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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고부(顧賦)..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고부(顧賦)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10/04 08:26 수정 2018.10.05 02:21
고부란 타고난 성품(性品)을 되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고부(顧賦)
《참전계경(參佺戒經)》제 131사(事)는 <고부(顧賦)>입니다. 고부란 타고난 성품(性品)을 되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이치와 기운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하늘의 이치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기운이 따라와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큰 성인(上哲)은 타고난 성품을 마음대로 부리고, 현명한 사람(中哲)은 타고난 성품을 거느리며, 그 이외의 사람들(下哲)은 타고난 성품을 되돌아보면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성품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품(性品)으로 ‘사람의 성질과 됨됨이’를 말하고 또 하나는 성품(性稟)으로 ‘사람의 타고난 성질’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문으로의 표기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어쨌든 우리는 좋은 성품을 만들지 않으면 주위의 외면을 받아 일생을 어렵고 괴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성품을 만드는 것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었던 작은 성품을 더 크게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발견하고 키우면 좋은 성품을 키우게 되는 것이지요.

원불교에서는 성품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원불교에서는 성품에 대한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터 본래 가지고 있는 근본 성질.

둘째, 누구나 부처의 인격을 이룰 수 있는 본래의 마음.

셋째,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본질이 하나로 합일 되는 진리.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성품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성(自性)⦁본성(本性)⦁불성(佛性)⦁법성(法性) 등과 같은 말이 됩니다. 결국 성품은 성리(性理)와 같은 뜻이지요. 즉, 성리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성품을 찾고 깨치는 공부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래 부터 한 개의 보배구슬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보배 구슬 한 개로 영겁(永劫)의 세월에 끝없이 흘러가며 육도 윤회(六道輪廻)를 거듭하는 것이지요.

그 누구나 갖고 있는 한 개의 보배 구슬! 그것이 곧 성품입니다. 제불(諸佛), 조사(祖師), 범부(凡夫), 중생(衆生)의 성품은 오직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성품이 곧 일원상(一圓相)의 진리요, 성리이기 때문이지요. 성품이라 함은 생생약동(生生躍動)하는 기운입니다. 일 따라 경계(境界)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고 조화무궁(造化無窮)합니다.

텅 빈 저 허공에 달하나 걸려 있습니다. 그 빛이 우주에 가득 차 시방삼세(十方三世)를 비춥니다. 호수에 잠긴달, 개울에 비친 달, 바다에 비친 달, 맑은 물, 흐린 물에 비친 달, 일천 강에 비친 달그림자는 헤일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달그림자는 각각이라도 허공의 달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성품의 본래자리는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체의 사량 분별(思量分別)이 다 끊어진 것이지요. 선악(善惡)도 죄(罪)와 복(福)도 없고, 생사거래(生死去來)도 없으며, 행 ⦁ 불행도 없고, 염정미추(染淨美醜)도 없으며, 남녀노소도 없고, 동서남북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만경계에 따라 생사고락이 있고, 선악시비가 있으며, 빈부귀천이 있고, 원근친소가 있으며, 남녀노소가 있고 민주주의 공산주의도 있고, 진보와 보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 따라 경계 따라 천만분별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예컨대 잔잔한 호수에 돌 맹이 한개 던지면 천파만파(千波萬波)가 일어나듯 본래의 성품이 경계에 흔들리면 천만 번뇌가 불타듯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했습니다. 허공 꽃 어지러이 흩어지듯, 물거품이 일어났다 사라지듯, 도 안개가 모였다 사라지듯, 풀잎이슬 맺혔다 없어지듯, 그렇게 티끌 먼지 자욱하게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세상사는 일이요, 인간 세계의 천차만별한 차별현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품은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없지만 경계를 만나 바르게 작용하면 선(善)이 되고 그르게 작용하면 악(惡)이 됩니다. 그리고 성품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나타나기도 하고,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상락아정(常樂雅正)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예지(叡智), 용기(勇氣), 절제(節制), 정의(正義)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품이 잘못 작용하면 악(惡)이 됩니다. 번뇌망상(煩惱妄想), 사심잡념(邪心雜念), 사량계교(思量計巧), 시기질투(猜忌嫉妬), 삼독오욕(三毒五慾)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본래 성품은 고요한 마음이요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부처의 마음이요, 깨친 마음이며, 지혜광명입니다.

그러나 한마음 고요하면 번뇌 망상은 사라지고, 한마음 평화로우면 시방삼세가 다 극락정토(極樂淨土)요, 한마음 텅 비면 분별시비가 잠을 자고, 한마음이 한가로우면 생사고락이 모두 한 곡조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한마음 깨끗하면 선악미추가 흔적이 없고, 온갖 생각이 잠을 자면 천지와 하나 되어 성품의 보배구슬이 찬란한 빛을 발해 온 누리에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성품은 곧 성리의 궁극(窮極) 처입니다. 성리는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근본이치가 하나 된 그곳입니다. 성품을 깨치면 형상 있는 모든 것이 ‘허공의 꽃’이라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귀공명도 풀잎의 이슬이요, 재색명리, 희로애락. 흥망성쇠도 물거품이며, 시방삼세. 삼라만상도 눈 깜짝 할 사이 인 것입니다.

성품은 부처님 마음이며 보리심이고 자비심입니다. 성품을 발견하고 깨친 사람은 걸음걸음, 생각 생각이 도에 합일하여 걸리고 막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참전계경》의 ‘고부’의 뜻이 아닐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0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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