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3일 개천절을 맞아 영남대를 바로 세워 민족민중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500명의 열성이 대구향교로 모였다. 과거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이 강탈했던 원조학원적폐로 영남대문제로 경주 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 최염 선생이 강연을 했다.
강연회는 경주 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 영남대정상화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대학학회, 조선의혈단기념사업회, 서일장군기념사업회, 영남선비문화수련원에서 후원했다.
다음은 최부자 11대 후손 최염 선생의 강의내용이다.
1918년 어느 날이다. 3.1 운동 거사를 준비하며 손병희 선생이 경주로 왔다. 그 때 최부자에게 제안했다. 보성전문학교 운영을 부탁했다. 일제식민지치하에 독립을 바라던 최부자는 차마 거절을 못하고 이후 설립자, 재단이사장으로 역할을 했다.
최부자는 대구대학에 장서를 기증하고 동양철학과를 신설했다. 부정입학을 용납하지 않은 문파 최부자로 불렸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5.16 쿠테타 실권자 박정희를 만났다. 대구대학은 독립운동에 기여하려했던 사람들이 땅을 기부하여 설립된 학교이다.
1961년 박정희 군부가 쿠데타에 성공했다. 1963년 자유당 때 대구대학에서 교수와 이사를 지낸 적이 있었던 신현확씨가 연락이 왔다. 그 당시 삼성 계열사에 사장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삼성그룹 이미지 쇄신으로 교육사업을 이병철 회장께 제안했다. 그 후 최부자의 대구대학을 삼성 이병철이 위탁받아 경영했다.
그러나 유명한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졌다. 이당시 김대중(전, 대통령)의원을 중심으로 비판과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삼성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 사건을 무마하는 조건으로 대구대학을 이후락에게 넘겨주고 성균관대학을 받았다. 삼성 이병철이 이후락과 박정희에게 학교를 거래하듯 헌납했다. 박정희는 3선 유신헌법의 개헌을 추진하며 권력을 이용해서 청구대학을 인수했다.
이런 과정에 삼성 이병철은 최부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회를 열고 대구대학을 청구대학과 합병하는 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런 사건이 나고 이후 10. 26사건이 나고 박정희는 죽었다. 군사독재정권 박정희 사후 새로운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1980년 박근혜를 영남대학교(학원재단) 이사장으로 앉혔다.
영남대는 그로부터 학교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 선생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식으로 정관을 개정 변경했다. 이사장을 맡은 박근혜가 학원(영남대) 사유화를 위한 포석으로 저지른 행태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끄러운 사건이다.
이런 이유만 보더라도 박근혜가 손을 떼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때 김동영 의원이 당시 ‘박정희씨에게 교주라고 들어간 것’에 대한 이유가 무엇이냐? 고 질문을 했다. 영남학원 조일문 이사장은 박정희나 박근혜가 영남학원법인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했다.
군부독재자 박정희는 사카린 밀수사건을 일으킨 삼성의 약점을 잡아 영남대학(학원법인)를 강탈했을 뿐이다. 박근혜는 또 다른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으로 영남대학을 선물 받았을 뿐이다. 이렇듯 기여를 한 바가 없으면서도 대학설립자도 모자라 ‘교주(校主)’라는 표현을 쓰고 수십 년 간학교가 자신의 것인 양 재단이사들을 임명했다.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지탄이 심해지자 박근혜는 1988년 11월에‘영남대학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 는 성명을 발표하고 학교를 물러났다.
그 뒤 20년여 년이라는 임시 이사체제가 종료되고 2009년 정이사 체제로 전환할 당시 박근혜는 이사 7명중 과반수인 4명의 정이사를 추천했다. 이것은 구악(舊惡)이던 박근혜가 또 다시영남대학의 전권을 쥔 결정적 사건이다.
부당하게 이사로 추천 된 2009년 이사선임은 모두 취소해야 한다. 2007년 대법원 상지대학 판례는 ‘임시(관선)이사 제도가 폐지되고 정이사 체제로 바뀔 때에 종전이사(관선이사의 직전이사)가 정이사를 추천한다.’ 고 했다.
박근혜가 추천한 이사진은 모두 퇴진한 가운데 명명백백한 공개상태에서 진정성 있게 학교를 운영할 이사진을 다시 뽑고 이사장을 새로 추대해야 한다.
3.1절 100주년이 다섯 달 남았다. 독립운동정신이 살아있던 (구)대구대학을, 삼성 이병철이 박정희에게 헌납한 것은 한국현대사에 묵과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은 ‘민립’의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인양 권력자에게 갖다 바친 것이다. 민(民)은 없고 사(私)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대학의 본보기를 물려주었고 이후 권력자의 후손인 박근혜는 많은 비리를 저질렀다.
이 나쁜 선례가 대한민국을 기둥뿌리 채 좀 먹고 있다. 이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삼성은 '공'과 '과'가 동시에 있지만 '과'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인정케 하는 일이 필요하다.
영남대학은 결과적으로 대구와 경상북도 도민이 출연해서 만든 학교다. ‘민립대학’은 최근 거론되고 있는 ‘공영형 사립대학’ 에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델이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의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혹은 ‘대구시립대학’이나 ‘경북도립대학’으로 재편되어 서울시립대학처럼 올바른 인재들이 등록금 부담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조성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정치 권력자와 특정 재벌 등 교육에 사랑과 관심이 없는 사람이 교육에 관여하면 안 된다. 다행히 군부독재정권 박정희는 학교의 외형을 키워 놓았다. 그런다고 박근혜가 이를 사유화 하면 안된다.
지금이라도 내려놓는 공명한 자세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외국의 대학이 후손에게 명예를 강조하듯이 그 정신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고 영남대사건의 과거학원적폐청산 입장을 밝혔다.
이날 강연회에서 상지대 정대화 총장대행은 2009년 이사 선임이 불법이란 것을 상지대 행정소송이 승소한 것을 예를 들었다.
한국장학재단 이정우 이사장은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미쓰이 재벌로부터 백 만 불의 리베이트를 받기 위해 삼성과 박정희가 벌인 일이란 것을 이맹희 회고록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경주 최부자의 정신으로 영남대를 민립대학으로 회복하자" 고 소신을 피력했다.
전 국회의원 이부영 이사장은 "영남대 문제를 대구경북 사회가 해결하여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자"고 성토를 했다. 서훈 전 국회의원도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문이 많다. 서일 총재의 투쟁역사도 알려지지 않았다. 영남대도 지역사회에서 조차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바른 역사를 알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고 강조했다.
영남대 민주동문회 이상욱회장은 "지금 영남대 이사체제에서도 파행적인 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모교가 바로 서는 그날까지 힘을 모우는 노력을 하겠다"밝혔다.
최부자 후손과 영남대정상화대책위원회는 '영남대(학원재단)가 바로 서야 과거적폐가 청산 되고 나라가 바로 선다.' 는 강연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