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택배 분실에 ‘창고 출입금지’ “혹한에 실외 대기, 도둑 취급”
승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서울역 건물 뒤쪽 후미진 곳에 있는 택배창고. 창고 한쪽에는 낡은 의자 3개가 놓여 있다. ㄱ씨 등 퀵서비스 노동자 12명은 KTX 택배 물품이 분류되는 1시간여 동안 의자에 번갈아 앉아 바깥 추위를 피했다. 오토바이를 몰며 영하의 칼바람을 버텨야 하는 그들에게 낡은 의자에서의 휴식은 조촐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17일 이곳에서 휴대폰이 담긴 택배 1개가 사라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경찰이 현장조사를 했으나 범인을 지목하지 못했다. 이 창고에는 운영주체인 코레일네트웍스 특송사업처 정규직 사무직원과 아르바이트생, 협력업체인 K특송 소속 퀵서비스 노동자 등이 오간다. 코레일네트웍스 측은 지난달 19일 물품대기 장소에 퀵서비스 기사 출입을 금한다는 공문을 각 사업장에 내려보냈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사무직원들은 놔두고 비정규직 기사들만 출입을 금한 건 사실상 우리를 도둑 취급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측은 “기사들이 훔쳐갔다는 게 아니라 향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도록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사용했던 공간이 원래 추위를 피해 쉬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휴식처가 사라지자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고스란히 추위에 노출됐다. 이들은 물품창고 앞 건설자재 위에 걸터앉거나 서울역 안의 대합소를 서성였다. ㄴ씨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추위에 떨며 회사에 도착하면 온몸이 얼어있다”면서 “특히 손과 발에 땀이 나면 급속히 얼어붙기 때문에 녹여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ㄷ씨는 “하루 약 15시간 근무하는 동안 몸을 녹일 수가 없다”면서 “특히 오후가 되면 몸이 얼어붙어 너무 힘들다. 사고가 난 분들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창고 출입을 금한다면 이를 대체할 대피소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코레일 측은 “계약상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복지는 이들이 소속된 협력업체 특송회사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특송회사 측은 “재정여건상 대기실을 따로 만들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ㄹ씨는 “요즘 어떤 이들은 애완동물이 추워한다며 옷까지 사 입히는데 우리 노동자들의 추위는 아무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