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덕산 김덕권칼럼] 독례(瀆禮)..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칼럼] 독례(瀆禮)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11/13 07:55 수정 2018.11.14 23:43
성공의 비결은 남을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독례(瀆禮)
《참전계경(參佺戒經)》제228사(事)는 <독례(瀆禮)>입니다. 여기서 독(瀆)은 ‘더러워지다.’라는 뜻이고, 예(禮)는 ‘예절(禮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독례’는 예절을 더럽히고 어지럽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독례’란 예의 없는 거친 행동으로 남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절’은 예의(禮義)와 범절(凡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독례란 예의범절을 모두 없애버리고 무시하는 패륜(悖倫)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모든 공손함의 표현이 바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것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식탁에서 팔꿈치를 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공간을 내어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삶을 인식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예’는 사람에 있어 몸의 손과 다리와 같으며 집의 문과 같은 것이지요. 손과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몸을 옮긴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방문을 열지 아니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예의 행함을 못하게 하고, 나쁜 풍속을 나누어 이루는 사람은 패륜아(悖倫兒)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앞날에 큰 화를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의범절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쁜 풍속을 이루려는 자는 저 타락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 속에서 큽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고 크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은 다 하려고 하는데 예절을 무시하고 사랑만 요구하니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절을 찾으면 누구나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보다는 조금 낮은 자리를 잡아라. 남으로부터 내려가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올라가라는 말을 듣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진리는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시고, 스스로 겸손한 자를 반드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신다.”

이와 같이 겸손(謙遜)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요소입니다. 자신을 살피고 낮추는 사람은 실수가 적고, 예절바른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습니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겸손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만남에서 끝인사를 하지 않고 헤어지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상대방에게 “그럼 또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오늘 말씀 정말 고마웠습니다. 큰 힘이 되겠습니다.” “바쁘신 데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같은 끝인사를 나누는 순간 상대방과 관계는 더욱 친밀해집니다. 끝인사 속에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끝인사는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인상, 좋은 이미지는 뒷모습이 좋아야 오래 갑니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성공의 씨앗은 첫인사보다 끝인사 때 뿌려집니다. 그리고 ‘남이 하면 불륜(不倫),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동정적이지만 남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말을 많이 하면 필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남이 말을 많이 하면 수다스럽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가 비싼 물건을 사면 필요해서라고 말하고, 남이 고급 물건을 사면 사치스럽다고 말하지요. 이처럼 우리 인간은 자신에게는 후하고 남에 대하여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주지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언제나 우리는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널 위해 기도해줄게’ ‘넌 항상 믿음직해’ ‘넌 잘 될 거야!’ ‘네가 내 곁에 있어서 참 좋아’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이 세상이 맑고 밝고 훈훈하게 될까요?

성공의 비결은 남을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줍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할 때 우리는 더욱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는 원래 시대와 국토를 따라 그 형식이 한결 같지 아니합니다. 예의 근본정신은 공경(恭敬)입니다. 따라서 예의 요지(要旨)는 널리 공경하고 공(公)을 존숭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를 밝히는데 만고에 바꾸지 아니할 예의 체(體)가 있고 수시로 변역(變易)할 예의 용(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의 체’를 바꾸면 그 법이 서지 못하고, ‘예의 용’을 수시로 변역할 줄 모르면 그 법이 쓰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습니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남을 위하려고 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화목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화목한 가운데 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덕산재(德山齋)> 거실에는 <네 덕, 내 탓>이라고 쓴 작은 패(牌)가 하나 있습니다. 이 말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원불교의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나온 것이지요. 만일 우리가 남을 보는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남을 향하여 하는 말을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다면 모든 잘못을 스스로 먼저 반성하게 되고 결코 남을 탓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 참회하고, 네 덕으로 돌려 감사할 수 있다면, 세상은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이 예절을 ‘독례’하지 않고 가정과 국가와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방법이 되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1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