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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좋은 죽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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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좋은 죽음(3)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12/12 23:36 수정 2018.12.14 08:48
49일 동안 가족들이 영가를 위해여 일천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남의 손을 빌려 천도를 받을 것이 아니라, 생전에 자신천도를 마치면 어떨 런지요?

좋은 죽음(3)

오늘은 어제에 이어 <좋은 죽음(3)>을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죽음(1)>에 많은 분들이 훌륭한 댓글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에 몇 분의 댓글과 함께 ‘우전 송원갑’ 선생께서 댓글에 달아주신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한(恨)>을 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구천을 헤매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에 대한 답을 해드리는 것으로 <좋은 죽음> 3회에 걸친 대단원(大團圓)의 막(幕)을 내립니다.

1. 박수마니박수박수님의 댓글입니다.

참 아름다워라! 우리 스승님의 세계는 죽음도 아름다운 죽음이군요! 평소 잠과 깸에 대한 인식을 삶과 죽음과 비교하고 늘 인식 하는 것, 황홀한 꿈의 세계를 꾸고 깸을 반복 그러다가 잠과 깸 깸과 잠 사이를 찰나로 연결합니다. 늘 들다 나옴을 맘으로 반복 실현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2. 원산 나환정님의 댓글입니다.

저의 임종 모델은 열반 6개월 전에 마을 사람과 가족에게 임종 예언을 하시고, 때가 되어 잠자면서 돌아 가셨다가, 증조할머니가 너무 슬피 우셔서 다시 살아나시어, 미리 이야기했는데 왜 그러느냐면서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시다가 자리에 누워 그대로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덕산 스승님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만이 아닌 수 백 만의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 주시고, 가실 길을 미리 미리 준비하시니까요.

3. 우전 송원갑님의 댓글입니다.

좋은 죽음 = 웰 다잉!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요. 인명은 재천이지만, 제일 조심해야 하는 건 죽지 않고 병신(중풍, 치매)되어 오래 사는 겁니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한(恨)>을 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구천을 헤매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4. 안녕 김경희 시인의 댓글입니다.

몸부림치지 않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 좋은 죽음을 주제로/ 3일 동안 연재하신다니/ 받아들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립니다./ 이 무거움도 씻겨 갔으면 합니다.

어떻습니까? 훌륭한 댓글들이 아닌가요? 생(生)은 사(死)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열반(涅槃)에 들 즈음에 친근 자로써 그 영혼을 보내는 방법과 영혼이 떠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취할 방법에 대한 소태산 부처님의 법문을 전합니다.

첫째, 병실에 가끔 향을 불사르고 실내를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만일 병실이 깨끗하지 못하면 병자의 정신이 깨끗하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선한 사람의 역사, 좋은 실행 등을 많이 말하는 것입니다.

당인의 평소 마음 씀 가운데 좋은 실행이 있을 때에는 그 조건을 찬미(讚美)하여 마음을 위안해 줍니다. 그러하면, 그 좋은 생각이 병자의 정신에 인상되어 내생의 원 습관이 되기 쉬워지는 것입니다.

셋째, 악한 소리와 간사한 말과 음란하고 방탕한 이야기를 금지합니다.

만일 그러하면, 그 악한 형상이 병자의 정신에 인상되어 또한 내생의 원 습관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넷째, 가산(家産), 가족의 걱정 등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애연(曖然)한 말과 비창한 태도를 보이면 병자의 애착과 탐착을 조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히 그 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며, 그 착(着) 된 곳에서 인도수생(人道受生)의 기회가 없을 때에는 자연히 악도(惡道)에 떨어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다섯째, 기회 따라 염불도 하고, 경(經)도 읽으며, 설법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병자의 정신이 거기에 의지하여 능히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섯째, 열반이 임박하면 시끄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곧 열반을 위해 호흡을 모을 때, 울거나 몸을 흔들거나 부르는 등, 시끄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갓 떠나는 사람의 정신만 어지럽게 할 따름이요, 아무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득이 슬픔을 발하게 될 때에는 열반 후 몇 시간을 지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곱째, 전혐(前嫌)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되 평소에 혹 누구에게 원망을 품었거나 원수를 맺은 일이 있거든 그 상대자를 청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혐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혹 상대자가 없을 때에는 당인 혼자서라도 그 원심(怨心)을 놓아버리데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 가운데 원심을 풀지 못하면 그것이 내생의 악한 인과의 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덟째, 성주(聖呪)를 많이 독송(讀誦)하는 것입니다.

『영천영지 영보장생(永天永地永保長生) 만세멸도상독로(萬世滅度常獨路)

   거래각도무궁화(去來覺道無窮花) 보보일체대성경(步步一切大聖經)』

아홉째, 천도재(薦度齋)를 지내는 것입니다.

천도란 영가(靈駕)로 하여금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게 하고(離苦得樂), 악을 멈추고 선을 닦게 하며(止惡修善), 미한 것을 돌려 깨침을 열게 하는(轉迷開悟) 것입니다. 49일 동안 가족들이 영가를 위해여 일천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남의 손을 빌려 천도를 받을 것이 아니라, 생전에 자신천도를 마치면 어떨 런지요?

연 사흘에 걸쳐 무거운 주제인 죽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혹자는 왜 기분 나쁘게 죽음에 대해 말하느냐고 나무래 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준비해둠이 없으면 죽음에 다다라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인연 복이 없던 사람에게는 불연(佛緣)을 맺어주고, 신심(信心)이 있는 영가에게는 서원(誓願)을 굳혀주며, 수행이 깊은 영가에게는 대중과의 법연(法緣)을 넓혀주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2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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