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塵山)
《참전계경(參佺戒經)》제34사(事)는 <진산(塵山)>입니다. 한마디로 티끌모아 태산(泰山)이라는 말입니다. 진(塵)은 티끌이라는 뜻이니까 진산이란 티끌이 모여 산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진(塵)은 티끌이니, 티끌이 바람을 따라 산기슭에 쌓이기를 오랜 세월동안 하면 마침내 하나의 산을 이루게 되지요.
이와 같이 지극히 미세한 먼지로, 지극히 큰 언덕을 이루는 것은 바람이 쉬지 않고 티끌을 모아 옴으로써 가능합니다. 정성(精誠)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정성을 쉬지 않는다면, 가히 정성의 산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이루는 힘은 간절한 사람의 의지입니다. 너무나 간절하여 하늘과 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의지는 마침내 기적을 만듭니다.
진산이란 기술이든, 사업이든, 수행이든 그 과정을 꾸준히 실행하였을 때만이 비로소 어느 시점에 결실을 얻게 됨을 뜻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태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동네 뒷동산에서 티끌을 모은다면 그 티끌의 최종 목표는 동네 야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백두산을 찾아 그 산의 티끌을 모은다면 그 티끌의 최종 목표는 태산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태산이란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웅장한 포부와 원대하지만 세밀한 계획으로 세상의 이치를 먼저 배우고, 그에 따라 원리, 섭리, 순리가 무엇인지 배워 정성을 다했을 때만이 비로소 태산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원불교의 창립정신은 <이소성대(以小成大)> <일심합력(一心合力)> <사무여한(死無餘恨)>입니다. 이소성대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큰일을 이루는 것이고, 일심합력은 구성원 무두가 합심합력하자는 것이며, 사무여한은 이 회상(會上)을 위해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원불교는 그야말로 맨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종교입니다.
그런 원불교가 불과 100년 만에 한국 4대 종교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전 세계에 그 법을 전파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위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진산! 티끌모아 태산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의 수행도 마찬 가지입니다.
“원불교 교도(敎徒)들은 남자는 산(山), 여자는 타원(陀圓)이란 법호(法號)를 받습니다. 법호란 적어도 입교 후 최소한 20년 이상 열심히 적공(積功)하여 진리를 깨친 사람에게 내리는 명예로운 법력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대종경(大宗經)》44장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생각나는 즉시로 초범(超凡) 월성(越聖)의 큰 지혜를 얻으려 하나 그것은 크게 어긋난 생각이라, 저 큰 바다의 물도 작은 방울 물이 합하여 이룬 것이요, 산야의 대지도 작은 먼지의 합한 것이며, 제불(諸佛) 제성(諸聖)의 대과(大果)를 이룬 것도 형상 없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 적공(積功)을 합하여 이룬 것이니, 큰 공부에 뜻하고 큰일을 착수한 사람은 먼저 마땅히 작은 일부터 공을 쌓기 시작하여야 되느니라.」
우리가 실제로 매주 1000원부터 시작해 한 주에 1000원씩 늘리면서 52주간, 1년을 모으면 그 저축액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까 첫 주엔 천원, 그 다음 주엔 2천 원 이런 식으로 매주 천 원씩 저축액을 늘려간다는 것이지요. 그래봐야 천 원씩인데, 얼마나 모일까요? 무려 137만 8000원이나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 아닌 가요!
이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불필요하게 나가는 지출을 줄여서 태산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신앙과 수행도 마찬 가지입니다. 제가 처음《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하여 뜻을 세우고 부터는 나름대로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정진을 하였습니다.
첫째, 법회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매주 돌아오는 법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성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35년 동안 한 번도 법회에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외국엘 가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도 교당을 찾아 저는 법회를 보았습니다.
둘째, 쉼 없는 기도정성을 올렸습니다.
입교한 그 해부터 시작한 100일기도에 10년간 한 번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간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성인 것입니다. 정성이야말로 부처이고 신(神)인 것이지요.
셋째,《원불교 전서》의 봉독(奉讀)입니다.
‘만고희유(萬古稀有)의 대법보(大法寶)’라 일컬어지는《원불교 전서》는 몇 번 읽어보고 버릴 경전이 아니었습니다. 이 전서 안에 진리가 있고, 인생이 있으며, 도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전서 읽기를 1년에 10번 씩 읽어 30여 년 간 303번을 봉독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몇 년 전에 오른 쪽 눈이 잘 보이질 않아 지금은 읽기를 중지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넷째, 여러 단체에 대한 봉사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원불교의 각종 단체에 온갖 열정을 불살라 왔습니다. <원불교 청운회> <보은 동산회> <사회복지법인 청운보은동산> <원불교 문인협회> <원불교 모려회> 등등의 단체에 물불 모르고 뛰어 모두 활성화를 이룩해 냈습니다.
다섯째, 덕화만발의 세상을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웁니다.
카페 [덕화만발]을 개설한지 꼭 10년입니다. 이 10년 동안 오늘 현재 2371 꼭지의 <덕화만발>을 써 전 세계로 보냈습니다. 이제 전 세계 수만 명의 독자와 동지들이 저와 뜻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덕화만발 산하에 <덕인회>와 <덕화아카데미> 두 단체가 목하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마 이 정도로는 정성의 태산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일직 심 그대로 달려 왔습니다. 아직 이루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은 할 수 없이 내생에 다시 실행해 마침내는 <진산>을 이루고 말 것입니다.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1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