위는 획정 결과에 따라 지역구가 대거 늘어나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구과 영호남의 통폐합 대상 선거구의 경계 재조정을 놓고 의견이 맞서 여야가 당초 공직선거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26일을 넘겼다.
획정위는 주말인 27일 오후 다시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지만, 여야가 선거법 처리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29일 당일까지 지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與, 지역별 공천면접…"현역도 예외 없다" = 지난 20일 수도권 지역을 시작으로 공천 신청자 면접 심사에 착수한 새누리당이 텃밭인 영남 등 다른 지역에 대한 면접 심사를 이어갔다.
이한구 공관위는 시간상, 관례상의 이유로 현역 의원을 면접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의 의견서를 받는 방식으로 대체했던 과거와 달리 현역 의원들도 예외 없이 면접대상에 올렸다.
공관위는 상향식 공천의 정신 아래 모든 신청자가 같은 조건과 절차를 거쳐 경쟁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현역 물갈이'를 위한 또다른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비박(비박근혜)계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이른바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임을 내세운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맞붙는 대구 동을 면접심사의 경우 장장 40분간 이어지는 등 깐깐한 심사가 진행됐다.
◇ 野, 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물갈이 본격화 = 더민주는 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배제 대상을 확정한 데 이어 정밀심사를 통해 현역 의원들에 대한 추가 물갈이를 시사하자 의원들이 동요·반발하는 등 후폭풍에 시달렸다.
더민주는 24일 문희상 신계륜 노영민 유인태 송호창 전정희 김현 백군기 임수경 홍의락 등 10명을 공천에서 원천 배제했고 25일 강기정 의원 지역구에 전략공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당 의원 중 일부는 이를 수용했지만 일부는 이의신청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고, 동료 의원들도 공관위가 지역구 사정 등 정무적 고려를 배제한 채 의원들을 기계적으로 잘랐다고 비판했다.
공관위는 이밖에 중진 50%와 초재선 30%에 대한 정밀심사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이에 의원들은 26일 의원총회에서 공관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일부 공천배제 의원들을 구제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의 불화 등을 이유로 지연됐던 선대위를 공식 출범하고, 전윤철 위원장을 비롯해 공천관리위원 인선을 마무리하면서 양당에 비해 뒤늦게 본격적인 선거체제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