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형식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로 중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라는 특이한 제목의 미국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파커 포시와 멜빌 푸포가 주연한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이 로맨스 영화는 뉴욕에서 잘 나가는,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을 아직 만나지 못한 30대 중반 캐리어 우먼의 이야기를 다뤘다.
늘 연애 상대를 찾으려고 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주인공 노라가 어느 날 줄리앙이라는 프랑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때 프랑스 사람인 줄리앙은 영어를 하는 건지, 불어를 하는 건지 여하튼 서툰 영어를 써가며 노라에게 호감을 표한다.
“Please say it in broken English!" “서툴러도 괜찮아요. 영어로 말하세요!”
사랑을 전할 때는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느낌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곧 텔레파시로 교감한다. 그런데 서툰 영어인들, 엉터리 영어인들 어떠랴. 어떻게 말해도 그 안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는 것을….
프랑스인인 줄리앙은 서툰 영어로 주인공 노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내보이지만 진정 원어민들은 사랑의 밀어를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 표현들을 알아보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다.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재미로 하는 것이 좋으니까 말이다.
◇ 셰익스피어는 현대영어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
세계에서 어휘가 가장 풍부한 언어는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어휘, 즉 단어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네스북』에 따르면 500만 단어를 갖고 있는 그리스어가 가장 단어수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영어가 가장 어휘가 풍부하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스퍼드사전』에는 60만 개 이상의 표제어가 있고, 『웹스터인터내셔널사전』에는 47만5,000개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으로 언어, 특히 영어 사용의 흐름을 추적 분석하는 미국의 전문회사인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Global Language Monitor)사는 2009년 6월 10일부로 영어 단어는 100만 개 문턱을 넘어섰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영어 단어 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잡기가 어려운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영어의 단어와 스펠링을 검증할 학술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매년 약 2만 5,000개씩이나 되는 단어가 새로 만들어 지거나 제3국의 언어로부터 차입되고 있어서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말과 지역 방언이나 사투리를 영어에 포함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옥스퍼드사전』을 발행하는 측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어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단어가 있을까? 이 질문에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는 현명한 답변은 없다. 그것은 실제로 단어라는 개념을 어디에 두어 어휘 수를 계산할까를 결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 역사를 통해 영어 단어가 증가하는 데 획기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였다. 현대 미국의 지식층이 보통 1만 5,000천 개의 어휘를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셰익스피어는 그보다 두 배나 많은 3만 개 정도의 어휘를 알았다고 한다. 물론 그가 새로 만든 단어들이 많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기존의 명사를 동사로 쓰거나, 동사를 형용사로 쓰거나, 접두사나 접미사를 덧붙이거나, 복합어를 만들거나, 또는 새로 단어를 만들어 내거나 한 것이 1,700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도 그때부터 사용되어 왔다. 그가 새롭게 만들어 낸 단어들의 예를 들어 본다.
generous, advertising, summit, blanket, luggage, negotiate, secure, critic, excitement, majestic, arouse, addition, olympian, champion….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초기 현대영어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어의 문법이나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았었다. 그러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들어와서 그의 문학작품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영어의 표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 중에는 셰익스피어가 신조한 단어나 구문들이 많이 있다. 초기에 현대영어는 문학작품을 통한 기록성 문어체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커뮤니케이션과 뉴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의사소통을 위한 구어체 양식으로 변화되어 왔다.
◇ ‘한국어냐’, ‘영어냐’ 의 이분법은 무의미하다
이렇게 어휘가 풍부한 영어는 과학, 의학, 경영, 기술, 법률 등 전문 분야에 따라 쓰임새가 세분화 되어 있다. 학문이나 실물 분야에 있어 서양권의 체계는 우리 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는 서방 문물이 유입되면서 그들이 쓰는 영어의 새로운 단어를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만 봐도 그렇다. 인터넷, 컴퓨터, 프린터, 모뎀, 키보드, 드라이브, 프로그램, 디스켓, 마우스, 잉크, 모니터, 커서, USB 등등…. 이런 용어들은 한국어로 대체할 만한 마땅한 말이 없다. 예전에 컴퓨터 용어를 한글화 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으나 오히려 언어생활에 혼란만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시됐었다.
국어연구원에서 ‘컴퓨터’를 ‘셈틀’이나 ‘프로그램’을 ‘풀그림’ 등으로 해서 순수 우리말 대체어를 만들었지만 굳이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영어의 우리말 대체어를 만든다 해도 절대 다수가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존재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를 ‘다중매체’로, ‘키보드’를 ‘글자판’으로 하는 예처럼 한글 대체어가 다소 익숙한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그림상자’나, ‘라디오’를 ‘소리전파기’로, ‘인터넷’을 ‘다중통신망’으로, ‘커서’를 ‘지시표’로, ‘잉크’를 ‘색물’ 등으로 한글화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제 영어를 한국어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영어가 그야말로 ‘외국어’(外國語), 즉 ‘다른 나라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9세기적 관점이다.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국제어’(國際語)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말하자면 영어는 이미 모든 외국어를 초월하는 국제 공통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어의 감성은 어느 언어보다도 뛰어나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푸르죽죽하다‘. 이에 비해 영어에서도 색감에 따라 ’marine blue', 'ultra marine', 'cobalt blue', 'indigo' 등으로 나뉘어 있다. 모든 언어는 그 나름의 문화적 특징을 담고 있다. 미개인들이 쓰는 언어는 비록 단어 수는 적더라도 그들의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연중 눈 속에 파묻혀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에 따라 눈을 지칭하는 단어만도 2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어가 우월하다 영어가 우월하다 하고 절대 비교를 할 일이 아니다. 한국인에게는 당연히 한국어가 최고이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가 단연 최고다. 단지 글로벌 환경에서 세계를 상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 그 중심에 있는 언어가 영어이다 보니 그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한다고 해서 한국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람에게 영어와 한국어 중에서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말할 것도 없이 한국어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가는 한국 사람에게 두 가지 언어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하면 그때는 영어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상황과 여건에 따라 한국어와 영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