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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4회..
기획

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4회

한애자 기자 haj2010@hanmail.net 입력 2018/10/08 14:13 수정 2018.10.08 15:54

내가 낫으로 그 질긴 관목의 잡초를 자르고 있을 때 은지는 따뜻한 방에서 TV를 보고 <새 아씨>연속극을 즐기고 <여로>의 태연실의 연기를 즐겼고 읍내에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농사철의 바쁜 날에 어머니의 모내기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난 자주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은지는 반장이 되어 선생님의 사랑과 반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은지는 서울로 시집 간 큰 언니가 보내 준 옷으로 공주처럼 예쁘게 치장하여 우리 마을의 멋쟁이였다. 칼라가 넓은 세라복과 초록과 빨강의 물방울무늬의 니트 세타를 입었을 때는 그 예쁜 얼굴이 귀족의 자제처럼 돋보였다. 나는 언제나 땟물이 찌든 나이롱 상의에 소매부분은 콧물을 훔쳐서 번쩍이고 있었다.

이른 봄, 사월이 되면 은지가 분홍색 치마를 입었을 때, 늘 나이롱 바지만 입고 다녔던 나도 입고 싶어서 예쁜 치마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 조르다가 머리를 쥐여 박혔다. 그야말로 은지는 신데렐라요 나는 콩쥐였다.

황량한 벌판에서 나무를 긁어모아 새끼줄로 든든하게 묶어서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길은 서글펐다. 배고프고 숨이 차고 힘들어서 잠시 쉬려고 논두렁 담 벽에 기대어 섰다. 지친 시야에 저물어 오는 노을 저편이 펼쳐졌다.

“기륵기륵 기륵기륵…… ”

기러기 떼가 저 노을 진 창공으로 사라져 갔다. 난 사라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아득한 저편의 세계를 상상하였다. 기러기가 마치 나의 힘찬 미래를 찾아 날아가는 듯하였다.

‘두고 보자. 난 은지 너보다 더 행복한 여자가 될 거야. 반드시 잘난 남편을 만나고 옷 도 너보다 예쁜 걸로 해 입고 먹고 싶은 귤도 마음껏 먹고…….’

은지가 일등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렇게 학교를 결석해서라고 생각하니 속이 상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극빈한 학생은 농번기에 결석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희아 엄니 계슈!”

은지 엄마였다. 엄마에게 곗돈을 받으러 오셨다.

“아! 형님이유!”

엄마들은 형님, 동생 하면서 의가 좋은 편이었다. 마루에 올라서자 엄마는 찐 고구마와 식혜를 내왔다.

“좀 드세유.”

내가 은지 엄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면

“자는 어쩜 저렇게 혈색이 좋을고! 무엇이든지 잘 먹어서 좋겠네. 우리 은지는 동상도 잘 걸리고 감기는 빠지지 않고 잘 걸려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은지엄마는 사십이 넘어서 가진 늦둥이라서 은지가 약하다고 푸념하였다.

“별 걱정을 다 하쇼. 은지는 얼굴도 이쁘고 참하고 공부도 잘 하는디, 무슨 걱정이우. 우리 희아가 말괄량이 같아서 도리어 걱정이구먼요!”

“억척스러워서 잘 살겠어!”

“형님도! 계집애가 억척스러워서 무엇에 쓴당 가요!”

은지 엄마는 허리가 약간 기울어진 중늙은이였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삼십대 중반으로 아직은 젊었다. 나에게 언제나 맛있는 간식을 제공해 주셨고 내가 은지네 집에 자주 가는 기쁨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은지와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석류나무 그늘아래 평상에 나란히 배를 깔고 엎드려 학교 숙제를 하였다.

고추잠자리와 파리가 붕붕거렸고 텃밭에서는 상추와 쑥갓이 자라고 참외와 오이,가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우리 엄마는 땡볕에서 모내기로 허리를 펴고 싶어도 제대로 못 피며 힘든 노동을 하고 있을 때, 은지 엄마는 텃밭에서 김도 메고 꽃밭도 가꾸는 것이 소일거리였다. 은지 엄마는 채마밭에서 대바구니에 참외를 가득 담아 가지고 평상에 올라오셔서 노랗고 작 익은 먹음직한 참외를 깍아서 접시에 담았다

“자! 달다. 어서 먹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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