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헌재의 60대 사법관료 출신들, 형법 시각으로 엄벌·중형주의”
ㆍ“박 대통령, 경제 안되는데 선거 이기려니 ‘종북 공세’ 펴는 것”
조국 서울대 교수(49)는 2012년 대선 직후 트위터를 끊고 묵언안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그는 지난 2년 동안 언론 노출을 줄이고 자신의 전공 분야인 형법 연구서 집필에 집중했다. 최근 출간된 <절제의 형법학>(박영사)이 그 결과물이다.
<절제의 형법학>은 현행 형법의 한계를 학술적으로 검토하는 책이다. 사형, 존속살해죄, 간통죄, 군인 간 합의동성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국가보안법상 이적성 문제, 교원 정치활동 금지,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등 그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개 주제들은 학술적으로는 물론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도 논쟁적인 것들이다.
지난 23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형법에서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형법을 엄벌주의·중형주의로부터 탈피시키고 불필요한 곳에 대한 형법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군에서 이성 간 성행위를 했다고 범죄가 되는 건 아닙니다. 징계를 받죠. 그런데 동성 간 성행위는 징계 대신 범죄로 처벌합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다른 나라에서는 민사로 처리하는데 한국에서는 범죄로 처벌합니다. 간통죄나 국가보안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엄벌주의 경향이 강해요.” 형법의 개입을 억지하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입법자가 법을 개정하거나 법원이 법 해석을 엄격하게 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은 민감한 문제에 손을 대서 표를 날리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법원의 법 해석도 법 자체가 변경되거나 폐기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 남은 것은 헌재의 위헌 결정인데, 현재의 헌재는 구성상 문제가 있다. “헌재가 60대 고위 사법관료 출신 엘리트의 시각으로 형법을 보기 때문에 엄벌·중형주의로 가는 겁니다. 헌법재판관의 연령·출신·학력·경험·성별·이념을 다양화해야 사회통합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는 최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헌재의 결정은 ‘법률적 논리의 비약’과 ‘사실관계 오류’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완전히 잘못된 결정입니다. 다수의견은 ‘RO=통진당’이라고 보는데 일부 당원 그룹의 행위가 문제라면 해산돼야 할 정당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차떼기’ 같은 문제가 생기면 ‘차떼기 정당’ 자체를 해산해야 하나요? 또 이 논리대로라면 당원 10만명이 RO의 꼭두각시였다는 건데 증거가 없어요. 둘째, 통진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 건 엄청난 비약입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생길 때 참여당 계열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민노당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빼고 현재의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넣었어요. 민노당 때보다 우경화한 강령입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헌재가 소수파를 보호하는 대신 강자 중의 강자인 공안파적 시각을 아주 강하게 드러냈어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박근혜 정부의 약점과 직결된 문제라고 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상인형 정치인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강경 공안보수형 정치인이에요. 경제민주화도 안되고 경제 살리기도 안되는데 선거는 이겨야 하잖아요. 그래서 ‘종북’ 공세를 펴는 겁니다. 2015년 내내 통진당 당원은 물론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새정치연합, 그리고 진보 지식인들을 ‘종북 위헌 세력’이나 ‘종북 동조 세력’이라고 하면서 몰아붙일 겁니다.”
헌재의 보충의견에는 “그들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 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조 교수는 보충의견을 읽고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더더욱 ‘쓸모 있는 바보’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식인으로서 앞장서서 발언하고 싸움으로써 다른 시민들이 생각하고 발언할 자유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내년에 해야 할 네 가지 일을 적어놓았다. 미국 정치학자 아이리스 영의 <정의, 그리고 차이의 정치학> 번역,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2004) 개정판 집필, <영미헌법연구> 집필 착수, <개입의 형법학> 집필 착수 등이다. <개입의 형법학>은 <절제의 형법학>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형법이 기업 범죄 등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한데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부문에 더 개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