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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보고, 교회 를 생각해 본다...
사회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교회 를 생각해 본다.

[시사] 김현태 기자 입력 2016/03/14 08:50 수정 2017.11.20 23:15
[영화 즐기기] 스포트라이트 실화 기반한 줄거리

실화를 바탕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종교의 어두운 내부를 그린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2016년 아카데미가 선택한것에 주목된다.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최강의 팀 스포트라이트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기로 한다.
하지만 꽤나 많은 지지층을 얻고있는 종교를 건들이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스포트라이트 팀이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추악한 진실은 숨기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게 되고 성스러운 이름 속에 숨겨진 타락한 성직자 그리고 아동학대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던 그들의 시도 이러한 반발 세력에 맞서서 스포트라이트 팀은 사건의 진실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까?

그러나 거대한 종교권력이 가로막고 있는 장벽도 진실을 밝히려는 끈질긴 기자들 앞에 무너졌다. 

‘기자정신이란 무엇인가? 기자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줬다.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솔직한 고백을 강요했다.

그동안 글을 써오면서 수많은 ‘자기검열’을 했다.

특히 정치권력, 종교권력 앞에 무기력했다.

이념이 다른 발행인을 헤아려야 했다.

용기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동안 내 자신이 쓰고 싶었던 글을 쓰지 못했다.

사과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싶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을 냉정히 지켜보며 엄청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지나첬고, 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구조됐고, 304명이 사망ㆍ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아 전 국민에게 충격과 침통을 안겼다. 그러나 이 또한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세계최대 장로교회라는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강북제일교회, 구리두레교회 지금까지는 가톨릭 보스턴교구보다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위 사건을 지켜보며 몇몇 언론과 연합통신넷인 본지가 조금 다루고 말았다.

그나마 몇몇 교회 측으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아야 했다.

한국교회의 부패가 결국 이단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박형택 대표회장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오늘날 이단이 많아지는 데는 한국교회의 부패와 세속화, 목회자의 타락으로 인한 책임이 크다”며 “한국교회의 부패가 결국 이단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단단체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한국교회가 타락했다’는 말인데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대며 부패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 결국 이단에 빠지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단들이 한국교회를 비판할 때, 이를 반박하고 부인할 정도로 한국교회가 깨끗하다면 이단에 빠지는 신도들을 어느정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보스턴 글로브’ 편집장 ‘마틴 바론’의 기자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 로빈슨’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

비록 보도통제에 굴복했던 과거가 있지만. 기자 여러분의 팀워크가 부럽다. 

특별히 가톨릭 신자였던 할머니와 갈등을 겪는 ‘사샤 파이퍼’의 아픔에 공감한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의 관전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배경이 되는 2001년은 9 · 11 테러로 기억되는 해이지만, 언론 쪽에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신문의 발행부수와 독자가 감소하고, 기자 감원이 본격화됐던 시기이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위기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시기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영화의 주인공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의 활약상으로 빠져들어볼까?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이 끔찍하고 추악한 사건을 끝까지 파헤쳤던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전문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감독인 토마스 맥카시는 '놀랍게도' 극적인 장치를 끌어들여 영화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매혹적인 전략을 쓰기보다 한걸음 떨어져서 담담한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애써 강조한다거나 언론의 역할을 교훈적으로 설파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끝내 '영웅'을 만들고야마는 그 지겨운 패턴을 반복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그저 담담하고 묵묵하게, 사건의 실체와 감춰진 진실에 접근하는 언론인들의 취재와 보도과정을 그려낸다. 오히려 그 기조가 언론의 직업윤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강한 전율을 선사한다. 


영화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물론 그 대답이 어렵지는 않다. 영화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사회의 구성원들끼리 쉬쉬하고 있는 문제, 조직적인 은폐가 이뤄지고 있는 문제, '(가톨릭) 교회'라고 하는 종교 권력(그것이 권력이라면 반드시 '종교'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의 치부를 건드리는 문제를 파헤치고, 사람들 앞에 오로지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에서 가장 '저릿'했던 장면은 따로 있다. <보스턴 글로브>에 새롭게 부임한 신임 국장 마티(리브 슈라이버)는 하나의 칼럼에 주목한다. 30년 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여 명의 아이들이 사제에게 성추했을 당했고, 종교계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던 정황이 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마티는 스포트라이트 팀에 이를 집중취재할 것을 지시한다. 

사건의 실체 일부가 드러났을 때, 마티는 성직자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라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한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들을 숱하게 봐왔던 터라 이런 보도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몰두하는 이성적인 접근이 언론의 역할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적절한 타협'의 유혹은 얼마나 달콤하던가! 

 우린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 김탁환, 『목격자들』 중에서 -

 끈질긴 취재 끝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마크(마크 러팔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보도를 하자고 주장한다. 더럽고 추악한 성직자의 민낯, 교회의 민낯을 알아버린 기자의 분노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의 편집자 월터(마이클 키튼)는 이를 막아선다. 지체하면 다른 언론에서 먼저 터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교회 측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하고, 완벽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결단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돋보였던 것은 영화 속에 종교 권력이 두려워 취재에 나서지 않았던 비겁했던 언론의 자기 반성이 담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의 월터의 고백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전 세계 64개 시상식에서 215개 부문에 수상 및 노미네이트 돼 화제를 모았다. 또,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드러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포트라이트>는 '종이신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한 인터넷 뉴스는 '발화성(發火性)'이 강하다. 그만큼 '전파성(傳播性)'도 크고, 그런 만큼 '신속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빨리, 더 빨리, 가장 빨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인터넷 뉴스의 특성은 너무 쉽게 '정확성'을 배제하기도 한다. 휘발성(揮發性)은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심층취재(혹은 기획취재)'에 부적합하다. 종이신문의 힘은 거기에 있다. 길게는 몇 달씩 매달릴 수 있는 '끈적함' 말이다. 실제로 취재부터 보도까지 약 8개월이 소요됐던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의 끈기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 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언론인의 '(흔히 '곤조'라고 표현되는) 근성'을 보여준다. 

(종교든 정치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권력의 비호와 용인, 온갖 관련자들의 조직적 은폐.. 사회적 부조리에 접근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은데(사실상 불가능한데), 이를 보도하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어려움이 오히려 언론의 필요성, 더 엄밀하게는 '종이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오로지 진실만을 탐구하는 언론이라고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허탈감과 씁쓸함을 가득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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