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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관학(灌涸)..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관학(灌涸)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9/03 00:23 수정 2018.09.04 08:27
▲ 덕산 김덕권

관학(灌涸)

《참전계경(參佺戒經)》제129사(事)는 <관학(灌涸)>입니다. 그런데 이 ‘관학’이라는 한문이 꽤 어렵지요? 물댈 관(灌), 물마를 학(涸) 자입니다.

「관학자(灌涸者) 관홍파학어천야(灌洪波涸於川也) 천학산물미잔(川涸産物靡殘)

부득생성지리(不得生成之理) 혜폐강지(惠霈降之) 여인수육(如人受育)」

『관학이란 메마른 개천에 물 흐르게 하는 것이다. 개천이 말라서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고 나고 이루어지는 이치를 얻지 못한다. 단비가 내리면 다시 만물이 소행하는 것처럼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것도 마치 은혜로운 단비를 받는 것과 같으니라.』

‘관학’이란 메마른 개천에 큰물을 대주는 것입니다. 개천이 메마르면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는데 이때 단비가 내리면 만물이 다시 소생하듯이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것도 이와 같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자라는 데에는 은혜의 물줄기가 풍성하게 쏟아져야 하는 네 번의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의 은혜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생명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둘은, 스승의 은혜입니다.

사람다움의 특징인 지성(知性)을 확장하는 풍성한 정보와 지혜(智慧)는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며 인생의 스승을 찾아 길러지는 것입니다.

셋은, 진리공부입니다.

인간을 참 인간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하늘의 지혜, 즉 진리를 깨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훌륭한 스승을 만나 도학(道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참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넷은, 동포와 법률의 은혜입니다.

동포와 법률이 없으면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넷 중에 어느 하나가 빠지더라도 그 인생은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시대가 좋지 못하여 이러한 공급을 제대로 못 받게 되면 심각한 결핍 증상이 발생하여 고통과 불행으로 인생을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 민족은 생존의 위기에 몰렸었습니다. 어미젖을 먹지 못하고, 어릴 때 공급받아야 할 영양이 결핍되어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행하게도 나라가 발전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먹는 문제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어려운 시기는 지난 듯합니다.

오늘날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은 너무 많아서 홍수가 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매 분, 매초마다 정보의 양은 몇 배로 늘어나는 시대에 살면서 이제는 받아야 할 정보를 추리고, 가려내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요.

그럼 영적인 은혜, 즉 진리를 깨치는 일은 어떠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외칩니다, 경전연구를 하고, 포교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풍성한 것 같고 넘치는 것 같지요. 그러나 정작 바닷물이 넘실거려도 마실 수 없는 것과 같이 영적인 은혜는 오히려 척박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진정한 스승이 있어서 동기부여를 하고, 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관학공부’를 해야만 사람들이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극과 동기부여를 할 만한 스승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비극인 것이지요.

우리 인간은 의식주(衣食住)도 중요하지만, 정작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 삼학공부(三學工夫)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명의 본질과 힘의 근원은 진리에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 자기를 발견하며, 인생과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잘 양육 받아 세상의 지식으로 똑똑한 사람이 되어도,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잘 먹지 못해 여위고, 잘 못 배워 명리(名利)를 얻지 못해도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이 낫습니다. 잘 먹고 똑똑한 사람이 진리를 깨치지 못하면 그가 느끼는 곤고(困苦)함과 갈증(渴症)은 극심해 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릴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가물었다 하더라도 비올 때만 기다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이미 하늘은 항상 그런 진리의 생명수를 풍성하게 공급하고 있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리를 일깨우고, 양육하고, 가르치는 스승이 드문 것입니다. 선생은 학교에서 문자나 학문을 주로 가르친다면, 스승은 도덕이나 인간의 도리나 도의 이치와 원리를 주로 가르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오묘(奧妙)한 뜻은 더더구나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스승을 좇아 배우지 않는다면 인생의 성공은 거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삼학을 공부하여 삼대력(三大力)을 얻은 도인을 찾아 그를 스승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제자가 스승을 찾았다면 다음 다섯 가지로 섬겨야 합니다.
첫째, 스승을 존경하여 항상 찬양합니다.

둘째,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하고 스승을 시봉하기에 힘씁니다.

셋째,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집중합니다.

넷째, 배운 대로 기억하고 삼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합니다.

다섯째, 혹 스승이 엄교(嚴敎) 중책(重責)을 하더라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와 같이 스승과 제자사이에는 정의(情誼)가 부자와 같이 무간(無間)하여야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윤기(倫氣)가 통하고 심법(心法)이 서로 건네어서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일단(一團)의 힘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9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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