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4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맹현이 생활하던 특수반이 볕이 잘 드는 2층에서 4층의 북쪽 끝의 교실로 이동하였다. 그 곳은 하루 종일 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그리고 원래 특수반의 자리인 2층의 그 교실에는 월드컵에 관계된 내용을 전시하는 자료실이 되었다. 그 곳의 게시판에는 성공적인 월드컵을 맞이하기 위한 시민정신과 청결, 질서를 강조하는 표어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또한 핸드볼 선수를 육성하던 학교 운동부에 ‘월드 축구부’가 신설되었다. 이러한 캠페인은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 운동장에서 붉은 티를 입고 축구 경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난지중학교 운동장에도 축구팀이 신나게 경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아침 일찍부터 공을 구르는 학생이 있었다. 항상 혼자였고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축구반에서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항상 큰 소리로 외쳤다.
“난지 축구, 월드 축구반!”
그는 언제나 반복해서 부르짖었다. 바로 최맹현 학생이었다. 내가 담임으로 맹현을 위해서 하는 일은 운동장 쪽을 둘러보고 축구연습을 하고 있는 맹현에 대한 출석 체크를 하는 일이었다. 방과 후에는 학교 뒤뜰에서 축구공을 차고, 어쩌다 학교 안에서 마주치는 그의 모습은 축구공을 겨드랑이에 끼고, 먼 곳을 바라보며 달리는 모습이었다. 날씨가 차차 쌀쌀해지자 맹현의 외치는 소리도 달라졌다.
어느 날 나는 점심을 먹으러 특수교사와 함께 식당에 들어가고 있었다.
“얼음! 얼음! 난지도!”
외치며 교장실 쪽으로 뛰어가는 맹현을 보았다. 우리는 외치는 소리가 달라졌다고 말하며 식당에 들어갔다. 김 선생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맹현이 굳이 장애 학교로 가지 않고 일반학교에 학교생활을 하게 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맹현을 자폐아 전문치유 기관에 맡기는 것보다 장래에 스스로 자립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서 그렇게 어려운 모험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친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혜란의 부친은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고 사업을 하던 남편은 부도가 나서 경제적으로도 몰락의 위기에 처하여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덤덤히 들으면서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던 혜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특수반이 4층으로 교실을 옮긴 후부터 맹현은 더욱 우울해지고 약간 과격해졌어 요. 그 교실에는 햇볕이 안 들잖아요!”
이 때 서무실 직원이 급하게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큰일 났어요!”
다들 놀라 교장실에 가보니 교장 선생님 자리에 맹현이 떡 버티고 앉아 도무지 일어나질 않았다. 교장은 잠시 출장을 간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달려온 행정실 직원이 맹현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발악하듯 손을 뿌리치며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난지도……얼음나라! 얼음나라……”하고 반복한다.
“양성자, 경례! 양성자 경례, 나는 왕자다!……”
맹현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드디어 힘센 체육교사 두 분이 그의 팔과 다리를 붙들고 교장실에서 나갔다. 끌려 나가던 맹현은 교장을 싸늘한 눈동자로 쏘아보았다.
“차렷! 경례, 양성자!”
교장은 귀를 틀어막고 빨리 나가라고 손짓하였다.
“도대체 뭣들 하였기에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요?”
하다가 약자인 장애자에게 야박하다는 소문이 날까봐 좀 겁을 먹고
“여기 사탕 좀 나눠주어요. 살살 달래봐요!”
애써 우락부락한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몇 년 전의 난지도 부근의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나를 쏘아보던 그 여교장의 눈꼬리와 너무도 닮았다. 그녀는 불결한 것을 털어버리듯 맹현이 앉았던 방석과 쿠션을 요란하게 털어냈다.
잠시 밖으로 나와 학교 현관에서 좀 떨어진 화단의 벤치에 홀로 앉았다. 교장실에 버티고 앉았던 맹현의 얼굴에 최석의 모습이 스쳤다. 많이 닮은 모습이다. 그는 남달리 정의감이 깊었고 패기가 있었다. 정의로운 행렬에 맨 앞장을 서서 외치던 그의 모습! 그의 하숙집에는 철학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는 밤이 새도록 진리를 향하여 고민하였다. 그러나 점점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그의 이상을 쓰레기 매립지에 매장하듯 점점 현실의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난지도의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그와의 인연의 숲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