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선이 지나가는 통로인 통신구(通信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지하 4m 깊이에 묻혀 있는 가로·높이 2m, 길이 150m 통신구 가운데 79m를 태우고, 약 10시간 만인 오후 9시26분께 완전히 꺼졌다.
이번 화재로 서울 중구 용산구 마포구 서대문구에 있는 KT 휴대전화 기지국 2833개가 작동을 멈췄으며, 가입자 21만5000명의 유선 인터넷 서비스도 중단되었고,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도 통신 장애를 겪었다.
갑자기 휴대전화와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되자 서울 중·서부 시민 수십만 명은 큰 혼란이 발생하여 서울 지하철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인근 공중전화에는 전화를 걸기 위해 5~10명씩 줄을 서기도 했다. 삼성페이 등 스마트폰 결제가 중단되자 사람들은 현금을 찾기 위해 편의점과 은행 현금인출기(ATM)에 몰렸으며, 카드 결제도 중단되어 상인들은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큰 혼란이 발생했다.
또한 KT 건물 2층에 위치한 인터넷 데이터 센터(IDC)가 피해를 보면서 이를 이용하던 인터넷 기업과 커뮤니티의 데이터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은 서버에 저장한 데이터가 사라졌다며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으며, 이번 화재가 '통신대란'은 물론 '서버 데이터 대란'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화재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치안·국방·의료 서비스에도 일부 장애를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서울 서대문 · 마포 · 용산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 일부 파출소의 112 신고 시스템, 일반 · 경비전화 통신망이 단절된 것으로 경찰청은 확인하였고,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용산경찰서는 복구가 완료됐지만, 서대문 · 마포경찰서 등은 여전히 일반전화 사용이 안 됐고, 일부 파출소는 112 신고 시스템도 복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이 현장에서 피의자 신원과 사건·수배 정보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스마트폰인 '폴리폰'도 화재 당일 7시간 먹통이 되었으며, 자칫하면 전화 신고가 지연돼 범죄를 막지 못하거나 피해가 커질 위험이 있었다.
소방청은 원래 사용하던 KT 망이 단절된 후 바로 예비통신망인 SK로 전환해 신고 접수 및 출동에 차질이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도 화재 이후 외부와 연결되는 일반전화가 마비됐다가 25일 오후 복구되었으며, KT 회선을 쓰는 일반전화는 화재로 불통이 됐다가 25일 오후 복구되었고, 군(軍) 내부 통신망 등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또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는 의료진 내부 연락망인 '콜 폰'이 한때 마비돼 병원 안내 방송으로 의료진끼리 연락을 취했으며, 25일 마포구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였으나 119에 연결이 되지 않아 사망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번 사고는 1994년 서울 종로5가와 대구 지하통신구 화재, 2000년 서울 여의도 전기통신 공동구 화재 등 통신 마비 사태를 수차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망 곳곳의 허점을 노출하였다. 만약 테러나 고의에 의한 화재였더라면 국가 사회안전망이 완전 무방비 상태로 뚫린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다.
사고원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KT아현지사 설계의 문제, 소방법 규정의 문제, 주요 국가기반시설 안전관리등급의 문제, 낙하산 인사의 문제, 시설근무인원수의 문제, 공공성을 등한시한 수익성과 효율성 추구의 문제 등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매번 대형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지적되었던 문제점이 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보고를 통해 점검한 통신기간시설에 대한 재난관리 상태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는 상식이하라고 볼 수 있다. 초기 화재진압시설 미비, 유사시백업라인이나 우회라인 미확보 뿐 아니라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등급지정 기준이나 관리에도 십수년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관리부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고의 수습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동아일보 취재진은 주말인 25일 오후 8시 보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대학로 KT혜화타워(옛 KT 혜화지사)를 방문했으나 아무 검문 절차 없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전국 인터넷 등 유무선 통신을 통합하는 거점인 혜화타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정 A등급 통신주요시설이며, 테러와 전쟁에 대비해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에 의해 각각 국가보안시설과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비상시 경찰이나 군대가 투입되는 국가중요시설인데도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앞으로 5G시대가 열리게 되면 자율주행차 기술은 물론 IoT(사물인터넷), 스마트 홈 서비스 등이 본격화한다. 즉 5G 시대에는 자동차, 건물, 가전기기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에 연결돼 스스로 작동하게 되는데, 예고 없는 통신 장애가 상상을 초월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재난이 우리의 통신재난대비 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제대로 재난대비체계를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다. 통신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이나 보안 취약점은 늘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물리적 안전이나 정보보안이 붕괴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 즉 초연결사회로 갈수록 더욱 안전과 보안은 중요하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통신산업은 수익성과 효율성 강화도 필요하지만 공공성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통신재난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효율적인 대응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며, 통신망 마비와 같은 ‘정보통신사고 행동요령’을 기관 및 국민에게 적합한 매뉴얼을 구축하여 비상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