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폭등에 ‘묵시적 갱신’줄어
2010년 93%서 작년 76%대로 하락
정부는 되레 공급목표치 늘려
“출구전략 고민시점” 목소리도
서민을 위한 대표적인 주거복지 프로그램인 ‘기존임대 전세임대’ 재계약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최초 계약기간(2년)만 살다가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전세임대는 세입자가 기존주택을 물색해 신청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 등 지방공사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고 입주대상자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제도다. 다세대ㆍ다가구는 물론 아파트, 오피스텔도 가능하다.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등에게 입주자격이 주어진다. 입주자격만 유지하면 최대 9회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20년까지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재계약 비율이 떨어지는 건 최근 1~2년 새 전셋값이 무섭게 오른 영향이 크다. 여기에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로 내놓길 꺼리는 것도 큰 이유다. 시장 상황이 전세임대 제도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세임대의 ‘출구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LH로부터 받은 전세임대 재계약 현황자료를 보면 지난해 재계약 시점이 도래한 4만6855가구 중 3만6024가구의계약 연장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약률은 76.9%이다. 이 수치는 매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10년 93.5%였던 재계약률은 ▷2011년 91.5% ▷2012년 94.2% ▷2013년 90.0%로 등락을 보이면서도 90% 언저리는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4년 80.5%로 떨어지더니 작년엔 7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특히 재계약이 이뤄진 4가지 유형(연장ㆍ증액ㆍ이전재계약ㆍ묵시적갱신) 가운데 ‘묵시적 갱신’ 재계약이 쪼그라들었다. 2010년엔 재계약된 건 가운데 46.0%가 묵시적 갱신이었지만 작년엔 단 한 건도 없었다. 묵시적 갱신은 집주인이 임대차 기간 만료 6개월~1개월 전까지 “집을 비워달라” 같은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기존과 같은 조건으로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간주하는 걸 뜻한다.
서울 강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LH나 SH에 전세임대로 세를 내준 집주인들이 예전에는 ‘굳이 뭘 또 올려’ 했다면 이제는 주변 전세값이 다 오르니까 자기만 안 올릴 수 없게 됐다. 세입자가 어렵사리 전세임대를 해준다는 집주인을 찾아도 재계약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전셋값을 올리든 월세를 추가하든 더 많은 임대료를 요구하는 집주인이 크게 늘면서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세입자들이 늘었다”며 “이 과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갈등이 불거져도 LH나 SH는 개입을 못한다”고 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기존주택 전세임대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해놓고 있다. 하지만 입주자 대상, 모집 과정, 계약을 해지되는 조건 등 주로 행정적 절차만 담겨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주인이 시세에 따라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것까지 개입할 순 없다”며 “지침에 언급되지 않은 세부적인 것들은 사업시행자(LHㆍ지방공사)들이 마련해 따를 순 있다”고 했다.
국토부는 올해 전세임대 공급 목표치를 3만1000가구로 잡았다. “내실보다 공급 규모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공임차형보다는 공공매입형이나 공공건설형으로 공급 방향을 트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임대 세입자들이 주로 찾는 소형 저가주택일수록 월세화 속도가 빨라 전세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세임대 제도의 취지와 최근 임대차시장의 구조, 흐름 사이의 괴리를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