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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과 개신교,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오피니언

기득권과 개신교, 그리고 4차 산업혁명

강대옥 논설주필 기자 입력 2018/10/16 13:52 수정 2018.10.18 15:07
강대옥 논설주필

 조선 전역에서 이루어진 천주교 박해, 중국 선교를 위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있던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은 개신교의 선교를 일본과 중국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1880년대 초반, 프랑스의 종교적 박해 금지를 조선이 수용하면서 일본인을 통해서 개신교를 알게 됐고 이수정이 첫 번째 세례자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본에 와 있는 선교사들에게 조선선교에 대한 미국 개신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매킨타이어와 로스 선교사의 중국과 접경지대에서의 조선인 전도, 성경 번역이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이수정의 요청으로 미국 감리교의 맥클레이와 장로교의 알렌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 개신교 진출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장로교 언더우드, 감리교 아펜젤러는 이수정과 함께 1885년 조선에 입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개신교 역사의 시작이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는 교회건축 형태, 신학, 예배형식, 복음성가 등이 미국 개신교의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개신교에서의 미국은 이상의 나라, 꿈의 나라, 선망의 나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해방정국에서 미국이 조선에 적용한 종교정책은 정교분리(국가 신도 폐지), 종교의 자유, 기독교 우대였다. 요약하면 미국 기독교의 절대적 우대정책이었다. 그 영향으로 서구 유럽 국가들의 개신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대신 미국 개신교의 한반도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이 발휘되었다. 미국 개신교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근본주의 신학과 교파교회의 형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미국에서 조차 극단주의적 근본주의로 배척받던 메이첸파를 비롯해 한국에 온 선교사들 중 대부분은 근본주의 신학을 추종하였고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뿌리라 할 수 있고 한국 개신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을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이승만으로 인하여 교회는 기회와 특권, 정치권력과 유착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하였다. 해방당시 10~15만으로 추정됐던 남한 개신교 신자 수는 1950년경에는 50만, 1955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제주 4.3사건, 여수 순천 반란 및 지리산 일원의 무력충돌에서 개신교는 서북청년단을 조직하여 무자비한 백색테러를 일삼았다. 이를 계기로 좌익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반공의 상징이 되었고 공산주의를 적그리스도로 묘사하고 선과 악의 결사항쟁으로 부각시켰다.

이는 북한에서 월남한 개신교의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과 한국을 세계적 반공투쟁의 전초로 만들려는 미국, 이승만 정부의 기독교국가 구상이 결합된 결과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까지 신설된 2,000개의 교회 중 거의 90%가 월남 기독교인들에 의해 건립되었고 월남한 목회자들이 이승만 정권의 비호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몰락했지만 독재 권력의 지배에 순응하면서 온갖 특혜를 유지하였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한경직, 김활란, 김장환 목사는 미국 지지를 받기위해 눈부신 활약을 했다. 김장환 목사는 반 유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설교와 강연, 베트남 파병 문제에서 파병군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자유의 십자으로 묘사하였다. 파병 찬성 입장과 함께 대대적인 환송예배는 한국 개신교의 독재정권에 대한 눈물겨운 헌신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와 1974년 엑스플로 기독교 세계복음화대회, 1980년 세계복음화 대성회를 위해 여의도광장을 무상으로 제공받았고 군 공병대와 군악대까지 지원받았다.

게다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전두환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었는데 독재정권은 이를 전국에 생중계하였다. 부정한 정권에 대한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면서 수많은 특혜를 누렸고, 이를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권력의 도움을 받아 좌익,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목사들의 비리가 다루어 졌다, 2000년 MBC PD수첩에서 ‘한국의 대형교회’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광림교회 등 대형교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으며 이 때 처음으로 교회세습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기득권 위협을 느낀 개신교는 더욱더 편향적인 정치적, 사상적 성향과 무조건적인 친미의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개신교는 최하위의 신뢰도를 주는 종교, 가장 부패한 종교집단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현재 개신교의 이미지를 가장 잘 인식시키는 이슈가 명성교회이다.

한국에서의 개신교는 긍정적 역할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개신교는 총체적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기득권과 권력에서 벗어나 종교의 근본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시대는 인간의 가치와 기계의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 개신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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