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K-팝 스타 BTS 유엔총회 영어 연설
한국의 세계적인 음악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금년 지난 9월 24일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룹의 리더 RM은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LOVE MYSELF''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유창한 영어로다.
세계는 감동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실시간으로 BTS의 유엔연설을 특별히 다뤘다. <굿모닝 아메리카> <지미 팰런쇼> 등 인기 토크쇼들은 앞 다퉈 BTS를 초대했다. 미국 ABC 뉴스는 다음과 같은 자막을 내보내며 실황을 생중계했다.
‘K-POP BAND SPEAKS AT UN. International phenomenon BTS advocates for global youth program(K-팝 밴드 유엔 연설, 세계적 스타그룹 BTS 글로벌 청년 프로젝트 앞장)’ 그야말로 “한국의 작은 마을에서 온 아티스트”가 세계의 젊은 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준 것이다.
UN이라는 무대에서 만약 BTS가 영어가 서툴러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면 어땠을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BTS에게 ‘영어를 할 수 없다면’이란 그야말로 가정일 뿐이다. 이전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였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역시 유엔에서 유창하게 연설을 해 세계를 감동시킨 적도 있다.
‘갈이천정(渴而穿井)’이란 말이 있다.
‘일을 미리 준비하여 두지 않고 있으면 이미 때가 늦어서 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영어는 바로 이와 같다. 영어를 미리 닦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어 있다. 지금 힘들다고 영어를 경시하고 다른 것에만 매진하여 세월을 보낸 후에 그때 가서 놓친 고기가 더 크게 보인들 떠나간 버스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어를 익혀야 하는 것은 영어가 미국이나 영국의 말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곧 국제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첨단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코스모폴리탄들의 생활언어이기 때문이다.
전에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세계 속 대한민국’의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가 국토 면적으로 치면 세계 108위에 인구증가율은 세계 204위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수출 규모는 세계 7위, 외환 보유액은 세계 6위다.
이 세계 속 대한민국의 순위는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크지 않은 국토와 많지 낮은 인구증가율을 가진 한국이 생존해 가려면 세계를 껴안아야 한다. 그래서 세계로 진출해 구석구석 누비고 다닐 수밖에 없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은 암울할 따름이다.
이런데도 아직 영어의 중요성을 얘기하면 사대주의나 친미주의를 들먹이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글로벌 시대에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선언하는 셈이다. 이미 세계 표준어가 되어 있는 영어를 나무란다면 컴퓨터의 기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어떻게 쓰는가?
영어에 ‘tunnel vision' 이란 말이 있다. 터널시야라는 의미다. 긴 터널을 들어가서 보면 주변은 깜깜하고 저 멀리 보이는 출구가 보이는 세상의 전부다. 반원형 터널 끝 그 이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말은 “시야가 짧은’, ‘듣는 게 좁은’, ‘생각이 고루한’이라는 뜻이다. 곧 종합판단능력은 떨어지고 눈앞의 상황만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 “방안퉁수”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돼
이뿐 아니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이관규천(以管窺天)’이란 말도 있다. ‘좁은 관을 통해 하늘을 올려본다’는 의미다. 그렇게 하면 드넓은 하늘이 좁은 관의 범위만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좁은 틀에 안주하여 시야가 좁고 사고가 편협한 사람을 비웃는 말이다.
현대처럼 하루가 달리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외국어라 치부하며 멀리 한다면 터널 안이나 좁은 관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방안퉁수”가 드넓은 바깥세계를 내다보는 것과 같다.
글로벌은 일방적으로 외국의 문물과 제도를 무조건 받아들여 따르고 좇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한다면 그냥 영국이나 미국의 정신을 체화한다는 게 아니다. 언어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고 세계 강국에 빌 붇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리더인 제이 워커는 “영어는 미국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세계가 끌어당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어를 단지 미국과 영국의 상징 언어로 인식한다면, 이것은 넓고 넓은 글로벌 세상의 형편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영어를 통해 세계를 알아야 하고 우리를 세계에 내놓아야 한다. 싫든 좋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환경이 되어있다. 말하자면 외국의 좋은 사례나 규범, 형식들을 우리의 환경과 여건에 맞게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 역사, 전통을 세계무대에 알려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촌각을 다투는 세상에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당당하게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영어를 알아야하고, 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영어는 글로벌 지식경제 시대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고 있다. 그런 마당에 콩이야 팥이야 하며 폐쇄냐 개방이냐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사회 전체를 개방해야 한다.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영어다.
◇ 공식 외교문서에서도 번역의 오류라니···
영어 능력의 중요성은 우리의 값진 문화와 가치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에도 있다. 글로벌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 즉 양방향 교류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우리의 자랑스런 한류는 바로 글로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우리 것도 내다 선보이고 시장에 팔아야 한다.
우리 문화를 해외에 전파하는 영어가 다르고 외국 문물을 숭배할까봐 두려워하는 영어가 다른 게 아니다. 요는 영어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자세다. 태도가 분명하다면 영어를 배우는데 우리의 문화적 주체성이나 정체성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영어 배우는 것을 경시한다면 이는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폐쇄와 고립을 스스로 자초하는 길이다.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가 세계를 향해 왕따가 되겠소 하고 외치는 격이다. 전에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영어의 원 약정문을 우리말로 공식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부 발표대로 296건의 오류가 나와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글로벌 시대에 이 얼마나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창피한 일인가? 이뿐만 아니다. 한 페루 FTA 협정문 한글본에서도 145건의 번역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다른 국제적인 공식 문건도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싶다.
국가 간의 공식문서에 번역의 오류가 많았다는 것은 한편으로 국가 차원의 영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온 국민이 영어에 몰입해 있는 나라치고는 정말 영어의 국제 경쟁력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의 국가 경쟁력은 곧바로 글로벌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가 활동의 무대가 되어야 하는 글로벌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