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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갑질,. 심각한 사회..
사회

권력의 갑질,. 심각한 사회

정우성 기자 입력 2016/03/23 08:36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 아주 충격적인 이유 [주장] 여느 특권층의 '슈퍼갑질' 보다 고약,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잘 드러내주는 비유다. 그런데 이제 이 비유는 시대에 맞게 다시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권력은 '승용차를 기차 역사의 플랫폼까지 타고 들어갈 수 있게 한다'라고 말이다. 얼마나 권세와 위세가 대단하면 일반인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누리는 걸까. 이 정도면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모 장관의 '황제 주차' 정도는 애교로 봐 줄 만한 수준이다.

황교안 서울역 황교안 총리 의전차량 서울역 플랫폼까지 진입 논란의 사진

지난 20일 저녁 서울발 부산행 KTX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목격됐다. 승객들이 열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 위로 난데없이 승용차 두 대가 등장한 것이다.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황교안 총리였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검정색 에쿠스 차량 뒷좌석에서 한 남성이 내려 2호차 특실로 천천히 걸어갔는데 그가 황교안 국무총리였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일반인 탑승객들은 그가 열차에 오를 때까지 경호원의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코레일 관계자는 "황 총리가 탄 차량이 승강장까지 진입한 것이 사실이며, 서울역 내 일부 승강장에는 차량이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다급한 공무가 있었던 것일까. 촌각을 다투는 국가비상사태가 일어나기라도 했던 것일까. <한겨레>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황교안 총리의 일정에는 급히 움직여야 할 긴박한 상황은 없었다. 당일 그의 공식 일정은 비어 있었고 다음날 오전 국방과학연구소 방문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의 일정이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황 총리가 그날 저녁 긴박하게 '플랫폼 직행'을 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었던 셈이다.

황 총리는 시민들의 불편은 고려하지 않은 채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갔다.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쯤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총리라면 이 정도의 특권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황 총리의 '승용차 플랫폼 직행'이 '과잉의전'이라는 비판에 부딪힌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비뚤어진 특권의식, '갑질'의 사례들

 
▲ '땅콩리턴' 조현아, "죄송합니다"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201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보편적 상식을 허무는 황 총리의 행동은 '삐뚤어진 특권의식'의 발로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 '땅콩 부사장' 사건 등과 맥을 같이 한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 자신을 더 우월하다고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권을 성역화하고 이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못하는 계급적 사고에 매몰된 것 같다.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 역시 저들의 인식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이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동원해 일반 시민들이 상상하기 힘든 특권과 특혜를 마음껏 누렸다. 시민들이 한시적으로 부여한 권력을,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하면서까지)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일탈은 훨씬 심각하다. 특권의식에 더해 황 총리의 행동에서는 고위공직자의 기본적인 소양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이 기막힌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고한 신분제 사회인지를 환기시켜 주는 듯하다. 재물·권력·지위·출신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지고 강남과 강북,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와 농촌, 서울대와 지방대,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에 따라 삶의 등급이 매겨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라는 것은 한번 정해진 등급이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부와 권력은 대대로 세습되고, 가난과 빚도 지긋지긋하게 되물림된다. 한번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저이고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다.

먹고 살 방법이 없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작 라면과 땅콩, 주차 문제 때문에 '슈퍼 갑질'을 행사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기차역 플랫폼까지 승용차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모두 공고한 신분제가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들이다.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이 씁쓸한 이유

특권의식의 노예가 된 이 나라 특권층의 '슈퍼갑질' 앞에서 무너져 가는 것은 다수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다.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그는 법무부장관 출신의 총리로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직자이며,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사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성역화된 특권을 누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을 향해서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던 그가 법과 원칙 위에 군림한 것은 아닌가. 그런 면에서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은 여느 특권층의 '슈퍼갑질'보다 행태가 훨씬 더 고약하다.

우리 사회의 계급적 차별과 불평등의 적나라한 민낯과 치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라의 총리가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비난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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