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저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갑 질이나 당하는 약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노동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압박과 설음에서 슬피 우는 약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그들은 무법지대(無法地帶)에서 망나니의 춤을 추는 무법자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11월 13일 민노총이 최고수사기관인 대검찰청 청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14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노동법을 전면 개정하고 이른바 ‘재벌적폐’를 청산하라고 주장하면서 농성을 벌였다고 합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민주노총을 겨냥해 “대한민국은 민노총 주도의 ‘민노총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법지대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12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노총은 대화를 해서 뭐가 되는 데가 아니다. 항상 폭력적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한노총 출신의 김성태 원내대표나 민노총 출신의 홍영표 원내대표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GM 노조위원장 및 간부들의 집을 수사기관에서 압수수색할 때 화장실 천장에서 3억 원의 현찰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돈들은 채용비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노조는 귀족노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려 연봉이 1억 원에 육박하고, 그것도 모자라 고용세습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실정이라 합니다. 그런 민노총이 최근 석 달간 대검 이외에도 서울고용노동청, 대구고용노동청장실, 김천시장실, 한국잡월드 등, 일곱 곳에서 길게는 수 십일씩 점거 농성을 벌였고, 그중 세 곳에선 현재도 농성을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민노총이 촛불집회를 주도한 것뿐 아니라 많은 투쟁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생 근저에 민노총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노총을 지지하는 만큼 민노총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데 국민들이 우려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민주노총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 “많은 고민과 우려를 갖고 보고 있다”고 했을까요? 임 실장은 “노조라고 해서 과거처럼 약자일 수 없다”며 “민주노총이 여전히 노동자 권리를 보호해야 하겠지만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할 힘 있는 조직”이라고 말했습니다. 민노총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초법적 발상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원불교의 교리 중, 없어서는 못사는 큰 은혜를 <사은(四恩)>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천지은(天地恩)> <부모은(父母恩)> <동포은(同胞恩)> <법률은(法律恩)>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 네 가지 은혜를 원불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법률 은’은 인간의 행동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법률은 범위 내에 한정됨을 의미하지요.
원불교의 2대 종법 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의『한 울안 한 이치』에서 말씀하시기를 “도가의 법률은 6할은 진리에 맡기고, 4할은 인사로 처리하되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거나 아니면 드러나기를 기다려 처리하므로 퍽 지체되기는 하나 자기 죄를 어디다 원망할 데는 없다. 이것이 무서운 벌이니 미리 잘하게 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를 정치의 힘으로 풀려고 하지 말고 진리에 맡기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저지르면서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의는 법률, 즉 인간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법도 무법보다는 낫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최소한 악법도 공동체 질서 유지에는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법률에 보은(報恩)을 한다면, 우리 자신도 법률의 보호를 받아 갈수록 구속은 없어지고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각자의 인격도 향상되며 세상도 질서가 정연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더욱 발달하여, 다시없는 안락세계(安樂世界)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법률에 배은(背恩)을 한다면, 우리 자신도 법률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는 없어지고 구속을 받아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또한 각자의 인격도 타락되며, 세상도 질서가 문란하여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법이 없어도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살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악법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없어서는 살 수 없다면 그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을까요? 불경(佛經)을 읽는 것이 아무리 정의롭다고 해도 불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됩니다.
민노총이 아무리 목적이 좋고, 중요해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한 번 더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어느 성직자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서울 변두리의 개발 지구에 무허가 판자 집을 지어서 여러 사람에게 판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이 사실이 탄로가 나서 몇 년 전 법에 의해 구속을 당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민노총의 기본과제 제 10항 ‘공동결정에 기초한 경영참가 확대와 노동현장의 비민주적 요소 척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노동자의 개성과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부터 존중되어야 하며, 현장에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쉴 때 사회의 민주화도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법을 지킬 때 발전하는 것입니다. 법을 무시하고 법위에 군림한다면 어찌 민노총에서 바라는 사회의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민노총의 정의로운 활동이 준법으로 빛을 더할 때 우리 국민은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제 눈을 보지 못하고 거울이 제 자체를 비추지 못합니다. 민노총은 더 이상 무법지대에서 살면 안 됩니다.
이제 자신을 돌아보고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 못하면 민노총의 존립근거는 사라질지도 모를 우려가 드는 것은 저만의 걱정일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1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