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이인권 대표 문화시론] 말로만 공정인사..낙하산은 언제 ..
오피니언

[이인권 대표 문화시론] 말로만 공정인사..낙하산은 언제 접힐까?

이인권 논설위원장 기자 leeingweon@hanmail.net 입력 2018/11/12 08:57 수정 2018.11.12 10:09
'말은 능력인사, 행동은 정실인사의 뿌리 깊은 관행 혁신 절실'
▲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영어에 'Jobs for the boys'라는 말이 있다. 굳이 우리말 표현으로 담아내자면 ‘자기사람 챙기기’라 할 수 있다. 좀 더 시쳇말로 하면 ‘낙하산 인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영국의 콜린스영어사전(CED)은 '자격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특정 직책에 임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표현에서 'the boys'라는 말은 '공통의 이익과 배경을 나누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뜻한다. 원래 이 말은 영국의 계급제도 하에서 특정 학연, 혈연, 지연 등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의 사회적 결속을 의미하는 'old boys network'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인사행정은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메리트 시스템’(merit system)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간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어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공부문은 더 엄정하게 전문역량과 능률성을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어디에서나 당파적인 정실이 인사를 좌우하는 ‘엽관제’(spoils system)가 횡행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1855년, 미국에서는 1883년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를 위해 메리트 시스템이 제도화 되었다. 이후 19세기 후반 현대사회로 오면서 이 제도는 전가의보도(傳家寶刀)처럼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공공분야에서는 여전히 엽관제 같은 낙하산 인사가 뿌리 깊은 관행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공모제를 폐지하고 떳떳이 임명제나 특채제도로 하던지 않고 공직에 “무늬”만 갖춘 공개 모집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갈수록 이 같은 병폐가 고착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선거에서 공(功)의 유무를 따져 잘못된 논공행상을 펼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임기가 남아있는 기존의 보임자들을 재신임을 빌미로 중도 하차시키고 있다. 그리고는 원칙 없이 정파적 정실관계와 개인적 호불호로 물갈이 보은인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인사가 만사’니 ‘공정한 인사’를 공언하지만 그것은 교과서적 원론일 뿐 선거에서의 승자에 의한 전리품 나누기식 낙하산 인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승자독식’의 공식이다. 실질적으로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이 담보된 합리적인 인사 원칙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를 거슬러 조선시대 정조는 필요한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하는 ‘공선’(公選) 정책을 실시했다. 그 원칙은 바로 ‘입현무방’(立賢無方) 곧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데 있어 친소관계나 정실에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의 군웅 중 한 사람인 조조는 인재등용 시 ‘유재시용’(唯才是用)을 기본으로 삼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을 기용 한다’는 인사경영 원칙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근각지를 두루 살펴 오직 재능만을 추천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2017년, 한 국회 소수 정당이 ‘낙하산인사방지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고위 관료 청문회와 같이 공정한 인사에 대해 국회에서 신랄하게 따지면서도 정작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에는 뒷걸음치는 정치 권력자들의 양면성이다.

낙하산 인사라는 말 자체에는 ‘합당한 역량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특별한 연줄을 이용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기존의 조직 계통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를 낙하산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특별한 인재는 특별한 경로로도 추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분야의 능력이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미흡한 사람이 단순히 인맥으로 자리를 챙길 때이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한 조직에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권위를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조직이 바람직한 영향력을 통해 성과를 창출해야하는 절체절명의 환경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에릭 프롬의 말대로 ‘능력에 기초를 둔 합리적인 권위를 행사할 때 구성원들의 성장을 이뤄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공공 분야 정책 경영의 전문가로 남미 개발도상국들의 정치공학을 중점 연구 분석해 온 메릴리 그린들 박사는 저서 <Jobs for the Boys> (하바드대 출판. 2012)에서 ‘공직의 특혜 구조는 어디에서나 비민주적이고 부패 행태로 지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능력주의로의 혁신은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변통성을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 이것은 정의 민주가 구현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체계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누구나 이런 가치를 내세운다. 하지만 인사가 만사라고 했듯이 이제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일상적인 얘깃거리가 아닌 정말 어쩌다 한번 나오는 뉴스거리 정도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사회가 100% 완벽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