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같이 텅 빈 마음
흔히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합니다. 마음은 아주 미묘(微妙)하여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집니다. 그럼 우리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예쁘고 밉고 참마음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도 참 마음이 아닙니다. 허공처럼 텅 빈 마음 그것이 참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텅 비었으므로 일체만물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도 대인(大人)이 되려면 그 마음이 허공처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 하며, 가정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써 하고, 나라를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허공처럼 되고 보면 심지어 윤회(輪廻)의 승강(昇降)까지 벗어난다 하였습니다.
이 빈 마음을 바탕 하여 우리가 모든 상(相)을 떠나면 항상 사은(四恩 : 天地恩 父母恩 同胞恩 法律恩)의 은혜를 입게 되어 모든 일에 성공을 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어떻게 작용시키느냐 에 따라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어 그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교당(敎堂)에도 나가고 또 공도(公道) 사업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유비(劉備)에게 ‘제갈량(諸葛亮)’이 있었다면 칭기즈칸에겐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이 초원의 유목민에 불과한 몽골족을 이끌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던 것은 야율초재라는 걸출한 책사(策士)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칭기즈칸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이민족과의 전쟁이나 중요한 일은 무엇이든 야율초재와 의논했지요.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만 보고 인물을 썼던 칭기즈칸이 한낱 피정복민의 젊은 지식인에 불과했던 야율초재를 그토록 신임했던 이유는 천문, 지리, 수학, 불교, 도교 할 것 없이 당대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한 그의 탁월한 식견 때문이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봤던 야율초재가 남긴 유명한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깊은 깨달음은 간결하고, 큰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합니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났다가 애플이 망해갈 즈음 다시 복귀했습니다. 그가 애플에 복귀한 뒤 맨 처음 시도한 것은 새로운 제품을 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제거 하는 일이였습니다. 수 십 개에 달하던 애플제품을 전문가용, 일반인용, 최고사양, 적정사양으로 분류해 단 4가지 상품으로 압축했습니다.
이렇듯 불필요한 제품을 솎아 내고 선택과 집중의 의사결정으로 다 죽어 가던 애플을 살려냈습니다. 그 후 쏟아져 나온 애플 제품들 역시 하나 같이 심플했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잡다한 기능을 덕지덕지 붙일 때 스티브잡스는 불필요한 기능을 하나하나 제거해 간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입니다. 스티브는 이렇게 전자제품도 명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다 망해가던 애플은 어느덧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 중에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한 결과물이 많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완성하던 날 수 많은 사람들이 다비드 상을 보기 위해 피렌체로 몰려들었습니다. 커튼이 걷히고 5미터 높이의 다비드 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습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완벽한 조각상에 압도된 대중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으며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대리석은 돌의 결이 특이하여 당대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조각하다 모두 포기하여 수 십 년 동안 방치된 바위였습니다.
어느 쪽은 푸석푸석하고 어떤 쪽은 단단하여 조각하기에 너무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그 대리석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품이 완성된 후,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조각했기에 남들이 모두 포기한 그 대리석으로 그토록 훌륭한 조각을 할 수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돌 속에 갇혀 있는 다비드만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조각상 역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 결과물인 것이지요. 마찬 가지로 몸에 좋은 보약을 지어 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똑 같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려 하기보다 욕심을 제거하는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비우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점을 추가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치명적인 단점을 제거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것입니다.
동방의 현인 야율초재의 말이나, 서방의 현인 미켈란젤로의 말이나, 스티브 잡스의 그 말의 의미는 모두 일맥상통합니다. ‘무엇을 채울까’를 생각하기 전에 ‘무엇을 비울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장점을 갖출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어떤 단점을 없앨까 부터 궁리해야 합니다. 큰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함은 물론이고 삶의 많은 영역에 두루 좋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이 결국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인 것입니다. 마음의 본말(本末)을 알고, 마음 닦는 법을 알며, 마음 쓰는 법을 잘 아는 것이 모든 지혜 중에 제일 근본 되는 지혜입니다. 더군다나 이 마음공부는 한 번 실력을 얻고 보면 능히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지배할 수 있고, 명예와 재보(財寶)와 일체 모든 학식을 다 참되게 사용 할 수 있게 됩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아닙니다, 허공같이 텅 빈 마음을 만들면 내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진(天眞)하여 사(邪)없는 마음이 천심(天心)입니다. 우리 무슨 일을 하되 천심으로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9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