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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사회

교회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공동취재팀 기자 입력 2016/03/29 19:32
① 교회, 정말 성도들을 위하여 얼마나 福을 나누나?,.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한국 교회의 신뢰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14년 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19.4%에 그쳐, 가톨릭과 불교에 이어 꼴찌를 기록했다. 교회의 신뢰도 하락 원인은 돈과 권력에 눈이 먼 기독교 내부의 어두운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내로라하는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의 부끄러운 행보는 교계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책 <거룩한 코미디>(곽영신, 오월의 봄)에서는 이러한 교계의 타락을 총 공개해 화제다. 책을 통해 본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의 일그러진 맨 얼굴을 낱낱이 해부해봤다.  

그래서 교회가 본래의 모습으로 찾아 가도록 반성의 시간을 갖고 신뢰 회복 할 수 있도록 시리즈로 글을 쓰기로 했다.
-편집후기-  



①교회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뉴스 프리존= 공동취재팀]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 희망이 없다는 말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들린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비리를 눈감아 주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있다. 놀랍게도 그곳이 바로 교회다. 어느 곳보다 비리가 발붙여서는 안 되는 교회에서, 도덕과 법의 기준이 높은 곳에서 비리를 눈감아 주려고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비리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면서 눈감아 주려고 한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대형교회의 비리가 널리 알려져 왔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비리가 자행되는 것은 실상 해당 교회의 장로들과 교인들이 그 비리를 눈감아 주고 묵인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그 목사의 비리를 눈감아 주면서 아멘을 외치는 한 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찾아볼 수 없고 그런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무슨 소용인가? 죄에 물들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망하고 말았다.
 
교회에 돈이 많다는 것은 재물을 천국에 쌓아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든지, 미자립 교회들을 넉넉하게 돕는다든지, 선교사들을 파견한다든지, 자선단체들을 설립한다든지,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다든지, 교회가 돈을 쓸 곳은 아주 많다. 그렇게 돈을 쓰다 보면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모자라게 마련이다. 그렇게 돈을 쓸 때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된다.
 
교회를 오천 명 혹은 만 명 교회로 키우면 재물이 쌓이게 되고 그 재물은 결국 죄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돈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비리를 아무도 드러내지 못하게 입막음을 한다면 그 돈이 얼마나 더 큰 비리를 낳겠는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어 있다.
 
이렇게 답답한 한국교회에 김재환 감독의 <쿼바디스>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김 감독은 사랑의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롯한 한국 대형교회들의 문제점들과 비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에서 그는 대형교회가 기업체를 운영하면서 일으키는 사회문제, 화려한 초대형 교회 건물 신축, 대형교회 목사의 재정적 비리,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들이 앞장서고 있는 교회 세습, 목사들의 성적 타락, 그리고 대형교회가 소규모의 지역교회에 미치는 악영향, 비성경적인 설교 등을 폭로하고 있다. 언론이 이번 대한항공사의 비리를 드러내면서 그러한 문제점을 시정하려고 한 것처럼 김 감독이 교회의 반대를 예상하면서 돈이 되지 않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것은 한국 대형교회의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한국교회가 개선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김재환 감독이 만든 <쿼바디스>는 한국교회의 개선을 위한 애정 어린 비판인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율법에 억매인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비판하시면서 진정한 복음을 선포하셨고 개혁자들은 부패한 중세교회를 비판하면서 참다운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이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교회가 부패의 늪에 빠져 있는 때에 김 감독은 부패한 한국교회를 비판하면서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복음 위에 서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계속 교회의 비리를 눈감아 준다면 한국교회는 결국 죄 불감증에 걸렸던 중세교회처럼 되고 말 것이다. 중세교회에서는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감독들이 첩을 두고 사생아들을 낳았다. 고아원은 사제들과 수녀들 사이에서 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중세의 수녀원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감독들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서 성직을 매매하고 온갖 비리에 관여했다. 성당을 대대적으로 건축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했고 그 면죄부 사건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교회 역시 죄 불감증에 감염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대형교회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회를 대대적으로 짓기 위해서 엄청난 빚을 지고, 교인들에게 지나친 헌금을 요구함으로써 교인들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만든다. 교회가 기업체를 운영하는 등 재산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성적으로 타락한 목사들이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성직을 대물림하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일들은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목사들이 그리고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해서는 안 되는 죄다. 그런 것들은 인간적인 욕심이, 물질적인 탐욕이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한국교회가 죄 불감증에 물들어 가고 있는가? 영화 <쿼바디스>에서 기자가 어느 목사에게 그렇게 비리를 저지르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목사는 이미 용서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김 감독은 한국교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천국의 복을 강조하면서 지옥의 벌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은혜에만 치중하고 삶을 외면하는 목사들은 죄 불감증에 빠지기 쉽다. 죄 불감증에 빠진 목사들을 존경하며 따르는 교인들의 죄의식이 무디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기네 교회의 목사가 어떤 죄를 짓든지, 어떤 비리를 저지르든지 그런 것들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제로 비리를 저지른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먹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목사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때가 되었다.
 
사회인들은 목사들보다 죄의식이 강하다. 우리는 가끔 모범적인 공직자가 그의 비리가 드러나자 한강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얼마 전에 지검장으로 근무하던 검사가 성적 문제로 말썽이 나자 사표를 내면서 사죄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그리고 청와대 문건 유출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경위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목사들의 비리가 드러났을 때 자살을 했다든지 목사직을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자살하는 것은 큰 죄라고 믿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다른 때 느끼지 않던 죄 의식이 자살 문제에서만은 강하게 작동하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쿼바디스>나 <언론>을 통한 교회 비판으로 인해서 “한국교회 전체가 입을 이미지 손상”을 걱정하고 이 영화가 “젊은이들을 교회에서 떠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는 달리 교회의 비리를 눈감아 주어서 그 비리들이 시정되지 않는 한 한국교회 전체가 입을 이미지 손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특히 젊은이들은 사회보다 못한 교회를 등지게 될 것이 뻔하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공개적으로 사과할 줄 모르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목사는 그의 비리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뒷문이 열려 있으니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양의 교회는 교회 밖에서 불어오는 합리주의적 사고와 과학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해서 점차 문을 닫아가고 있다. 그 외풍이 이미 한국에도 불어오고 있고 갈수록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에는 그러한 외풍보다도 내부에서 일고 있는 비리의 바람이 더욱 거세다. 외부의 바람을 막아내는 일도 어려울 판인데, 내부의 바람까지 거세게 불고 있으니 내외의 바람에 노출된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 어려움을 감당할지 참으로 걱정이다.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의 교인은 늘고 있는데 반해서 개신교회의 교인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은 현대인들의 합리주의적 사고 탓이라기보다는 교회의 부패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교회가 사회보다 낫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면, 누가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교회가 비리의 온상이 되어 가기 때문에 실망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 비리를 눈감아 주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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