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최근 우리 사회의 대형교회들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은 지도자들의 사회적 물의와 부작용 때문인데 그들의 처신이 자초한 면이 크다. 세습이나 제왕적 목회 스타일, 기독교 사학의 설립자인 목사의 재정 횡령과 구속은 참으로 충격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교회재정의 남용과 성 문제 거기다가 친 정부적인 성향과 정치개입 등 세련되지 못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비판은 증폭되고 있다.
가장 부패했다는 정당들조차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랑을 받기 위하여 변화하고 있다. 공천제도의 투명성과 당의 지도자 특히 대선 후보들은 특정 정당를 떠나서 국민경선을 도입하고 모바일선거를 통하여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개인의 불법과 부정은 있는지 몰라도 적어도 제도는 민주적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제 교회도 그런 비판으로 부터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교회는 이제 단순히 예배만 보는 곳, 담임목사가 통치하는 곳이 아니다. 기독교 기관과 기독교 언론기관, 복지관, 각종 사업체 등 날로 증가하는 기독교 기반의 자본 확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대형교회들이 교회당 짓고 수양관과 묘지를 사고 그러고도 주체를 못하는 돈으로 방송국을 하거나 인수하고 빌딩을 짓고 투자를 하고 사업들을 한다. 그리고는 하나 같이 독립 법인체를 만든다. 거기는 교회의 제직회나 공동의회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높은 뜻 연합선교회, 다일공동체 등의 오너들은 힘든 목회는 은퇴를 했다고 하고는 멋대로 돌아다니며 웬만한 재산들은 벌써 다 빼돌려 놓았다. 그나마 형식적인 이사회라도 만들었다면 다행이지만 개인이 지배하는 위장 기관들이다.
그러니 이제 교회만 놓고 개혁을 말할 수 없다. 교회만 얘기할 때가 아니다. 기독교 기관과 기독교 학교의 '말뚝'들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주인도 없고 감시가 없는 신학대학의 교수나 직원들의 돈 잔치도 도가 넘었다. 60세가 되고 20년 이상 목회를 한 목사의 일반적인 연봉은 3천만 원 정도인데 교회서 모금을 해서 운영하는 기관의 40대 목사들은 5천만 원 이상을 받는다. 신학대학교수들도 연봉이 무려 1억 원대이다. 학생들과 부모들의 등골이 휜다.
대형교회는 교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들의 이익이 되면 듣고 아니면 그만이다. 여의도순복음도 그렇고 광성교회, 온누리, 높은 뜻 숭의교회 산하 지부(branch) 교회들은 말은 독립교회라고 하지만 이북노회(무지역 노회)들을 이용한다. 자체 법인을 만들었으니 머지않아 골치 아프고 간섭하는 교권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처럼 독립교회들이 나오고 교단의 위상은 축소될 것이다.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다.
그런 곳에는 예외 없이 강한 지도자, 카리스마와 성공주의 목회자가 있다. 섬김의 첫 사랑의 열정은 옛날 얘기다. 그런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많은 교인들로 인하여 바쁘고 할 일도 많다 그런데도 나서서 총회장을 하고 밖의 일들을 하는 게 사실은 짐이요 멍에일 수도 있는데 그 욕망의 전차는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것에서의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 교회도 교권도 명예도 그리고 금권도 세속의 권력도 모두 다 거머쥐려고 한다.
감리교회에서는 총회장 선거의 과열의 폐단을 없에기 위해서 전임(임기 4년) 감독제를 도입하였다. 감독 출마를 하려면 교회를 사임해야 한다. 그 외 다른 교단에서는 대형교회 목회자들 중 소수이기는 하지만 차분히 목회를 하기보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교회와 교인을 수단화하여 목표를 향하여 계획 목회를 하게 되니 양심적으로나 교회적으로는 사실 손해이다. 이런 사적 욕망을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나 교단은 희생을 당한다.
교회의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성경이 가르치는 지도자는 왕처럼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 주님도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 고 했다. 총회장은 섬기는 직책이며 종이라고는 하나 사실은 왕이다. 교회의 강단 위에서는 종처럼 보여지지만 부목사들과 밖에 나가서는 왕처럼 행세한다. 섬기려면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세워주어야 하는 데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자기가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요즘은 대놓고 자랑한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회의 성장과 발전으로 인하여 물질적인 축복과 풍요를 누리는 목회의 성공자, 파벌의 승리자의 말로는 항상 조용히 끝나지 않는다. 세습이나 돈 문제, 성 문제, 비민주적인 운영으로 분쟁이 생기고 더구나 총회장이 되려고 밖으로 나돈다. 또 이 과정에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세속적인 방법을 통원한다. 이는 우리 교단의 선관위가 위법에 대한 벌칙의 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교회의 선거라고 보기는 너무 부끄럽다.
교회의 장로나 평신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부총회장 선거에는 누가?
예장 통합 101회 부총회장 선거에 나가는 이들이 속한 중부지역(대전, 충청남북 6개 노회와 이북 5개 노회)소속의 후보들이 출사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소속 노회에서의 추천을 받으면 그 윤곽이 확실해 질 전망이다. 한 언론기관에서는 안 해도 되는 부총회장 후보자들(최기학, 장창만, 김완식, 김진홍, 정헌교 목사)을 놓고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누구도 적임자가 아니다가 1위였다. 이제는 여론몰이로만으로는 큰 뜻을 이루기는 어려운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권력에 대한 집념 왜 그런가? 그 외에도 자기의 경력을 쌓기 위하여 모 신학대학의 총장으로 부임을 하면서 약속한 기부금을 내지 않아서 실없는 사람이 된 경우도 있다. 대형교회의 할 일 많은 목사가 군소교단 신학교도 아닌 유수한 지방 신학대학의 총장을 한다는 발상도 그렇고 이렇게 이름 내는 높은 자리와 직책을 좋아 하는 분이 부총회장이 되면 오죽이나 할까 하는 걱정들이다.
이런 방법으로 이력을 쌓고 친분을 쌓고 교회의 덩치를 키우고 하려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교인들에게는 종이 되라고 하면서 자기는 끊임없이 높아지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교단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총회의 상임부서와 특별부서의 위원회를 임명하기에 노른자 부서에 들어가려고 하는 많은 교권 주변의 인사들로부터 로비를 받는다. 얼마나 그것을 사모하는지 5년을 기다리면서 재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부총회장 선거의 타락상은 사실 그 후보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총체적으로는 현 교단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려고 현재는 후보자가 외부인을 초청하거나 초청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법이 교묘해지고 단가만 높아졌다고 한다. 위험수당이 붙는 모양이다. 선거운동은 기본적으로 마음을 얻어야 하는 데 마음을 살 총대들이 부패했으니 돈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선거는 한 번 기대를 걸어보자는 의견들이다. 선관위의 강한 의지와 언론들의 감시 그리고 처음으로 도입하는 합동 토론회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 총대들만이 독점하는 부총회장의 선거권을 전국 노회원들에게 주는 선거법이 연구되어 제안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총대 휴식년 혹은 안식년제를 도입하여 노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자기 노회의 표를 갖고 정치를 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몰론 그래도 총회장이 꿈인 사람은 무슨 방법을 내서 모든 목회와 인생을 오직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일정에 의하여 살아갈 것이다. 전 총회장이나 총회에 힘이 있는 사람들, 각 지역과 파벌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교단에서 서로 협력하며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로 대상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끊어내려면 총대 물갈이를 해야 한다. 만년 총대가 노회의 이익을 지켜준다고 하는 데 노회를 이용하여 발판으로 삼아 자기 정치만 할 뿐이다.
이 잘못된 방법을 끊지 못해 관련 비용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헌금을 하게 하거나 교회를 담보로 대출(역대 부총회장 교회들이 선거 전후로 은행 거래)을 받은 교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는 자신들은 막상 자기 돈을 드리고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자기의 것을 드려서까지 할 일도 아니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돈 즉 교회의 돈, 신자들의 돈으로만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일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주의 일을 하나님이 가장 싫 하시는 재물로 의지하여 하는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누가 적임자?
이미 오래전부터 출사 의사를 밝힌 청주의 정헌교 목사(강서교회)와 용천노회 최기학 목사(상현교회)로 보인다. 이외 같은 충청권에 김완식 목사와 김진홍 목사, 같은 이북노회 평양노회의 장창만 목사의 얘기도 있으나 아직은 그렇게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있지 않아서 큰 변수가 없는 한 둘의 구도로 갈 것으로 보인다.
누가 총대들의 마음을 감동을 주고 이 시기 택함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선거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보여 누구도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고 보여지는데 근자의 투표결과 1. 2위의 표차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후보들 김진홍목사(충북노회) 정헌교목사(충청노회) 최기학목사(용천노회) 모두 적임자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후보나 자신이 해야 하다고 하는 후보보다 총회나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헌교목사는 학부출신의 표가 갈리고, 김정서 총회장시절 회록서기를 하였기 때문에 연금과 관련하여 반김정서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총회에서 기소된 김정서 봐주기로 나아갈 수 있어 김정서목사와의 학연, 지연성이 불리할 것이다. 김정서 목사를 밟고 갈 카드가 필요하다. 또한 주요보직경험의 부재도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기학 목사는 현재 총회장이 호남출신인데다가 호남출신들이 총회의 주요 보직을 독점하는 가운데 또 다른 호남출신이 부총회장에 연이어 되는 것에 반호남정서를 갖고 있는 총대들의 설득을 받아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총회장은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행정적 경험, 합리적 판단력, 예리한 결단력, 균형잡힌 신학감각, 논리성, 개혁성, 리더십 등이 있어야 한다. 총회장이 되는 것은 300만 명 도시 국가의 수장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고, 국가의 맹종보다는 견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연금, 교리, 연합단체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해결사적인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연륜과 비젼을 보여 줄 수 있는 장창만목사(평양노회)다 라고 하고 싶다. 장창만목사는 두루 교회행정과 사회복지도 왕성히 해 왔다.
서두에 교회가 안고 있는 패단과 잘 못 될 수있는 행정도 바로 잡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본다. 학부출신 표의 갈라짐과 평양노회 출신의 두 명의 총회장 배출, 충청권의 연대, 신총협의 동향을 극복해야 하지만, 정헌교목사는 학부출신의 표 갈라짐, 김정서목사와의 학연. 지연관계를 극복해야 하고, 최기학 목사는 채영남 총회장 이후 다시 호남이라는 지역성과 총회 주요보직경험의 부재라는 단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장창만(62)목사는 2004년 5월 설립 된 등대복지회 3대 이사장직으로 취임하여, 북한 어린이와 장애우 등 북한사회 소외계층을 돌보며, 아프리카 말라위의 말라리아 퇴치를 비롯한 필리핀 나보타스에 빈민촌을 위한 섬김으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오고 있다.
장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멕코믹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30년을 평양노회 안에서 섬기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장, 총회연금재단 이사장, 총회신학교육부장, 총회 서기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평양노회의 분립노회장으로 노회를 섬기며 올해로 31년째 1986년 10월 부임 후 록원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